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ㅣ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많은 정보와 저자의 철학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에 대한 풍부한 상식이 있다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난 이 책을 두번째 읽는다. 그래도 모르는 작가와 작품이 많아서 맛깔스럽게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은 찾아가면서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대하게 되니 기뻤다. 나중에 그림책을 더 읽은 후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저자의 글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리라.
단점이라면 이야기가 짤막짤막해서 더 알고 싶은데 그냥 모르고 넘어가게 된다는 게 좀 아쉬웠다. 작품 한 점에 자세한 설명에 익숙한 나와 독자들은 이 책을 접하고 좀 혼란스러웠을 듯하다. 미술과 시와 술에 능한 몇몇 사람들이 계곡 자락에 앉아 술잔 기울이며 한수씩 읉조리고 논할 것 같은 분위기의 책이라고나할까? 거기 끼기 힘든 나는 어쩔수없이 이 책을 여러번 읽어야하는 수고(?)를 해야했다.
대신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이 책으로 인해서 동양화와 한국작가들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것 같다. 나는 서양화나 서양문화를 선호했다. 그랬던 나의 기호가 앞으로는 이미 훌륭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우리의 옛 작품을 마주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듯하다.
특히나 <마파람 I>의 강요배씨가 눈에 띈다. 그의 풍경화는 바람과 눅눅한 습기를 포착해낸 점이 강렬하고 독특했다. 제주 출신이라서 그럴까? 이 작품만 그런게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도 전반적으로 눅눅했다. ^^
중국 현대작가 자유푸의 <무제>에도 보여주는 먹의 번짐이 그 동안 보아왔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어서 보는 이를 황홀하게 했다. 무지한 나는 먹을 이용한 현대적 감각에 놀라고 만 것이다. 앞으로 이 작가를 눈여겨 보게 될 것 같다. 작가에 대해 알고 싶어서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가 많지않아서 아쉬웠다. 언젠가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원숭이 화가 콩고의 추상화는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원숭이가 그려 전시까지 했다니... 원숭이에게 그림을 가르친 모리스의 의도는 현대인이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에 대한 또는 예술계에 대한 반감일까? 이 부분은 좀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추상화와 행위예술을 곧잘 해내는 이 원숭이들을 보고 그것이 인간의 것과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기는 좀 우습다.
홀바인의 <대사들>은 처음 접한 작품이 아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아니었다면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느낌을 모르고 그냥 지나갈 뻔했던 작품이다. 대사들이 입은 모피와 비단옷, 창가의 커튼까지 너무나 섬세하게 잘 표현되었던 것이다. 또한 작품 아래 양탄자 근처에 그 전에는 눈여겨 보지 못했던 괴이한 것이 보였다. 그것이 두개골일거라고 연구가들은 결론을 냈지만 왜 실제적이지 않고 왜곡된 형태로 작품의 앞쪽에 기이하게 배치했는지 궁금하다.
평론가들이 맵고 쓴소리를 포함해야 하는데 요즘은 너무 온갖 관념어와 췌사 등을 동원한 평문이 많은데 옛사람들의 그러한 관행도 소개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무렴 칭찬이 듣기에도 낫지 않은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제자 뻘인 허련과 흥선 대원군에게 같은 말로 칭찬을 했다고 한다. 허련에게는 "동인의 때를 벗은 화법, 압록강 이동에 이런 그림은 절무하다."했고 대원군에게는 "보내준 난 그림을 보니 압록강 이동에 이만한 솜씨가 없겠군요"했단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추사의 칭찬은 과찬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진도의 '운림산방'에 가면 허련 선생의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 나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20명의 작가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추천한 기사에서 많은 작가들이 가장 좋아한 작품은 겸재 정선의 산수화였다고 한다. 책에 소개한 작품은 <수박 파먹는 쥐들>인데 화면 중앙에 수박을 위치하고 수박을 작은 쥐가 정말 많이도 파먹었다고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나온 작품이었다. 앞쪽에 위치한 남색꽃은 어린 시절 자주 보던 들꽃이라 정감이 갔다. 난 근데 이 작품을 보면 왜 신사임당의 작품 <수박과 쥐>가 떠오를까? 요즘같으면 표절시비가 붙을만하다.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미술관에 들렀을 때 벗은 다윗의 몸을 다 보여주기가 뭣해서 앞 부분을 나무 잎사귀로 가렸다는 예화가 재미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시기는 도덕과 순결을 중시한 시기였는데 이 처녀 여왕이 다윗상을 보러 갔으니 밑에 사람들은 전전긍긍했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