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권력이나 재물을 움켜쥘 때는 그 기회를 최대한 빠르게 잡지만 놓을 땐 그렇게 쉽게 놓지를 못한다. 조금만 더 라는 말과 아직은 괜찮겠지라는 말로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조금씩 연장을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가포 임상옥은 놓을 때를 감지한 순간 과감히 결정하고 실행한다. 그래서 가포는 대단한 사람이다. 계영배가 스승 석숭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 걸 알고는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원인에 대해서 정제해 나간다. 다른사람들이 커다랗고 사치하다고 말한 집, 지을땐 그 모든것이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은 집을 과감히 허물어 버린다. 그 집에 대해서 앞으로 나쁜일이 일어날거라는 조짐을 보여서가 아니라 집값으로 감옥살이까지 하고 유배생활까지 해서 사치의 집값을 해결하고 난 후에 말이다. 그 일에 대해서 값을 치루고 난뒤 다시 정리하기는 참으로 힘들다. 그렇지만 실행을 한다. 또 하나 본인이 목숨보다 사랑한 여인을 정리한다. 그 여인도 살 수 있고 본인도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서로가 헤어짐을 택한 것이다. 조선에서 더군다나 나라에서 관노로 만들어버린 사람을 다시 양민으로 만들어 준것은 어찌 보면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임상옥은 누가 뭐래도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에게 해가 되더라도 실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사업의 최고상에 있을 때 그 사업을 다른이에게 이양하고 본인은 채소나 키우는 일로 소일을 하면서 보낸다. 자기가 사업의 정점에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란 보통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작은 자리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게 세가지를 계영배를 통해서 깨달음으로 정리하고 노년을 보낸다. 그렇지만 그것이 모든 것이 아니었다. 석숭 스승님의 마지막 말... 그것은 본인의 상운과 운명이 다함을 아는 것이다. 그 깨달음도 깨닫게 되었을 때 바로 실행한다. 본인에게 부채가 있는 사람을 탕감해 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금한덩이씩을 함께 준다. 그것은 본인이 잠시 가지고 있던 재물을 사람들에게 다시 환원하는 일이란다. 물은 가만히 있으면 썩게 마련이라 흘러보내는 것이라면서.. 그렇게 재물을 쥘때와 놓을 때를 알아 그대로 실행한 가포 임상옥은 상업에서 도를 얻는다. 즉 부처가 된 것이다. 그 상업의 부처가 된 임상옥을 김기섭회장은 본인의 멘토로 삼아 그 사람의 모든것을 함께 하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엔 김기섭 회장의 죽음으로 가포 임상옥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현실의 사람이 된 것이다. 기업인들이 상도를 읽으면서 재물이 물과 같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니 기업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깨달아 실행해야 할 것이다.
흔히 신라의 화랑이라면 신라가 백제와 마지막 전투에서 신라에게 불을 당겨준 반골과 관창이 생각난다. 그들은 어린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물러섬 없이 꿋꿋하게 계백에게 대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였고 두고 두고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왔다. 그래서 화랑이라면 꿋꿋함, 용맹함, 의젓함, 충성심까지 모두 갖춘걸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진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에 한 선덕여왕을 보면서 화랑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를 비방하기도 하고 상대를 누르려고도 하며 권력을 누리려고도 하였다. 그리고 왕을 좌지우지하는 미실의 모습또한 놀라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왕을 그리 쉽게 움직일 수 있냐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 하기만 하였다. 충직한 화랑들도 그 충성의 대상이 왕이 아니라는 것이 이상하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순간 그런 느낌이 그 모순된 감정이 정리되는 듯 한다. 화랑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왕족이나 귀족이 되는 것이라 한다. 게다가 풍월주는 거의 세습이 된단다. 그 화랑을 만들고 지배하는 것도 왕이 아니라 태후들의 몫이었다. 그러니 모든 것이 권력과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를 섬기느냐에 따라 권력의 한켠에 줄을 댈 수 있는 듯 하다. 그렇기에 같은 원화지만 상대의 질투로 인해 술수로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책에 소개된 16명의 화랑들은 32명의 풍월주 중에 16명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16화랑 중에는 진정한 화랑으로서 낭도들을 잘 다스리고 나라의 전쟁에 앞장서 나가는 용감한 화랑이 있는 반면 화랑을 오로지 권력의 발판으로 삼은 화랑도 있다. 그러니까 밑에서 우러럼 받는 화랑이 아니라 세습된 화랑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흠돌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화랑은 처음부터 민간조직으로서 존재하던 것을 지소태후가 왕의 시위대 처럼 설립하여 나라의 관리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화랑들 중에서 인재들이 배출되어 신라를 이끌어 가는 중추가 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라가 통일을 한 후 나라의 일을 생각하는 화랑보다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화랑이 생겨나 점점 변질되어 갔다. 그것을 자의태후가 폐지했다가 다시 산천을 돌아다니며 수련하는 단체로 재정비 되었단다. 그래서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화랑은 존재했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신라인의 성의 문화였다. 신라가 성에 관대한 것은 여러책에서 조금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혼전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혼후에도 상급관직자가 하급자의 와이프를 취하기도 하고 하사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남자뿐만이 아니라 여인네들도 남자를 탐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남자들은 드러내놓고 하지만 여인네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여자나 남자들 모두 본인이 취하고 싶을때 취할 수 있다는 거다. 그 문란속에서도 나라에 위기가 생기면 전쟁에 뛰어드는 강함도 보여주기에 그렇게 욕할 만한 것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성행위를 색사로 표현하는 것은 색사도 정치에 관련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골품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한 방법이기도 하다.
상도 2에선 임상옥의 두번째 위기와 세번째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그런데 임상옥의 위기는 모두 재물보다 사람을 더 위에 생각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듯 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수도 있고 그 사람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동지로 만들 수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 위기가 닥쳐왔을 때도 원망하기 보다는 헤쳐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하는 모습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보통의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보다는 어찌 되었던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원망하며 피해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이들에게 그 원인을 넘기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위기가 피해가지는 않는데 말이다. 모두가 슬기롭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의 손은 사람을 살릴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단다. 사람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나에 따라서.. 그리고 결과에 따라서 악의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자선과 베품의 손이 될 수도 있다. 임상옥은 자신의 손을 사람을 살리는 손으로 만듦으로 해서 두번이나 대단한 커다란 피해를 본다. 한번은 1권에서 장미령을 살려준 일이다. 그것때문에 본인이 자리잡을 수 있는 곳에서 내쫓김 당한다. 가족들도 가난에 허덕이다 병까지 얻어 죽음을 당하고 어머니는 거의 걸식을 하는 행위까지 변한다. 본인 또한 이생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머리깍고 절로 들어간다. 그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사람을 살림에 대해서는 원망을 하지 않는다. 또 한번의 사람을 살리는 손을 행하는 것은 친구의 딸인 송이를 살리기 위함이다. 홍경래의 란때 대역죄인의 칼을 받고 노비로 전락하고만 이희저의 딸. 송이가 그의 딸인줄 알게 되면서 오로지 송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만 강구한다. 그러다가 소실로 데려와서 양민으로 만들어준다. 일종의 나라일에 대한 반항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때문에 감옥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유배된다. 유배지에서 계영배 때문에 살게 된다. 계영배가 깨어짐과 동시에 흘러내린 피. 그건 임상옥을 세번째 위기에서 구해준 한 사람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계영배..[계영기원 여이동사] : 가득 채우지 말고 너와 함께 죽겠다 : 란 글씨를 품고 있는 잔. 그 잔에 가득 넘치게 따르면 그잔에 무엇을 따르든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만 7부정도 알맞게 따르면 무엇을 따르든간에 그잔에 따라서 마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욕심을 과하게 부려 가득채우려고 계속 따르기만 하면 한 방울도 남지 않는 신기의 잔. 사람들은 그 신기의 잔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 한다. 왜냐하면 다들 적당히 알맞게 욕심을 버리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기엔 권력과 재물을 움켜쥐는 손이 너무 강하고 그 맛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보다 보면 다시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책이 있다. 상도가 바로 그런 책이다. 10년전의 어느날 책 다섯권을 잡고 쉴새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섯권이 결코 길지만은 않았다. 숨쉬기도 아까울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카로스에 계영배까지 덤으로 갖고 싶기도 하였다. 이카로스는 차가 출시되기 전이라 ( 그 후 카로스란 차가 나왔는데 그 차에 이 이카로스를 많이도 도입했었다) 갖기 힘들었지만 계영배는 또 그때 TV에서 상도를 하였기에 붐이 되기도 했던 잔이었다. 마침내 계영배를 손에 넣을 순간이 왔다. 울 회사에서 무슨 선물로 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계영배를 구입해서 준것이다. 계영배를 가지고 물을 따르고 또 따르고 하였던지. 그 신비함에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했었다. 그런 기억이 어느 순간엔가 다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10년의 세월이 떨림까지 잊어버리게 만든것이다. 2009년판 상도. 새로운 상도가 아니라 그때의 상도를 다듬은 책이다. 완전히 잊어버린줄만 알았던 기억이 책을 한줄 한줄 읽어갈수록 새록새록 머리에 떠오른다. 한줄을 읽으면 아~~ 이 다음이 이랬었지하는 기억. 그러면서 그때 느꼇던 감정까지 함께 떠오른다. 꼭 눈 내린 벌판에 다른 사람이 먼저간 발자국위에 내 발을 하나 하나 올려 가는 느낌이다. 이 책의 주인공... 현재의 김기섭 회장과 조선말의 상인 임상옥. 그들은 다르면서도 무지 닮은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정의와 열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둘은 같은 상인이라는 점에서는 닮았다. 다만 김기섭 회장은 현대를 살아간 사람이라 왕처럼 굴림한 사람이고 임상옥은 조선에서 상인으로서 살아가는지라 굴림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본인의 자리에선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임상옥은 어렸을 때 들었던 스님의 가르침을 손수 실천한다. 그때문에 삶마저 회의를 느낄 정도로 곤궁해지지만 그 가르침의 행함이 진정 의로웠던 행동임이 밝혀진다. 그것이 표창처럼 다시 돌아와 그 덕분에 상인이 되는 밑거름이 된다. 또한 임상옥은 자신이 한 행동에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구구절절이 설명을 하지 않아 주인에게까지 내쫓김을 당한다. 그럴땐 보는이가 안타까울 정도이다. 그렇게 꿋꿋한 임상옥의 거부가 되기전 삶이 1권에서 펼쳐진다. 앞으로의 거부가 될 초석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초석이 얼마나 단단하게 다져지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얼굴에 웃음까지 짓게 만든다. 상인이 거짓하나 없이 말이다.
책 소개에도 있듯이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한여름에 괴기영화.. 그렇지만 단순하게 괴기스럽지만은 아니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란 생각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물질에 대한 집착은 어디까지인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 말이다. 고귀하게 가난하지만 정신을 먼저로 두고 삶을 살아가는게 맞는 건지. 잠시지만 물질을 추구해도 아무렇지도 않는지란 생각도 함께 하면서 책속에 빠져 들어간다. 어느 부유했던 한남자의 죽음으로 인해 빚과 함께 남겨진 시몬과 딸 이레네, 아들 도리안 의 이야기다. 가장의 죽음만으로도 벅차기만 한데 거기다 모르는 빚까지 짊어지게 되어 시몬과 가족들은 가난에 허덕이게 된다. 그러다가 그 가난을 해소시켜줄 직장이 생긴다. 그 직장은 파란만에있는 대저택이다. 그곳에서 집사로 주인을 대신하여 우편물 정리와 도서를 구입하는 일을 한다. 게다가 대저택에 함께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만에 환하게 보이는 곳에 집까지 따로 주어졌다. 그들은 이제 가난에 허덕이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에 부풀어 그 섬에 도착하게 되고 주인과도 아주 순조롭게 맞대면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행복만이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시몬은 사랑했던 신랑을 떠나 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어리기만 했던 아이들도 자라서 이레네는 그 마을 청년 이스마엘을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도리안은 호기심에 맞게 섬지도를 만들기도 하고 섬을 관찰해가면서 행복안에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은 대저택의 요리사인 한나가 죽게 된다. 그 죽음으로 행복은 어느새 암흑의 구름을 탄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던 사랑이 불행의 시초가 되고 그 불행을 가만히 앉아서 처분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려고 활동하는 이레네와 이스마엘, 라자루스와 아내와의 영원한 사랑이 라자루스의 어릴때 결정 때문에 불행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불행과 가난때문에 물질에 굴복하여 정신까지 악마에게 내어주는 일이었다. 그것은 필요도 없는 그림자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그 그림자는 사악함에 똘똘 뭉쳐 오히려 그에게 사랑의 방해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해자가 되었다. 물질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지키는 것이 현 사회에선 오히려 바보짓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소설에선 그렇게 물질에 빠지면 인생까지 망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너무 쉽게 물질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가 보다. 게다가 사랑은 필요에 의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임을 일깨워 준다. 현실에서 사라져가는 진정한 사랑을 알려주는 듯 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