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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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멀리 있어야한다.  <본문에서>

 

이 책은 요리와 티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내 마음에 닿는 메세지는

바로 저 글귀였다.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하고 성냥불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중략>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본문 124~125>

 

 

 

책표지는 폴 고갱이 그린 타히티 여인들과 닮아있다.

원시적, 원초적 느낌이 물씬 나는...

 

전체적으로 환타지나 만화같다.  쉽게 사람이 죽는다.  그런 죽음에 세밀한 심리묘사는 없다.

그저 스토리가 전개된다.  슬픔도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티타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다가 토하기도 하고

갑자기 사랑을 느껴 최음제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음식을 먹고 사람들이 만들에 내는 리액션이

일본만화에서 보는 리액션과 닮아있다.

최근 심각한 책들만 읽다가 이 책을 읽으니 웃음이 막 터져나온다.

가볍다라고 느낄 수 있으나 이런 책 또한 필요한 것 같다.

 

먹는것과 사랑에 대해서 쓴 글이어서 그럴까? 

표지에서 느꼈던 것처럼 원초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랑도 이성적인 현대적인 사랑이 아니라 육감적이고 충동적인 것 같다.

티타가 페드로를 사랑하게 된 것도 좀 충동적이지 않은가?

뭐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점이 장점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티타가 존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지 못한게 아쉬웠다.

부드러운 햇살같은 존의 사랑을 티타가 받아들였다면 이 책이 싱겁게 끝났을까?

아 페드로는 티타를 사랑하기는 한걸까?

티타를 사랑했다면 티타가 존과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티타를 사랑한다고 그녀를 독점할 권리가 그에게 없고

그녀를 사랑하는 댓가를 그가 아닌 그녀가 치르지 않았는가?

책의 마지막부분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되돌아가서 읽기를 반복한 끝에

결말이 이해가 되었다.

 

티타는 전통을 부정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페드로와의 사랑을 선택함으로 떳떳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사랑으로 평생 지속한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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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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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소설이다. 

그래서 연애소설만큼 재미있지 않다.

하지만 책속 주인공들의 고통이 단지 그들만의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인 것 같아서 두려웠다.

 

소설은 미국의 대공항 시기의 농민들이 겪은 배고픔, 절망, 분노, 슬픔을 담고 있다.

두꺼운 책으로 두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그들의 힘겨움을 아주 세세히 담고 있었다.

작가가 이렇게까지 세세히 잘 알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서민의 배고픔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농민들이 은행에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 그마져도 모래바람으로 날아가버린다.  저당잡혔던 땅이 모두 은행으로 넘어가게 되자 오갈데 없어진 농민들이 대거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다.  희망을 안고서 고장난 차를 고쳐가면서 캘리포니아주로 가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농장주들은 일당을 점점 낮춰간다.  평범하게 성실하게 살아온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거지처럼 이주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나는 느낀다.

대기업에서 마트와 빵집까지 점령하고 있는 것이 단지 그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가능한 서민이 운영하는 상점을 이용한다.

서민들이 협동해서 만드는 공동체가 해답인것 같다.

요즘 협동조합, 생협이 많아지고 있다.

작은 힘을 모아 우리것을 지키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하나 고용자인 신분에서 벗어나 내 창작물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기계부품이 아닌 나만의 색깔을 가진 일을 하고 싶다.

 

이 책에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보았다. 

미국의 어머니인데도 책을 읽는 내내 한국의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남자들보다 더 의연하게 가족을 지키려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굳센 어머니상.

어머니는 그래야만 하는 가보다.

 

여자들은 몰래 남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중략>남자들의 얼굴에서 망연한 표정이 사라지고 강인함과 분노와 저항이 나타났다.  여자들은 이제 남자들이 주저앉지 않으리라는 것, 위험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남자들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본문 13~14페이지>

 

어머니가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아야만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까.  위대하면서도 하찮아 보이는 가족 내의 그 위치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차분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얻었다.  <중략> 어머니는 자신이 흔들리면 가족도 흔들리고, 자신이 심하게 동요하거나 절망에 빠지면 가족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본문 153~154 페이지>

 

 

여자들은 남자들을 지켜보았다.  결국 파국이 왔는지 보려고, 여자들은 말없이 서서 지켜보았다.  모여 있는 남자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대신 분노가 나타났다.  여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아직 파국은 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할 수 있는 한, 파국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2권 본문 432 페이지>

 

분노의 포도라는 제목은 절망적인 메세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나니 희망의 메세지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화내고 분노하는 건 아직은 완전히 끝난게 아니라 일말의 희망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믿음을 새처럼 높이 끌어올리지 말라.  그러면 벌레들과 함께 땅을 기는 일도 없으리라."

<본문 18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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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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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내가 간결하게 요약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그만큼 두꺼운 책이 세권이나 되니 한번에 내용파악이 안되어 답답해서였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한번 빠르게 읽고 다시 정독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다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독할 엄두가 안나서 1권과 3권을 부분부분 펼쳐서 읽어봤다.

 

우선 '러시아'가 흥미로워져서 러시아 역사서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들이 불어와 영어와 러시아어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상류사회의 토론문화가 부럽기도 했고 농촌에 대해서 논쟁하는 부분이 신기했다.

사교계 생활에서는 러시아가 유럽과 다른 게 무언가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상류층 기혼여성인 안나 카레니나가 오빠부부를 화해시키러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브론스키라는 젊고 미혼인 백작을 만났고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두 사람이 불륜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결과가 늘 그렇듯 불안전한 그들의 결합이 그녀를 심리적으로 혼미하게 만들었고

브론스키에게 버림받을까봐 신경이 예민해져있었다.  결국 그녀는 기차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브론스키가 안나를 따라 기차를 타고 고백하던 부분이다.  

그녀의 절제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피해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가 좋았다. 

물론 결과적으로 브론스키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안나와 남편의 나이차가 너무 심하게 났다. 

그 설정이 나를 안나편에 손들게 한다. 

 

톨스토이 작가에 대해서 감탄하게 된 부분은 안나가 브론스키가 자신을 버릴까봐 의심하고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이다.  남자가 어떻게 여자의 심리를 잘 묘사할 수 있엏을까? 

그 부분은 정말 여자가 쓴 것이 아닐까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오래된 남녀 사이에서 헤어짐을 예감할 때

느끼는 그런 감정과 같다고 할까?  아마도 사랑을 해본 여자라면 안나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했지 않았을까?

 

여자들의 인생이 보였다.

안나, 돌리, 키티, 돌리와 키티의 엄마

돌리의 남편은 집안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돌며 심지어 바람도 핀다.  그런 남편으로 인해

가난해졌고 많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힘들어한다.  특히 돌리가 안나를 찾아갔을 때 화려하고

우아한 안나에 비해서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한 돌리에 마음이 갔다. 

성실하게 가정을 지키고 있는 아내들이 자신을 위해 돈을 쓰고 투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렇게 희생아닌 희생으로 변해버린 외모를 본인도 남편도 자식도 싫어한다. 

그러니 나를 가꾸며 사는 것도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결혼했고 아이까지 낳은 키티에게서 행복함을 느낀다.  나도 그러했다. 

하루하루 감사하고 행복했다. 

 키티의 모습이 우리 신혼생활을 상기시켜서 즐거웠다.  다 그런 때가 있었지하며...

 

키티의 엄마가 키티의 혼사를 두고 불안해하다가 그르치게 됐다. 

나는 아직 그 정도의 나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일 수 있기에

눈에 들어왔다.  내게도 이쁜 딸이있고 어떤 사람과 결혼할지 궁금하다. 

나도 이러한데 심지어 다큰 딸이 있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그러할까? 

가끔 난 어떻게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결정하고 따른 것 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한다고 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딸이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나도 키티 엄마와 같은 그런 기분일 것 같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안나의 자살로 소설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자살 이후에

덤덤히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매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과감한 시도에 또 다른 생각을 해본다. 

 

삶이 이렇다는 걸 보여주는 걸까? 

삶은 그냥 살아가는 거다. 

삶은 고통스러워도 힘들어도 아파도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거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아!  하나님, 어디로 가야하나요?  <본문 454 페이지>

 

난 그에게 벌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서, 나에게서 벗어날거야  <본문 455 페이지>

 

내가 어디에 있는 거야?  내가 뭘하고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본문 456 페이지>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본문 45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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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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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화영 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유명한 분이신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아니 모르니까 안 보였다는 말이 정답일 것이다.

이 책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이자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이방인>의 느낌과 <alien>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많이 달랐다.

영어의 느낌이 훨씬 잔인하다고 할까?

다 읽고 난 소감은 카뮈의 글쓰기와 김화영교수의 번역의 조합이 아주 좋아서 정말 깔끔한 느낌이었다거슬리는 부분없이 잘 읽을 수 있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이 책의 배경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알제이다.

카뮈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이 책 제목과 통하는 듯했다.

그도 프랑스 본국입장에서 봤을 때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처음에는 하층 샐러리맨인 뫼르소가 엄마의 죽음에 통상적으로 슬퍼하지 않고 즐겁게 보냈다는 것과 우연히 싸움에 말려들어서 아랍인 한명을 총으로 처음에는 한발, 잠시 후 네발을 쏴서 죽이는 장면까지이다.

두 번째는 뫼르소의 재판과정을 담았다. 첫 장이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해서 자극적이었지만 이 일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담담함과 일상을 침해받아서 당혹스러움과 짜증이 약간 묻어나는 사실적인 글이 마음에 들었다현대소설같은 느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심리 중에서 보편적이지 않는 심리를 잘 담아냈다는 느낌이었기에 재판과정이 좀 어이가 없었다. 재판과정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담아서 뫼르소가 살인죄로 기소된 것인지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죄로 기소된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가족해체로 더한 범죄자도 뉴스에서 자주 접해서 그럴까?

내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뫼르소가 이방인이야? 그냥 평범한데?

사랑은 받은 만큼 주는 것이니 엄마가 뫼르소를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려서 방치 또는 학대 했을 수도 있으니 그럴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별다른 언급이 없이 뫼르소만 천하의 몹쓸 놈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고 다름 사람의 마음에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뫼르소를 사회는 부적응아로 낙인 찍었다그리고 그 사회에서 사형으로 퇴출시킨다. 그래야 사회가 안전해지니까...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는 프랑스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일들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우리사회도 차차 성숙해져가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는다. 또 우리 사회가 부모님을 양로원에 모시면 불효자로 낙인찍히는데 그 당시 다른 나라도 그랬다는 게 참 신기하다.

<책속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

 

또 일요일을 빼앗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11페이지

삽시간에 밤이 유리창 위에 짙어 갔다. 15 페이지

자당 어른이 여기서는 하나뿐인 벗이었는데, 이제 자기는 벗이 하나도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군요. 17페이지

  

고요한 아침에 물을 때리는 나직한 소리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고, 마침내 나는 지치고 말았다. 61 페이지

  

이제 태양은 찍어 누르는 듯 세차게 내리쪼였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65 페이지

  

더위가 어찌나 지독한지 눈을 멀게 할 듯 하늘에서 쏟아붓는 햇볕의 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67 페이지

  

또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69 페이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70 페이지

  

지내려면 물론 길게 느껴지지만 날들이 어찌나 길게 늘어지는지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 나서 경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하루하루는 그리하여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91 페이지

  

나중에는 나 자신의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가 마치 헐떡이는 개의 숨결과도 같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 나의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한번 스물네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었다. 126 페이지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13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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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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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이 책을 추천받아 읽을 때는 첫 부분부터 잘 읽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시도는 몇년이 지나서 동아리에서 이 책을 읽기로 정했을 때였다.

읽고 또 읽고 그래도 역시나 첫부분부터 잘 안된다.

 

그러다 아주 추운 겨울날 설매재 휴양림에 이 책을 읽었다. 

눈이 하얗게 내렸고 산 꼭대기 휴양림에서 가족이 모두 잠들고 나서

읽기 시작하니 내가 꼭 성 안에 갖힌 사람들 중 한사람이 된 것 같았다.

 

병인양요를 아주 자세하게 소설로 썼다.

청나라가 쳐들어오자 세자와 왕비는 강화도로 피신했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남한산성에서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버티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너무 추워서 발이 얼고 병사들이 죽어나가고

먹을 것이 동이나기 시작하면서 굶어 뼈가 앙상한 말들이 한마리씩 쓰러지면

그 말을 병사와 사람들에게 죽을 끓여먹이고

신하들은 두 패로 나뉘어 싸워야한다는 쪽과 항복해야한다는 쪽이 끊임없이 싸운다.

이저 저도 못하는 인조는 인자하지만 우유부단한 듯이 묘사된다.

 

나는 책을 읽고 탁 접으며 한숨을 쉬었다.

작고 힘이 없는 민족이었음이 속상해서였기도 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가 화가나기도 하지만

내가 왕이었어도 뾰족히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왜 작가는 많고 많은 역사 중에 가장 치욕스러운 조선의 역사를 이렇게 소설에 담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 많은 독자들은 조선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룬 소설을 왜 읽는가?궁금해졌다.

청은 왜 왕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조왕을 세웠는가? 

 

궁금한 것이 많이 생겼다.

 

대학교 때 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국 젊은사람들의 프라이드가 너무 높아져서 걱정이다.  국력이 받쳐주지 않는데

프라이드만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위험하다."라고. 

그때 나는 교수님이 이해되지 않아 반박했고 그런 나의 겁(?)없음에 놀라신 교수님이 

3시간 넘게 나를 앉혀놓고 설교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교수님의 마음이 이해된다.  

아마도 우리민족의 이런 역사에 비추어 말씀하셨을 것이다.

 

작고 힘없는 나라.  지금도 유효한지 모르겠다.

조선시대에는 명이나 청에 조공을 받치고 살았다면 지금은 미국에 의지해서 살고 있다.

어쩌면 그 방법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작은 나라가 아니던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뭘까?

절망감을 주고자함인가?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항복해야 할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 논의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인물 중에서 이시백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맡겨진 일을 묵묵히 충실히 행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게 맡겨진 일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그의 모습이 내게 닿는다.

나는 그를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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