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극한 진화의 세계 -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발견한 생존의 법칙
이정모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8월
평점 :
이 책은 설명으로 시작하지 않고 목소리로 시작한다. 이정모 작가님은 극한의 자리를 밖에서 해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생명이 먼저 말하게 한다. 독자는 절벽과 사막과 심해와 우주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곳을 견딘 몸의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전작 『찬란한 멸종』이 사라진 생명들의 입으로 지구의 시간을 거꾸로 읽었다면, 이번 『극한 진화의 세계』는 살아남은 생명들의 입으로 현재의 생존 공식을 읽는다. 그 형식 자체가 이미 작가의 주장이다. 진화는 인간 바깥에서 일어난 일이고, 인간의 시선으로만 보면 길이 하나로 줄어든다.
작가가 전하려는 것은 기이한 생물 도감이 아니다. 지구 생명체의 90퍼센트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 산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진화가 더 강해지는 행진이 아니라 살 수 없는 자리에서 살 방법을 찾는 작업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는 멸종과 진화가 한 끗 차이라고 본다. 환경이 급변할 때 먼저 무너지는 것은 힘이 세거나 덩치가 큰 주류이고, 남는 것은 몸을 빨리 바꾸는 쪽이다. 표지의 초롱아귀와 물곰이 그 논리를 대표한다. 짝을 찾기 어려운 어둠에서 한 몸이 되는 길, 삶을 잠시 멈춰 우주를 견디는 길. 둘 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그 환경에서는 가장 값싼 해답이다.
읽다 보면 각 장의 동물들이 다윈을 우회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교과서의 소제목을 붙이지 않아도 장면이 개념을 대신한다. 자연선택은 더 강한 자가 남는 드라마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변이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알파인 아이벡스의 갈라진 발굽이 2밀리미터 틈을 딛는 일이 그 과정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잡히느냐 떨어지느냐의 두 위험 가운데 떨어질 위험을 선택한 몸이 살아남았다. 성선택은 생존과 별도로 짝을 얻는 길이 진화의 다른 날개임을 말해준다. 초롱아귀가 수컷을 암컷의 몸에 붙이는 방식은 화려한 깃털과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짝을 만날 확률이 극도로 낮은 심해에서는 그것이 구애다. 생존의 공식도, 번식의 공식도 하나가 아니다.
독자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동물의 목록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이다. 진화를 우승자의 사다리로 보던 습관이 내려앉는다. 숨고 붙고 멈추고 버리는 일이 패배가 아니라 전략임을 보게 된다. 동시에 인간이 살 수 있는 얇은 층의 지구를 너무 당연하게 써온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베란다의 개와 고양이는 그 돌아봄을 일상으로 끌어온다. 극한은 남극과 심해에만 있지 않다. 서로를 견디고 이름을 부르고 함께 늙는 일도 진화의 한 장면이다.
책은 인간에게 희망과 책임을 함께 맡긴다. 희망은 생명은 끝내 공식을 찾아왔다는 사실에서 오고, 책임은 이제 그 공식을 망가뜨리는 쪽이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온다. 유연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문장은 개인에게는 위안이 되지만 종 전체에게는 경고다. 몸이 아니라 선택과 제도가 유연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전쟁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위와 추위와 굶주림과 어둠을 견딘 생명들의 이야기를 읽은 뒤에, 같은 얇은 지구 위에서 서로를 부수는 일에 힘을 쓰는 풍경은 유연함의 반대편처럼 보인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이 자리를 어떻게 지킬지 배울 때라는 생각이 남는 것은, 책이 생존의 조건을 너무 선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것은 경이로운 생명 예찬을 넘어, 한계 앞에서 길을 하나만 고집하지 말라는 권유다. 독자가 얻는 것은 그 권유를 자기 삶에 옮길 수 있는 장면들이다. 절벽의 발굽, 사막의 귀, 심해의 한 몸, 우주의 정지, 그리고 베란다의 개와고양이. 그 장면들이 남으면 이 책은 이미 제 일을 한 것이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