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정력 수업 - 『넛지』 캐스 선스타인의
캐스 선스타인 지음, 신솔잎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평점 :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로 행동경제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저명한 학자지만, 그의 최신작 『결정력 수업』은 그 명성을 뛰어넘어 결정에 대한 그의 다층적인 통찰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의사결정 기법 안내서를 넘어, 법학자이자 정책 입안가로서의 경험까지 녹여낸 그의 독특한 시각으로 ‘결정 자체에 대한 결정‘, 즉 2차 결정의 중요성을 파헤친다. 이는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 속에서 길을 잃기 쉬운 현대인에게 복잡한 세상을 항해하는 독보적인 가이드가 되어준다.
이 책이 기존의 의사결정 관련 서적들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2차 결정(Second-order Decisions)‘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적 틀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많은 책들이 개별적인 1차 결정(무엇을 선택할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선스타인은 ‘어떻게 결정할지를 결정하는 방법‘이라는 메타적 차원의 접근을 시도한다. 이는 일상에서부터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에 이르기까지, 결정 과정에서 오는 인지적 부담과 피로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혁신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다양한 2차 결정 전략과 옵팅(opting) 기법 등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며 결정 과정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차별점을 갖는다.
선스타인의 이러한 독보적인 관점은 그의 다학제적인 배경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비합리성을 행동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가 결정 환경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법학),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적 결정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정책학)를 아우른다. 이는 그의 책이 단순히 개인 심리 분석이나 추상적인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 정책 설계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실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학문적 깊이와 실용적 적용 사이의 균형을 성공적으로 잡아낸 비결이다. 때로는 실용적 추론의 철학적 측면까지 파고들며 단순한 자기계발서를 넘어선 깊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넛지』와의 차별성은 이 책의 정체성을 명확히 한다. 『넛지』가 타인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유도하는 ‘선택 설계‘와 정책적 함의에 무게를 두었다면, 『결정력 수업』은 개인 자신의 결정 과정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독자가 외부의 ‘넛지‘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결정력을 키우고 관리하는 주체로 나아가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선스타인은 인간의 인지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완벽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대신 인지적 한계를 고려한 현실적인 결정 접근법을 제시한다. 이는 많은 의사결정 이론이 인간의 합리성을 과대평가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며, 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정서적 비용까지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더욱 인간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은 변화하는 기술 환경, 특히 AI 시대의 결정 과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시의성을 갖는다. 정보 과잉과 알고리즘 기반의 결정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결정이 AI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어떤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는지를 탐색한다. 이는 전통적인 결정 이론이 다루지 못했던 지점을 짚어내며, 디지털 시대의 복잡성 속에서 개인의 결정 자율성과 자유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결론적으로, 캐스 선스타인의 『결정력 수업』은 ‘2차 결정‘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저자의 다학제적 배경에서 길어 올린 깊이와 실용성을 겸비한 책이다. 『넛지』를 넘어선 개인 결정 과정 자체에 대한 집중, 인지적 한계를 인정한 현실적인 접근, 그리고 AI 시대라는 변화된 환경까지 포괄하는 그의 논의는 기존 의사결정 서적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다는 것은 말하는 자가 그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는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고 싶다. 사실 이 작가의 이전 책을 읽기 어려워했던 이유를 잊고 있었는데, 몇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의 학문적 깊이와 방대한 지식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때로는 다소 장황하게 느껴지는 서술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몰입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었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독서 경험에 따른 감상이지만, 혹 다른 독자들 중에서도 그의 스타일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음을 언급해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현명하게 결정하고, 나아가 스스로의 결정 과정을 관리하며 삶의 주체성을 지켜나가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이 던지는 화두와 통찰은 여전히 귀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