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두 자매>

Oil on canvas, 65.2×53.0cm, 2014

 

동네 카페의 구석자리는 언제라도 완벽한 위안을 선사한다.

낮 시간 동안 근처 부인네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독서 삼매경에 빠져든다.

창가 옆 테이블 한쪽에 앉은 두 여인은
같은 핏줄을 이어받았다고 해도 서로 절반쯤만 닮았다.

때로 서로 싸우고 안 좋은 소리로 얼굴을 붉힐 때도 있지만
내 살처럼 아프고, 그래서 운명처럼 애틋한 자매들이다.

창밖 신호등 앞에는 트럭 짐칸에 올라탄 여름이 어느새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 <가정식 백반>

Oil on canvas, 80.3×65.2cm, 2014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놓은 한식집 ‘백반 정식’은 제국주의 시대 기생집 요리였지 우리나라 전통 메뉴는 아니었다고 한다. 임금님도 평상시에는 5첩 혹은 7첩 반상 정도를 드셨다고 하니 TV에서 본 대장금표 식단은 과장이 좀 심했던 것 아닌가 싶었다. 미국 대통령이나 백악관 근처에 사는 거지나 아침은 거의 똑같이 먹는다는 말도 있다. 음식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확실히 우리네 식탁이 예전보다는 많이 여유로워졌다.


점심에는 뭘 먹을지 고민이었다. 작업실 근처에 저렴하면서도 깔끔한 밥집이 있어 발길이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이 가게에서 준비한 가정식 백반의 장점 혹은 단점은 그날 어떤 반찬들이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믿고 다니는 식당이니 뭐든 주는 대로 먹겠다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주요리는 갈치조림에 무국이었다. 쌈을 싸 먹을 야채에 나물 반찬도 두어 가지 있었고 밥에는 잡곡도 약간 섞여 있었다. 디저트로 수박 한 조각까지 올라온 식탁이 제법 풍성했다. 어떤 밥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가능한 골고루, 너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깨끗하면서도 따스한 식단이 항상 그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 <해남, 윤선도 고택 마을에서>

Oil on canvas, 60.6×50.0cm, 2014


고산 윤선도 고택이 있는 근처 마을의 모습입니다. 녹음이 짙은 땅끝 해남에서 만난 여름이, 꿈속 전경인 양 눈부시도록 푸르렀습니다.

얼마 전 문창과 학생들과 함께 해남으로 문학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강진 청자박물관에서는 직접 가마로 도자기를 구워내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입구에서부터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화력이 대단했습니다. 가우도 출렁다리 아래에서 마신 막걸리 한잔도 잊을 수 없고, 두륜산 대흥사와 고산 윤선도 고택 역시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해남의 여름> 

Oil on canvas, 53.2×45.0cm, 2014


짬이 날 때마다 이북으로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읽고 있었는데, 어쩐지 소설 속 장소들을 순례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20세기 초 한국 문단의 모더니스트 선두 주자였던 김영랑 생가도 빠뜨릴 수 없는 유적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나무. 이화 마을에서>

Oil on canvas, 45.2×38.0cm, 2014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내 인생에도 그런 나무가 있는데,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서 어딘가 깊숙이 숨겨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가능한 우아하고 멋진 치장이 필요할 듯도 싶었다.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나름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어떤 때는 마구 나뭇가지를 쳐낸 적도 있고, 다른 데로 옮겨보려고 무진 애를 쓴 적도 있었다.

밝음과 그늘이 서로 공존하는 것처럼 나무가 항상 싫었던 것만은 아니다. 내가 힘들거나 지쳤을 때 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삶의 무료함을 달래주기도 했다. 물론 나무는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나무가 부담스러워 누군가 송두리째 뽑아가거나 땔감으로 베어다 쓰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세상에 미약한 온기라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네게 부여된 임무는 충분히 마친 셈이야. 안 그래? 내가 빈정거리듯 툭 던진 말에 나무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어떤 답변이나 특별한 반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침묵이야말로 나무의 유일한 표현 수단이자 방어 기제였다. 가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이리저리 몸을 뒤채거나 머리카락을 휘날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정도의 단순한 움직임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내 나무를 탐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세상 어딜 가나 나무들 천지였다. 더 잘생기고 우람하게 쭉쭉 뻗은 나무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많고 많은 나무들 중에서 내 나무의 존재 가치는 불쌍할 정도로 미약했다.

너도 참 끈질기구나. 제발 나를 포기해줘. 인연을 끊어버리자고. 다른 데로 꺼지란 말이야!

정말로 화가 나서 하루는 극단적인 말까지 내뱉고야 말았다. 나무도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몸을 한번 움찔 떨더니 이내 잔 나뭇가지 몇 개를 투득 떨어뜨렸다.

나는 오랫동안 나무가 보이지 않는 곳을 헤매 다니기 시작했다. 나무를 없앨 수 없다면 나무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면 그뿐이었다. 나의 계획은 거의 성공한 듯싶었다. 나무에 대한 생각이나 사념들이 차차 줄어들더니 어느 시점부터인가 더 이상 그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내 머릿속에서 나무의 모습이 지우개로 진운 것처럼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지우개 부스러기를 후 불어버리고는 마른걸레질을 한 다음 그 위에 다른 것들을 잔뜩 올려놓았다.

세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삶과 인생의 여러 각도에서 그런 악순환이 강박증 증세처럼 빠르게 반복되었다.

나도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와 건강 보조식품이 늘어났고, 중요한 자리에 나갈 때는 염색을 해야 마음이 놓일 정도로 새치가 희끗거리기 시작했다. 앉았다 일어설 때면 끄응!’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하루는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옛날 그 나무가 있던 장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초여름 햇살이 부서지는 오후였다. 차창 밖으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나무 잎사귀들이 꿈속 풍경처럼 아련했다.

그리운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한순간 내 가슴이 애잔하게 젖어들었다. 반갑고 미안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심정들이 휘몰아쳤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건너 나무에게로 다가갔다.

나무는 한눈에 나를 알아본 듯했다. 내가 많이 늙고 거칠어진 모습이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나무의 따뜻한 시선 안에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오버랩되었다.

그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이제는 그저 바라본다는 의미를 나도 조금은 깨닫고 있었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볼 뿐이지만 그 침묵 속에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나무둥치에 기대어 앉아 침묵의 언어를 들었다. 그것은 애틋한 기다림의 언어였고, 용서와 깨달음과 포옹의 언어였다.

언어 이전의 언어로 나무가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봐.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니?

물소리는?

새소리는?

가끔은 햇볕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그때마다 바삭바삭 과자가 맛있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넌 귀를 열고 듣기만 하면 되는 거야.

가만히, 온 마음으로.

순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 <파란 지붕이 있는 풍경, 화석정>

Oil on canvas, 65.2×50.0cm, 2013–2014


온종일 작업을 하다 집에 돌아와 가나와 포르투갈의 경기를 시청했다. 보예 선수의 자책골, 중원에서 혼자 외로워 보이던 호날두. 두 팀 모두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독일과 미국에 밀린 모양이다. 공 하나를 두고 전 세계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2002년에는 한국이 포르투갈과 맞붙어 싸웠다. 스포츠에 별로 관심도 없던 나는 월드컵 관전평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미치고 싶을 땐 미쳐라’라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낯 뜨거운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우리가 그때 8강까지 진출했으니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조금 있으면 우리 전사들의 게임이 시작한다. 그때까지 제발 잠들지 말아야 할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