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몽마르트르 언덕의 추억2> , Oil on canvas, 53.0 × 45.5 cm, 2013

  

모처럼 비구상 작품을 손보고 있으니 기분이 새롭다. 이 작품은 16년쯤 전 파리 여행 직후에 그린 컬러 드로잉을 기초로 하고 있다. 당시에는 수채화와 잉크를 사용했는데, 그것을 유화로, 그것도 비슷한 분위기로 다시 제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수차례의 좌절이 있었고, 무작정 묵혀 두었던 인내의 시간도 매우 길었다. 때로는 그림도 김치처럼 발효를 하는 것 같다. 무엇인가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결국 겨우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얼마 전 김연아 선수가 인터뷰에서 아사다 마오와의 인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말 여기서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징’합니다.”라고 말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징하다’는 표현이 오래 남았다. 이 그림이야말로 내게는 그런 ‘징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한 발 전진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림<몽마르트르 언덕의 추억 1> Ink and watercolor on paper,1997


요즘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노트패드로 이북을 읽고 있다. 종이책에 비해 몰입도가 상당하다. 이러다 정말로 종이책이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소설가잖아!’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소설 또한 무엇인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주기를 바라게 된다. 모두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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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석촌리 들판2> oil on canvas 65×53cm 2013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날 밤, 그 다리 앞을 선택할 것이다. 최근에 본 어느 영화에 나오는 설정이다. 단 한 번만 되돌아갈 수 있는 과거의 시점. 그곳으로 가서 다시 그 현실을 경험하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조용히 반성해 보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그 현실이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다리 위에 위태롭게 한 줄로 서 있던 오리 일가족에 대한 목격담이다. 어쩌면 나는 가해자일 수도 있다. 제발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김포에는 곳곳에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산과 들판, 강물과 마을이 서로 맞닿아 있는 한국의 풍경 속에서 살다 보면 그저 앞이 툭 터진 공간만 보아도 왠지 가슴이 서늘해지며 한동안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 옛날 청춘의 한때를 떠올리게 하는 플로리다의 드넓은 평원 같은 풍경. 막막한 오후의 텅 빈 기운. 그것은 오로지 자연이라는 공간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엇이다.

청춘의 아득했던 감수성을 환기시키고, 현실 속 어딘가 잠들어 있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을 나는 종종 이곳 김포에서 경험한다.


이 순간 찜질방 이야기를 또 꺼낸다는 것이 조금 멋쩍기는 하지만, 김포에서도 꽤 근사한 들판이 바로 그 찜질방 앞에 펼쳐져 있다. 찜질방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막힘없는 지평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늦은 오후 탈의실 창밖으로 바라본 노을 진 풍경은 어딘가 에릭 사티(Erik Satie)의 한 박자 쉬어 가는 듯한 피아노 선율을 닮아 있었다. 고즈넉하면서도 다채롭게 변해 가는 계절의 스펙트럼은 일상에 지친 영혼을 조심스럽게 한 번씩 눌러 주곤 했다.


사건이 있던 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낮 동안 작업을 하다가 찜질방에 들러 잠시 쉬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와이퍼는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자동차 타이어는 질척거리는 길 위를 조용히 달렸다.


논두렁과 산책로 사이로 이어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빠져나오면 최근에 새로 생긴 4차선 도로가 나타난다. 다리 앞 신호등에서 나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앞 유리창에서 딸깍거리는 와이퍼 소리, 추억의 그림자처럼 깔리던 라디오 음악, 저 멀리서 환청처럼 들려오는 빗소리가 차 안을 채우고 있었다. 우물 깊숙한 곳에 가라앉은 듯 차 안의 공기는 묘하게 무겁고 비현실적이었다.


그 도로의 진입로는 지평선보다 약간 우묵하게 들어간 지형이라 수평선의 광활함이 실제보다 더 나지막한 각도에서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날은 그런 들판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주위는 어두웠고 빗물은 계속 추적거리고 있었으며 나는 그저 앞에서 깜빡이던 신호등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신호등이 바뀌었다. 운전대를 왼쪽으로 꺾어 도로 위로 올라섰다. 내 삶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는 수평선을 지나 현실이라는 수직의 공간으로 달려 나가던 바로 그때였다. 오른쪽 눈 가장자리 아래로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약간 번들거리는 검은 노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노란 점점의 물체들.


그것은 분명 오리들이었다. 대여섯 마리는 되어 보였다. 맨 앞에는 어미 오리가 있었고 뒤에는 오종종한 몸집의 작은 새끼 오리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잠시 멈춰 서 있었던 것처럼 차선 가까이까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내 자동차 오른쪽 앞바퀴가 지나가는 바로 그 자리에 그 어미 오리가 서 있었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던가. 확실하지 않다. 오리 떼를 인식했을 때는 이미 그 지점을 통과한 뒤였다. 뒤에서는 다른 자동차들이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뺑소니치듯 그 자리에서 멀어져갔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혹시 그대로 밟고 지나온 것은 아닐까.


정직하게 말하지만 타이어가 덜컹거리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불안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거기 있던 오리들이 정말 오리였는지, 아니면 순간적인 착각이었는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확인하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 오리들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었다. 공원이나 강가에서 보던 오리들은 대개 흰색이거나 거무튀튀했다. 그런데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얼핏 드러난 그 오리들은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노랗게 보였다. 아이들을 목욕시킬 때 욕조에 띄워 놓는 바로 그 노란색 오리. 어미 뒤에 줄지어 서 있던 새끼 오리들까지도 어딘가 인위적으로 배치된 장면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장난을 친 것일까. 그렇다면 누가, 무슨 이유로 비까지 추적거리던 밤길에 그런 플라스틱 오리들을, 그것도 차들만 간간이 지나다니는 도로 위에 일렬로 늘어놓았단 말인가.


무식한 애미 같으니라고. 겁도 없이 무슨 배짱으로 이 밤에 새끼들을 끌고 나왔단 말이야.”


나는 코웃음을 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런 와중에도 심리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1년 하고도 6개월이 흘렀지만, 찜질방에 다녀올 때마다 여전히 그날 밤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된다.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묻어 둔 수수께끼가 하나쯤 있다. 아무리 해도 실타래를 풀 수 없는 일. 검은 주머니 속에 파묻힌 영원한 비밀 같은 것.


그날 밤 그 오리 떼는 내게 그런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나는 결코 그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미래도, 과거도.


그러나 꼭 한 번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과거 속 그 다리 위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이 모두 무사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어미 오리가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새끼 오리들을 잘 이끌고 있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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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지난 가을, 장암동 마을 풍경> oil on canvas, 65.2×53cm, 2013

 

이번 작품은 지난 가을에 다녀왔던 장암동 풍경이다. 세상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곳에 와 있는 듯한 한적함이 있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햇살, 오래된 가옥과 부서져 가던 빈집들, 곳곳에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마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동네가 철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올해도 야외 스케치를 하러 이 마을에 다시 가게 될 것 같은데, 그사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궁금하다.

오늘은 창밖 풍경이 꾸물꾸물하다. 봄을 재촉하는 비라도 내릴 모양이다. 어서 따스한 계절이 찾아와 화구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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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석촌리 들판> oil on canvas, 2013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한기가 화실 안을 감돈다. 아직 외출할 때마다 꽁꽁 싸매야 할 만큼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어딘가 부드럽고 순한 기운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오늘은 새로 배달된 냉장고 때문에 괜히 마음이 어수선했다.


그동안 10년 넘게 사용해 온 냉장고는 모터가 완전히 고장 나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처럼 커다란 가전제품은 단순한 사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냉장고가 돌아갈 때마다 숨을 고르는 듯한 소리를 냈고, 늘 곁에서 내 일상을 묵묵히 지켜보며 함께 지내 온 존재였기 때문이다.


냉장고야 잘 가렴.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


새로 배달된 냉장고는 헌 냉장고보다 훨씬 큰 사이즈였다. 특별히 대용량을 주문한 것도 아닌데 요즘 가정용 냉장고의 크기가 그만큼 커진 모양이다.

텅 빈 냉장고는 하얀 동굴 같다. 환한 광채에 둘러싸인 고래의 뱃속 같은 공간이다. 새 냉장고가 이제 내 허기진 위장과 인사를 나눌 차례이다.


앞으로 잘해 보자. 뭐든 열심히 먹어 두는 게 좋아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그날그날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그만큼 시장에는 더 자주 가야 했겠지만 먹고 남아 버릴 것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냉장고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쓸데없이 이것저것 사다 쟁여 두는 일이 많아졌다.


아직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잠시 반성했다.


제발 이상한 소스 같은 것은 사 오지 말자. 대형 마트보다 동네 슈퍼를 더 자주 이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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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지난 여름-양평의 들판> oil on canvas, 65.2X50.0cm,2013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른다. 그는 생의 절망 속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것은 우주 과학자들이 허블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학술적으로 고찰해 낸 행성이나 항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별빛은 한 화가의 그림 속에서 삶의 구원이자 희망이었으며, 작은 위로와도 같은 속삭임이었다.

 

반 고흐가 생애 마지막 영감을 불태웠던 오베르를 찾은 건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 그 시골 읍네 같은 인상의 작고 소박한 마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영상처럼 떠오른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적하고 아예 문을 닫은 가게들도 많았다. 파리에서부터 줄곧 기차를 함께 타고 온 탁은 영국에서 일어를 가르치는 일본인이다. 텅 빈 객차 안에서 어색하게 말문을 튼 낯선 여행자들은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왔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오베르 기차역은 어느 시골의 작은 간이역 같았다. 그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 할 수 있는 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어쩐지 모두가 떠나버리고 듯 느껴지는 고즈넉한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고흐가 그림으로 남겼던 장소들을 차례로 순례하기 시작했다.

 

평생 가난과 고독 속에서 고통 받았고, 단 한 점의 그림밖에는 팔지 못했던 불운의 화가 반 고흐. 그는 생애 마지막 기간이란 할 수 있는 10주 동안 오베르의 허름한 여인숙에 체류하면서 수많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70여점의 유화와 드로잉과 판화 수십 점. 이 정도라면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미친 듯이 작업에만 몰두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파리에 가서 동생 테오를 만나고 돌아온 직후, 그림을 그리러 나간 들판에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이틀 후, 사랑하는 테오의 가슴에 안겨 “슬픔은 끝이 없는 거란다”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반 고흐가 마지막 숨을 거둔 라부 여인숙 3층의 작고 초라한 방에는 이제 덩그마니 의자 하나만 놓여 있다. 천장은 비스듬히 기우러져 있고, 햇볕도 잘 들지 않은 이 방. 어깨를 오그라들게 만드는 냉기만이 시린 외로움처럼 떠도는 방안을 둘러보다 왠지 먹먹해진 가슴에 두 눈만 끔뻑이고 서 있는 나. 한 예술가의 상처받은 영혼과 그 불꽃같은 흔적들. 이제 그 쓰라린 고통조차 최고의 상품으로 둔갑해서 소더비즈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한편의 개그 프로그램을 닮은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어느 학자는 고흐에 대한 열광 속에는 현대인의 집단적인 죄의식이 깔려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집단적인 죄의식! 위대한 예술가의 비극적인 운명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전율케 하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래서 ‘반 고흐 증후군’은 중독성이 강하다.

 

마을 공동묘지에는 ‘빈센트 반 고흐’라고 새겨진 사각형의 길쭉한 묘석이 누워 있다. 그 위를 수북이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열광을 불러 모으고, 죽어서도 영원한 존재로 살아 있는 한 예술가의 무덤치고 이건 너무 소박하고 왜소하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 수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고흐답다는 생각도 든다. 평생 가난을 업보처럼 걸머져야 했던 고흐가 아닌가. 살아생전 거의 한 작품도 팔지 못했고,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그의 무덤을 사후의 명성을 빌미로 새롭게 단장하고 위풍당당하고 꾸며 놓았다면 이 또한 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남루한 차림의 빨간 머리 미치광이였으나, 붓과 색채와 활활 타오르는 예술혼으로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빛을 발하는 존재,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토해내는 인물......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가 꿈꾸었던 그 별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반 고흐라는 것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나의 기억은 다시 오베르 마을 쪽을 향해 걸어가다 돌로 만든 몽당연필처럼 생긴 작고 다부진 인상의 교회 앞에 다다른다. 반 고흐가 꿈틀거리는 윤곽선을 강조해서 그린 그림 속의 교회보다 훨씬 단단하고 오래된 모습이다. 교회 앞 안내판에는 반 고흐의 그림 ‘오베르의 교회’가 새겨져 있다. 한때 목사가 되기를 그토록 열망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죽은 후 고흐는 거의 교회를 주제로 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순간 깨닫는다. 그가 오베르의 이 자그마한 성당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에 기적처럼 다시금 신의 존재가 떠오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가 죽음을 생각하기 전에 죽음이 앞서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다시 마음이 아파진다. 오베르의 교회는 그 투박하고도 순정한 모습이 어딘가 고흐의 마음 빛깔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신의 집이면서 또한 그의 마음이다. 약간 납작 찌그러진 듯한 순결한 그 모습! 한 동네 아낙이 서둘러 교회 앞마당을 지나가고 있다.

 

고흐의 그림들은 출렁이는 물감의 파도와 사선으로 질주하는 구도와 짙푸른 하늘과 형형색색의 색 점들로 어지러울 지경이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 정신분열증 증세에 시달리는 한 인간의 몸부림을 찾고자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스로 귀를 자르고, 들판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다 말고 자신의 옆구리에 대고 총알을 발사한 반 고흐.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호기심에 귀를 쫑긋거린다.

 

그는 정말 미친 사람이었던 거야?”


왜 천재는 늘 어딘가 이상하고, 미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 정상인이 아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의 형상이 아닐까. 천재라는 존재. 그래서 그 머릿속이 궁금하고, 어딘가 나와는 달라야 할 것 같은 막연한 강박. 그런 상상 속에서 반 고흐라는 인물은 점점 더 미친 사람처럼,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처럼 인식되어 온 것은 아닐까.


감히 단언하건대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미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놀랄 만큼 또렷한 의식과 집중력이 느껴진다그는 캔버스 앞에서만큼은 완전히 깨어 있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 어떤 생명의 신비가, 창조의 충동으로 가득 찬 자유로운 몰입이 그와 그의 그림 사이를 관통하고 있었다.


이제 그토록 맹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다, 그로 인해 파멸되는 인간은 이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존재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텅 빈 고독처럼 쓸쓸한 오베르의 교회당. 비둘기 대여섯 마리가 하늘에서 날아 온 성령처럼 날개를 저으며 부유하고 있다.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회랑의 맨 앞에는 성가대원들을 위한 나무 의자들이 정다운 친구들처럼 쪼르르 놓여 있다. 내내 여행길을 동행한 탁과 나는 거기에 나란히 앉아 천장의 둥근 지붕 안에서 푸드득거리는 새들을 바라본다.

 

“그쪽 친구 중에 고흐같이 예민하고 과격하고 고집 센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내가 탁에게 묻는다.

 

“몰라요. 당신은요?”

 

“나도 모르겠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새가 날아오른다. 이번엔 탁이 먼저 질문을 던진다.

 

“종교 있어요?”

 

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아뇨, 그쪽은요?”

 

탁도 고개를 흔든다. 우리 둘 다에게 신이 없다는 것, 신앙심이 없다는 것. 이런 것도 서로의 공통점이 될 수 있을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순결무구한 천상의 빛살에 스며든다. 그로인해 순해지고 맑게 정화된 느낌 속에서 우리는 입을 다문 채 오래오래 앉아 있다. 반 고흐는 이 교회에서 단 한번이라도 예배를 드린 적이 있을까.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저기 교회당 출입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아득한 신화의 뒤안길에서 환영의 그림처럼 새들이 날아오른다. 8월이었다. 오베르 성당문 밖에는 한 여름 태양이 뜨겁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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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js8049 2013-02-1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는 일상의 모든 것을 기록했던 아주 성실한 삶을 살았던 화가이다.
누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깨야 할 것이다.
왜냐면 후대들의 그려러니 짐작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오산이기 때문에..
매 순간 치열했고, 다가오지 않은 모두한 것에 열정을 품었던 그 시대나 현재나
보이지 않는 곳의 고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고흐의 기록을 따라 갈 자 누구이던가!
바쁜 와중에도 좋은 그림, 좋은 글로 인도 해 준 작가님,화가님
그녀를 우연히 알게 되어서 너무 행복해요.
축복의 삶이 예술과 함께 곷 피고, 스며드는 나날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김미진 2013-02-2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