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석촌리 들판>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한기가 화실 안을 감돕니다. 아직까지는 외출할 때마다 꽁꽁 싸매야 할 만큼 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 부드럽고 순한 기운이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오늘은 새로 배달된 냉장고 때문에 괜히 마음만 어수선했습니다. 그동안 10년 넘게 사용해 온 냉장고는 모터가 완전히 고장 나서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냉장고처럼 커다란 가전제품은 단순한 사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냉장고가 돌아갈 때마다 숨을 고르는 소리도 들리고, 곁에서 늘 내 일상을 엿보며 함께 지냈던 존재니까요.

 

냉장고야 잘 가렴! 그동안 수고 많이 했다.

 

새로 배달된 냉장고는 헌 냉장고에 비해 상당히 큰 사이즈입니다. 특별히 대용량을 주문한 것도 아닌데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의 사이즈가 그동안 많이 진화한 모양입니다. 텅 빈 냉장고는 하얀 동굴 같습니다. 환한 광채에 둘러싸인 고래 뱃속 같은 새 냉장고가 이제 내 위장과 인사를 나눕니다.

 

앞으로 잘해 보자고. 뭐든 열심히 먹어두는 게 좋아.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채워 놓도록!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그날그날 먹을거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만큼 시장에는 자주 가야 했겠지만

먹고 남아서 버릴 것도 별로 없었지요. 그런데 냉장고 사이즈가 점점 커지다 보니 쓸데없이 이것저것 사다가 무조건 쟁여 둘 때가 많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집어넣지 않은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반성합니다.

 

제발 이상한 소스 같은 것은 사오지 말자. 대형 마트보다 동네 슈퍼를 좀 더 자주 아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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