사진 <모마 미술관의 어느 대머리 아저씨> 2012

 

새벽에 문득 깨어 컴퓨터 앞으로 다가앉았다. 지금 나는 맨해튼 안에 머물고 있다. 메이시 백화점 바로 앞, 럭셔리 렌탈 빌딩 안에 있는 한국인 숙소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름처럼 그렇게 럭셔리한 장소는 아니다.


그래도 함께 지내던 다른 게스트들이 모두 나간 뒤라 거의 혼자서 내 집처럼 지내는 중이다. 여자 관리인이 함께 있는데 한국에서 온 유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다. 날씨 때문인지 여행객이 뜸한 모양이다. 하루 45달러만 지불하면 되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아니, 환상적인 조건이다.


뉴욕에 온 뒤로 거의 매일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도 찍고(요즘에는 디카와 휴대폰을 사용해서인지 사진 촬영이 허용된 곳이 많다), 무작정 작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 앞에 앉아 연필이나 펜으로 모사를 하기도 한다. 확실히 손으로 직접 따라 그리다 보면 훨씬 많은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의 깨달음과 의문들이 잇따라 떠오른다.


금요일 오후에는 4시부터 모마에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아침 내내 메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고 곧장 모마로 향했다. 관람객들의 줄이 어찌나 길던지,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 대한극장 앞에서 <벤허>를 보기 위해 끝도 없던 사람들 꽁무니에 매달려 서 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데 금요일 밤 행사에는 나름의 요령이 있는 듯했다. 관람객들은 금세 티켓을 받아들고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관은 역시 시내에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뉴욕 사람들이 모두 모인 듯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미술계의 변방 노릇을 해왔다. 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저변에서부터 쌓이고 숙성되어야 한다. 건물만 지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이 조직적으로 미술계에 투자하고 활성화에 나선 것은 1930년대부터다. 당시 유럽은 전쟁 중이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덕분에 유럽의 많은 뛰어난 문화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미국이 20세기 중반 추상표현주의나 팝아트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부 차원의 지원과 미술 비평가들의 활발한 활동, 그리고 미술관들의 영악하다 할 만한 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힘들이 모이고 모여 뉴욕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었다.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모마의 소장품 목록은 아주 화려하다. 얼마 전 내가 4. 죽음에 대한 응시- 쌍둥이 그림들에서 소개했던 뭉크의 작품도 그중 하나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 할 수 있는 절규앞에 사람들이 빼곡하다.


맨 위에 올려놓은 사진은 사람들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 겨우 촬영한 것이다. 오일도 아닌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런데 그림 앞을 막고 서 있던 대머리 아저씨의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다음 사진을 보기 바란다.

 

사진 <뭉크의 절규> 모마 미술관에서, 2012

 

뭉크의 그림 속에서 대머리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연치고는 꽤 묘한 우연이다. 참고로, 나는 대머리에 대해 아무런 반감이 없는 사람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예술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이런 우연성의 묘미를 빼놓을 수 없다. 뒤에 서 있던 누군가 내 카메라 액정에 비친 이 장면을 보고는 자기도 한 장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소장 가치를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


위의 장면은 대머리 아저씨가 비켜선 바로 그 직후, 0.2~0.3초 사이에 찍은 것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빼곡히 둘러서 있을 때는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순간이 제한적이다. 그때를 놓치면 영영 찍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디카 촬영이니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가. 디카는 화가들에게 신의 선물과도 같다. 작품 사진도 바로 찍을 수 있고 인상적인 장면이나 풍경도 순간적으로 기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마의 절규는 두꺼운 플라스틱 액자로 보호되어 있다. 흑인 여자 경비원이 옆에 서서 조금이라도 그림의 최후 방어선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 큰 소리로 주의를 준다. 절규를 보며 파리 루브르에 있는 모나리자방이 떠올랐다. 세계 각국에서 그 작품 하나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장벽 말이다. 모마가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해 뭉크의 파스텔화를 구입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명품 좋아한다고 여자들의 허세만 욕할 일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모마가 절규를 구입한 것과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에 열광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미국은 늘 유럽에 대해 문화적인 열등감을 느껴왔다. 프랑스식 발음이나 영국식 억양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모마에도 이제 모나리자급 작품이 등장했으니 어느 정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자세히 다시 살펴보기 바란다. 그림 테두리가 약간 특이하지 않은가. 나무 프레임을 둘러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청동으로 주물을 떠서 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장자들의 센스 있는 안목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파스텔 작품을 다른 드로잉이나 수채화처럼 종이 테를 두른 유리 액자로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화처럼 정식 왁구를 짤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뭉크 작품에 대한 설명은 4. 죽음에 대한 응시-쌍둥이 그림들에 얼마간 적어두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

 

눈이 와요! 눈입니다!

 

사진 <11월의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1> 2012


아무래도 뉴욕이 미친 것 같다. 11월의 뉴욕에서 이런 눈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갑자기 눈이 오기 시작한다. 메트 폐장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오니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예고도 없이 펑펑 쏟아진다. 허리케인 샌디가 지나가자마자 폭설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9·11 테러 이후 뉴요커들은 아예 인생에 달관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비행기 공격도 받았는데 이까짓 눈보라쯤이야, 하는 분위기다. 지하철 안은 푸시맨이 필요할 정도로 꽉 찼지만, 거리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다.


사진 <11월의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2> 2012

 

바로 하루 전에는 대선 투표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타임스퀘어 광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사진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마련된 대선 관중석> 2012

 

어떤 사람은 뉴 이어스 이브 이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는 거리 전체에 눈발이 몰아치며 마치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전날 찍은 타임스퀘어 사진도 함께 올린다.


사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1> 2012

 

사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2> 2012


대선 당일 밤 930분경에 찍은 사진이다. 전광판만 보고는 롬니가 이기는 줄 알았다. 빨간색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오바마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알 수 없다. 한국도 곧 대통령을 뽑게 된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힘 있는 정부가 앞장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정치는 문화를 키우고 문화는 그 시대를 포장해 후세에 남긴다. 인류사는 늘 그렇게 작동해 왔다. 오래전 백 년 동안 지중해와 에게해를 장악했던 스파르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테네를 비롯한 헬레니즘 문명은 지금까지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제 오후 모마 미술관에서 운 좋게 건진 사진 한 장이다.


사진 <연인, 모마의 계단에서> 2012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조차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 유명한 모마의 계단에서 한 여자가 올라가고 있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가 떠오른다. 이 여성은 실제로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아마 이쪽을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편에는 뒷모습만 보면 어쩐지 리키 마틴을 연상시키는 남자가 서서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수십 번 셔터를 누른 끝에 겨우 한 장 건진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에 연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연인이란 서로를 바라보는 존재이다. 그렇게 마주 보는 관계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헤어지거나 결혼을 하게 된다. 흔히들 부부는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서로를 마주 볼 때 더 강한 생의 스파크가 튀는 것은 아닐까. 앞을 바라본다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희생하기에는 이 삶이 너무 짧고 아깝다.


뉴욕은 젊음의 도시이고 연인들의 도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한국인의 도시이기도 하다. 적어도 맨해튼 안에서는 어디를 가도 한국인을 만난다. 오래전에 미국 동부에만 살다가 LA에 갔을 때 수많은 한국인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지금 뉴욕이 바로 그런 분위기다.


32번가 한인타운도 계속 팽창 중이다. 사방에서 드릴 소리가 요란하다. 곧 한국식 바비큐 와인바가 새로 문을 열 모양이다. 사우나도 있고 때도 밀어준다고 한다한국 책방도 있고 한식만 파는 푸드코트도 있다.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뉴욕이다. 손님의 절반쯤은 미국인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인구 구성 변화 때문에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뉴욕에 있으니 그 말이 실감난다


지하철을 타면 양쪽에서 여러 나라 언어가 들려온다. 여기서는 백인이 오히려 소수 민족처럼 느껴진다. 오래전 막강한 군대를 앞세워 지구상 최초의 세계화를 이룬 고대 로마가 이런 모습으로 다시 환생한 것은 아닐까, 너무 뻔한 생각이지만 그런 상상도 떠오른다.

 

이 글을 알라딘에 무사히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숙소에 있는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아 불안하다. 마우스도 없고 한글 프로그램도 깔려 있지 않다. 가끔 화면이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맞춤법까지 모두 확인하지는 못했다. 여기 도착한 다음 날 한 번 시도했다가 써놓은 글을 전부 날려버린 적이 있다.


그렇게 사라진 글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우주 어딘가에 사라진 글의 행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 적막한 행성의 오래된 도서관에서 어깨가 구부정한 늙은 사서 한 명이 책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오늘도 중간에 한 번 글을 날리고 다시 작업해서 여기에 올리는 중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서울의 일은 모두 잊고 이곳의 시간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두고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또 욕심이 생겨 이렇게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여행 노트에 먼저 적은 뒤 워드패드로 옮기고, 다시 블로그에 올릴 생각이다. 사진도 올려야 하는데 중간에 날아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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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2012-11-1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마바가 머리 쥐어짜면 뭉크 그림 속 인물처럼 보일텐데...

김미진 2012-11-16 10:02   좋아요 0 | URL
앗, 댓글이 올라왔네요.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