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문명 - 원자에서 양자컴퓨터까지, 세계를 움직이는 양자의 힘
한정훈 지음 / 김영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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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의 역사에서 도구의 문명으로,

책을 펼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휴가 기간 바쁜 일상에서 빠져나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왔을 때,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쏟아지는 피로감에 침대에 등을 대자마자 잠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보낸 일주일 끝에 마침내 펼쳐든 한정훈의 《양자 문명》은, 단순한 과학 교양서를 넘어 양자의 역사를 통해 인류 문명의 뼈대를 다시 읽어내게 만드는 정교한 역사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명을 움직여온 동력이 증기에서 전기로, 그리고 전기에서 양자로 이어져 온 도구의 역사를 짚어낸다. 인류의 삶은 탄소 문명에서 전기 문명으로,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양자 문명의 입구로 진입하고 있다. 첫 번째 물결이 원자핵의 에너지를 다루는 시대였고, 두 번째 물결이 반도체와 레이저로 정보혁명을 일으킨 시대였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 번째 물결은 중첩과 얽힘이라는 자연의 확률 그 자체를 연산과 통신의 원리로 삼으려는 시도다. 도구가 사상과 제도를 앞질러 세상을 바꾸는 문명사의 법칙이 다시 한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양자 문명의 세 번째 물결이 ASI(인공초지능,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와 결합하는 미래를 상상할 때, 가슴 한구석에는 덜컥 두려움이 밀려온다. ASI는 인간의 지능을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으로 초월하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기존 고전 연산의 한계에 부딪혔던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호출된 양자컴퓨팅이라는 새로운 연산 엔진이 무한에 가까운 확률적 연산 속도를 제공하고, 여기에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ASI가 탑재된다면 그것이 가져올 변화의 파도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확실성을 포기하는 대신 여러 가능성을 한꺼번에 다루는 양자의 엔진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지 모르는 초지능의 결합은 문명의 위대한 도약이자 동시에 거대한 불확실성의 공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훈의 《양자 문명》이 주는 가장 큰 수확은 신비주의나 막연한 공포를 걷어내고, 손안의 전화기와 밤을 밝히는 전등 속에 이미 깊게 뿌리내린 문명의 언어를 냉철하게 읽어내는 문법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한 대 안에도 유리와 자석의 역사, 벨 연구소의 트랜지스터, 레이저와 원자시계가 겹쳐 있음을 깨닫게 되면, 양자라는 단어가 단순한 공포의 수사나 투자 테마로 쓰일 때 진짜와 과장을 가늠할 수 있는 단단한 혜안이 생긴다.

침대 위에서 겨우 첫 장을 넘겼던 그 일주일의 주저함이 무색하게, 책은 인류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윤곽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ASI와 양자 문명이 엮어낼 미래가 비록 두렵고 불확실할지라도, 확실하지 않기에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이 책은 막연한 미래 앞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가 이미 살고 있는 문명을 읽어내는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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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 ㅣ 그림으로 읽는 잠 못들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
마스다 유스케 감수, 정나래 옮김 / 성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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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스다 유스케의 멘탈은
멘탈을 근성으로 보지 않는다.
마음은 뇌이고, 마음의 피로는 뇌의 피로다.
무너지기 전에 몸과 관계와 지식부터 손보라는 말하고 있다.

남는 문장은 두 개다.

25장.
지금 고민이 5년 뒤, 10년 뒤에도 고민일지 중장기로 내다보라.
어떤 고민은 풀지 않아도 다음 생애 주기로 넘어가며 잊힌다.
오늘의 해상도로만 보면 모든 일이 급하다.
시간을 늘리면 해결할 것과 지나갈 것이 갈린다.

29장.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멘탈은 평생 무너진다.
멘탈을 돌보기 전에 먼저 돌볼 것은 몸이다.
연료가 떨어진 뇌에게 긍정하라 하는 것은 공회전이다.

이 두 장이 나머지를 삼킨다.
사회관계망의 한 줄도, 직장의 모욕도, 쉬는 날의 자기혐오도 결국 두 질문이다.
이것은 5년 뒤에도 고민인가.
지금 내 몸은 이 고민을 다룰 상태인가.

유튜브에서 한 정신과 의사의 말이 겹쳤다.
우울증은 보기보다 약이 잘 듣고 완치도 가능하다.
문제는 늦게 오는 것이라고.
경쟁자는 점집과 술과 친구이고, 마지막 경쟁자는 병원 문턱이다.
사회적 문턱, 남들의 시선만 넘으면 보기보다 허무할 만큼 낫기도 한다.

사람들이 점을 보고 술을 마시는 이유는
고민을 오늘 안에서 끝내려는 초조함이다.
요즘은 병원 문턱이 많이 낮아졌지만 인식의 문턱은 아직 높다.
지금의 고통을 영원의 고통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이 남는다.
우리는 문제를 반복하는가.
아니면 의심 없이 같은 순서를 반복하는가.
몸부터 보지 않고, 오늘 안에서만 풀고, 병원은 맨 나중에 가는 그 순서.

작가가 전하는 것은 강한 멘탈이 아니다.
고민의 수명을 재는 눈과, 몸부터 고치는 순서다.
그 두 습관이 생기면 표지의 질문도 작아진다.

지나가면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통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시간의 단위를 되찾으라는 말이다.
몸이 버틸 때, 시간은 실제로 지나간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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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인문 기행 3 - 고전 들고 떠나는 그리스 문명과 사상 유랑기 ㅣ 그리스 인문 기행 3
남기환 지음 / 상상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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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 기둥 위에 아테나가 도시를 내려보는 첫 장에 창을 든 손과 방패를 쥔 손, 투구 위의 벼슬, 그리고 도시를 한곳으로 모으는 눈빛. 그 아래 펼쳐진 사진은 파르테논이 앉은 아크로폴리스와, 언덕 기슭에 남은 극장의 돌이다. 남기환 작가님의 그리스 인문 기행 3권은 여기서 출발한다. 아테네에서 헬레스폰토스까지. 고전을 등불 삼아 문명의 발자취를 되짚는 길이다.

작가가 전하려는 것은 신전의 이름 나열이 아니다. 수호 여신이 내려다보는 도시가 어떻게 민회와 비극과 철학을 한꺼번에 품었는지, 그 영광이 왜 폐허로 남았는지를 걷는 속도로 묻는 일이다. 표지에 적힌 대로 신화와 역사와 삶의 이야기가 한자리에서 숨 쉬는 풍경을,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을 손에 들고 다시 지나가는 일이다. 독자에게 설명을 퍼붓기보다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만나게 하려는 태도가 첫 장부터 드러난다.

넘겨 읽기 좋은 책은 화려한 문장보다 자신만의 리듬을 가진 책이다. 이 3권은 그 리듬으로 아테네의 돌과 헬레스폰토스의 물결을 잇는다. 그리스에 가지 않아도, 고전을 한 줄 들고 그 길을 한 번 걸어볼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작가가 권하는 유람의 방식이다.

읽다 보면 이상한 대조가 떠오른다. 단군신화는 우리 곁에서 점점 얇아지는데, 그리스 신화는 다음 세대의 입과 화면 안에 그대로 살아 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오던 날, 주인을 스무 해 동안 기다리다 알아보고 쓰러진 개 아르고스의 죽음 앞에서 한국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천만 명 가까운 눈앞에 그 귀환과 그 개가 놓여 있는 풍경을 보면, 서양 문학권의 감수성을 온전히 느끼는 세대에 이미 들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기다림과 알아봄과 늦은 귀환이 우리 삶의 문법으로 스며든 것이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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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염증
김슬기 지음 / 서사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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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장이 아파본 사람은 공부를 시작한다.
왜 배가 무거운지, 왜 머리가 흐린지, 왜 피로가 안 풀리는지. 식탁 위의 염증은 그 공부의 출발점을 약봉지에서 밥상으로 옮기는 책이다.

저자가 전하려는 말은 분명하다.
만성 염증은 큰 병의 배경이고, 그 불씨는 매일 올리는 음식에서 자란다. 초가공식품과 첨가당, 치우친 기름은 불을 키운다. 색깔 있는 식물과 섬유질, 발효음식은 불을 줄일 수 있다. 장은 그 불이 머무는 집이다. 장과 뇌는 신경과 면역으로 이어져 있어 배의 소란이 기분과 잠까지 건드린다.

다만 절대 원칙이라는 말 앞에서 멈춰야 한다.
같은 식단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 내 몸으로 하나씯 테스트해야 한다. 바꾸는 중에 몸이 나빠지면 바로 멈추고 이전 식생활로 돌아간다. 정보를 맹신하지 않는다. 책은 나침반이지 선고가 아니다. 음식만 바꿔도 질병이 사라진다는 문장은 희망이지, 모든 몸에 해당하는 보증이 아니다.

나는 읽고 나서 편의점에 갔다. 평소 집던 초가공식품이 선반에 그대로 두었다. 손이 가지 않았다. 생수 하나를 들고 나왔다. 대단한 결심이 아니었다. 입에 들어갈 음식을 고르는 눈이 조금 생긴 것뿐이다.

독자가 얻는 것도 그 눈이다. 완벽한 식단이 아니라, 다음 끼니에서 불을 조금 줄이는 선택. 그 선택이 반복되면 장이 조금 고요해지고, 고요한 장은 머리에도 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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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진화의 세계 -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발견한 생존의 법칙
이정모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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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설명으로 시작하지 않고 목소리로 시작한다. 이정모 작가님은 극한의 자리를 밖에서 해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생명이 먼저 말하게 한다. 독자는 절벽과 사막과 심해와 우주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곳을 견딘 몸의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전작 『찬란한 멸종』이 사라진 생명들의 입으로 지구의 시간을 거꾸로 읽었다면, 이번 『극한 진화의 세계』는 살아남은 생명들의 입으로 현재의 생존 공식을 읽는다. 그 형식 자체가 이미 작가의 주장이다. 진화는 인간 바깥에서 일어난 일이고, 인간의 시선으로만 보면 길이 하나로 줄어든다.

작가가 전하려는 것은 기이한 생물 도감이 아니다. 지구 생명체의 90퍼센트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 산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진화가 더 강해지는 행진이 아니라 살 수 없는 자리에서 살 방법을 찾는 작업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는 멸종과 진화가 한 끗 차이라고 본다. 환경이 급변할 때 먼저 무너지는 것은 힘이 세거나 덩치가 큰 주류이고, 남는 것은 몸을 빨리 바꾸는 쪽이다. 표지의 초롱아귀와 물곰이 그 논리를 대표한다. 짝을 찾기 어려운 어둠에서 한 몸이 되는 길, 삶을 잠시 멈춰 우주를 견디는 길. 둘 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그 환경에서는 가장 값싼 해답이다.

읽다 보면 각 장의 동물들이 다윈을 우회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교과서의 소제목을 붙이지 않아도 장면이 개념을 대신한다. 자연선택은 더 강한 자가 남는 드라마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변이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알파인 아이벡스의 갈라진 발굽이 2밀리미터 틈을 딛는 일이 그 과정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잡히느냐 떨어지느냐의 두 위험 가운데 떨어질 위험을 선택한 몸이 살아남았다. 성선택은 생존과 별도로 짝을 얻는 길이 진화의 다른 날개임을 말해준다. 초롱아귀가 수컷을 암컷의 몸에 붙이는 방식은 화려한 깃털과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짝을 만날 확률이 극도로 낮은 심해에서는 그것이 구애다. 생존의 공식도, 번식의 공식도 하나가 아니다.


독자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동물의 목록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이다. 진화를 우승자의 사다리로 보던 습관이 내려앉는다. 숨고 붙고 멈추고 버리는 일이 패배가 아니라 전략임을 보게 된다. 동시에 인간이 살 수 있는 얇은 층의 지구를 너무 당연하게 써온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베란다의 개와 고양이는 그 돌아봄을 일상으로 끌어온다. 극한은 남극과 심해에만 있지 않다. 서로를 견디고 이름을 부르고 함께 늙는 일도 진화의 한 장면이다.

책은 인간에게 희망과 책임을 함께 맡긴다. 희망은 생명은 끝내 공식을 찾아왔다는 사실에서 오고, 책임은 이제 그 공식을 망가뜨리는 쪽이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온다. 유연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문장은 개인에게는 위안이 되지만 종 전체에게는 경고다. 몸이 아니라 선택과 제도가 유연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전쟁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위와 추위와 굶주림과 어둠을 견딘 생명들의 이야기를 읽은 뒤에, 같은 얇은 지구 위에서 서로를 부수는 일에 힘을 쓰는 풍경은 유연함의 반대편처럼 보인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이 자리를 어떻게 지킬지 배울 때라는 생각이 남는 것은, 책이 생존의 조건을 너무 선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것은 경이로운 생명 예찬을 넘어, 한계 앞에서 길을 하나만 고집하지 말라는 권유다. 독자가 얻는 것은 그 권유를 자기 삶에 옮길 수 있는 장면들이다. 절벽의 발굽, 사막의 귀, 심해의 한 몸, 우주의 정지, 그리고 베란다의 개와고양이. 그 장면들이 남으면 이 책은 이미 제 일을 한 것이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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