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장 배지> (2012)
어느새 뉴욕을 떠날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 오후 7시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 자정을 넘긴 시각에 비행기에 오르게 되니, 계산해 보면 오늘 밤과 내일 하루를 더 머무는 셈이다. 내일 낮 12시까지 체크아웃을 해야 하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시간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다.
15박 17일 동안의 뉴욕 체류는 길었다고도, 짧았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나는 일기를 쓰고, 이것저것을 담아 두기 위한 작은 크로키북을 들고 다닌다. 이번에도 어쩌다 보니 그럭저럭 한 권을 거의 채워가고 있다.
인천공항을 떠난 순간부터 이 작은 노트는 나의 유일한 말벗이자 친구였고, 때로는 동반자였다. 이런 여행일기조차 끄적거리지 않았다면 무슨 수로 그 긴 시간을 거리에서 혼자 보낼 수 있었겠는가. 생각할수록 대견한 크로키북이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적거나 그리거나 오려 붙인 것들은 사진으로 찍은 이미지들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사진이 포착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겉모습의 구도와 윤곽만 비슷할 뿐, 색채나 분위기는 전혀 다를 때가 많고 중요한 디테일도 사라지기 쉽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사진을 찍는 횟수는 늘어났지만, 그만큼 희소가치도 줄어들었다. 예전에 필름으로 찍을 때는 사진을 현상해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고, 잘 나온 사진을 골라 벽에 걸어 두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파일이나 폴더 속에 담아 두고 마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여행일기란 들고 다니기도 버거운 구식 카메라로 흑백 필름을 찍어, 기억을 현상하고 인화해 오래 간직하는 일과 비슷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도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점이다. 친구나 아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사실 집중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미술관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였고, 정말로 줄기차게 미술관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짐가방을 꾸리다 보니 그동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갈 때마다 받았던 입장 배지가 한쪽에 쌓여 있었다. 옷깃에 달고 다니는 얇은 금속 배지들이다. 세어 보니 모두 아홉 개였다. 그러니까 아홉 번이나 메트에 다녀왔다는 뜻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보러 다니는 동선이 길어져 메트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나름 뿌듯한 하루하루였다.
메트에는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부터 현대의 미니멀 아트와 개념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 에드워드 호퍼, 보나르, 마티스, 모네, 르누아르, 마네, 척 클로즈, 클레, 피카소, 베르메르, 드가, 고흐, 로트렉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어 더욱 기뻤다.
그림을 보다가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잠깐씩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손으로 그려보는 경험은 전혀 다르다. 내가 언제 또 뉴욕에 와서 이렇게 혼자 느긋한 시간을 보내며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의 자화상을 따라 그려 보겠는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림 앞에서 펜을 쓱쓱 움직였다.

펜 드로잉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 자화상 모사>
크로키북 중, 2012
어제는 스태튼아일랜드에 다녀왔다. 일반 가정집처럼 생긴 작은 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마주친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은 조금 뜻밖이었다. 고야는 아마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가 아닐까 싶다. 아래 스케치는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였는데,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장면이라 나중에 자료가 필요할지도 몰라 어설프게나마 비슷하게 그려 보았다.

드로잉 <여행 일기 중 고야의 판화와 스태튼 출신 화가 콜맨 루킨의 판화 모사>
크로키북 중에서, 2012
중앙에 있는 악마처럼 생긴 폭군의 하반신 묘사가 그다지 정확하지 않아 조금 난감했다. 이렇게 작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면 작업 과정에서 생긴 실수나 고민, 갈등과 다시 시도한 흔적 등을 그대로 집어낼 수 있다. 물론 그림의 외형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 관람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경비원은 백인 중년 여성이었는데,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때때로 친절한 말벗이 되어 주었다. 스태튼 출신 화가 콜먼 루킨의 판화와 모노톤 추상이 강조된 유화 작품들도 무척 신선했다.
스태튼아일랜드는 뉴욕 맨해튼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많이 정착해서일까. 도로와 건물에서 어딘가 시칠리아 섬 같은 인상이 풍겼다. 여러 면에서 아직 소박한 구석이 많이 남은 섬이었다. 오가는 선상에서 자유의 여신상도 덤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박물관만 둘러본 것은 아니다. 시청 건물 안의 프레스코화도 감상하고, 히스토릭 리치먼드 타운에서는 오래된 저택들의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날씨도 춥고 허리케인 센디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그곳에서도 여행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도 나름 뜻깊은 시간이었다. 마치 1980년대 초반의 미국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진짜 미국의 모습을 그 섬에서 다시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 오전에는 메트에 가기 전에 77번가의 아쿠아벨라 화랑에 잠깐 들렀다. 거기서 웨인 티보의 작품을 하나하나 눈에 새겨 넣으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간단한 스케치로 그림을 따라 그려 보기도 했다.

드로잉 <웨인 띠보 ‘Boston Cremes’ 모사>
크로키북 중, 2012
캘리포니아 화가 띠보의 ‘파이 그림’은 인간의 식욕을 자극하는 동시에, 반복해서 진열된 음식의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하나의 기호로 환원시킨다. 그는 현재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팝 아트 계열의 그림들, 여자 구두나 사탕, 아이스크림 같은 먹거리, 도시 풍경 등을 주로 그려 왔는데, 아흔이 넘어 추상 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의 1960~70년대 작품이 더 끌린다. 조금 더 진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서점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띠보의 여든 번째 생일을 휘트니 미술관에서 직접 축하해 드렸다고 한다. 노구의 화가는 여전히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분이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오늘은 또 다른 이야기를 귀동냥했다. 전시를 보러 온 어느 강사가 띠보의 요즘 근황을 들려주었다. 젊고 활동적인 부인과 함께 살고 있고, 다섯 살쯤 된 쌍둥이 아이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조금 뜻밖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띠보의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수영복 차림이나 가운 차림의 여자가 혹시 지금의 부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뉴욕 사람들은 띠보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작품 전시회 역시 연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술관 같은 데서는 더 이상 현대 작가들의 대규모 전시를 열기 어렵다고 한다. 소장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데다, 이동은 물론 보험 문제 등도 까다롭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렇게 화랑에서만 전시를 열 수 있다고 하는데, 덕분에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실컷 그림을 구경하고 이렇게 작품 모사도 할 수 있었다.

크로키북 중에서 <웨인 띠보 ‘Hot Dog Stand’, ‘Pastel Scatter’ 모사>
숙소의 작업대 모습 일부, 2012
짐을 정리하다 보니 크로키북 속에 그동안 그려 놓은 모사 스케치들이 제법 쌓여 있었다.
오늘은 계속 펜 스케치만 하다가 색을 한번 얹어 보고 싶어 수채 물감을 꺼냈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펜으로만 그렸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위에 물감을 얹으니 밑그림이 뭉개져 버렸다. 갤러리에서 다리가 뻣뻣해질 때까지 공을 들여 그린 그림이라 더욱 아쉬웠다.
막상 떠날 날이 가까워지니 뉴욕에 머무는 동안 센트럴파크에 나가 하루쯤 사생 스케치를 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밤이 깊었다. 잠깐 나가 숙소 근처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 오탈자나 문장 정리는 시간이 날 때 다시 살펴볼 생각이다. 그런 것까지 꼼꼼히 챙기다 보면 오늘 밤 안에 이 글을 끝내지 못할 것 같다. 서울에 돌아가 이 기록을 올리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이곳에서 글을 마무리한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