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글을 오랜만에 읽었다. 바이올렛이후 6년만에 내는 소설이란다. 그렇게 오래되었던가?
신경숙이 그려낸 주인공들은 늘 코스모스같다는 생각을 했다. 화사하고 우아한 꽃이지만 가느다란 줄기로 이리저리 바람 불 때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걸보면 안따까움이 절로나는 코스모스. 봄의 따뜻함 속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가을 찬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이른 서리를 맞기도 하는 코스모스처럼 약하고 여리고 감성적인 주인공들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글들을 읽다보면 도무지 현실적인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집착하는 주인공들의 집요한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직도 이렇게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왜 이렇게 사나? 무엇때문에 자신을 이리도 힘들게 만드나? 하는 연민과 안타까운 마음이 그녀들을 현실속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싫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신경숙 소설의 매력이기도 한 것 같다. 매번 기다려지는 걸 보면. 그녀가 역사소설을 썼다기에 흥미가 있어서 사두었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리진.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입김에 풍전등화였던 조선말. 궁중의 최고 무희. 프랑스공사관의 사랑을 받고 파리로 건너가 근대의 시작점에 서 있었던 여인.
이 책을 읽으면서 정작 주인공인 리진보다 더 마음을 끌었던 인물이 세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방식.
첫번째는 명성황후
딸과 같이 가까이두고 예뻐하던 리진이 어느덧 여인으로서의 한껏 물이 올랐을 때 왕의 눈에 띌까 먼 프랑스로 보내 버린다. 리진에게만은 다른 궁녀들과는 다른 속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자로서의 질투심이 어미로서의 포용력을 눌러 버린 것이다. 야속타 한마디 하지 않는 리진,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그녀를 보내면서 그 속도 아팠을 것이다. 자존심 강하고 오만하며 현명한 그녀는 아마 역사를 제대로 태어났다면 위대한 이름으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아버지와의 대립, 유약한 남편, 밀려드는 열강의 압력, 그런 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은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고 현명함은 퇴색되었고 판단력또한 빛을 잃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리진과의 하룻밤. 밤새 잠을 못이루던 왕비의 넋두리.
"내 소망은 내가 살아날 길이 백성들이 살아날 길이기를 바랐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꿈이었을까? 어이된 일인지 내가 살길을 찾는 길은 늘 백성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질 않았느냐. 조선을 부강하게 하려고 한 그 뜻은 어디가고 내가 들인 외세로 내 백성을 치게 하는 격이 되었을꼬.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이리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인지 알아보고 싶으나 내가 올라탄 등은 호랑이 등이었느니. 한번 타고 나니 내릴 길이 없구나"
어쩌면 먼 타국까지 가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 회귀본능으로인해 몽유병을 얻는 리진의 삶보다 명성황후의 삶이 더 가여웠다. 국모로서도, 또한 어머니로서도 결코 평탄치 않았을 이 자존심 강한 여성이 가엾다.
두번째는 서씨. 이렇게 선함만으로 똘똘뭉친 인물을 만나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불행한 자신의 삶을 이리 타인을 위해 타오르게 만드는 인물은 정말 경외스럽다.
두 어머니의 서로 다른 사랑. 명성황후가 이기적인 모성을 지녔다면 서씨는 희생적인 모성애를 지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벙어리 궁중악사 강연.
리진이 왜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했을까? 단지 그녀 곁에 머물기 위해서 많은 기회들을 뿌리치고 그림자처럼 곁을 지켜준 그를 왜 리진은 알아보지 못했을까? 궁중무희와 궁중악사라 부부의 연은 맺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오누이처럼 그렇게 늘 함께 할 수는 있었을터인데. "널 사랑하는 마음을 어디에 대어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세상이 좁다는 걸 알게된다"는 사랑을 다시 어딜 가서 구할 것인가. 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덧붙여 리진을 사이에 둔 콜랭과 강연의 사랑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았다.
마치 세상의 전부인양 리진을 사랑하던 콜랭은 리진을 홀로 남겨두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근대서구 사회의 대표적 인물인 콜랭은 합리적이고 다정하며 늘 타인을 배려하나 개인주의적이다.그래서 그가 원하는 사랑은 돌려받는 사랑이다. 그녀의 죽음앞에서도 그는 자신에게 한 마디도 남겨놓지 않았음을 이로인해 자신의 사랑을 돌려받지 못했음에 화를 내고 스스로 상처받는다.
그리고 강연의 사랑. 자살하여 죽은 그녀의 무덤가에서 죽음을 택한 강연은 그녀를 위해 많은 기회를 뿌리치고 결국 손가락까지 잃는다. 모든 것을 그녀를 위해 순순히 내어준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은방울. 어젯밤으로 나는... 되었다. 모든 것이 되었어. " 그저 하룻밤 옆에서 같이 잠을 잤을 뿐인데 강연은 그것으로 다 되었다했다. 그녀를 생각하며 보냈을 그 긴 시간과 불멸의 밤들이 다 보상되었다 한다. (강연의 사랑의 아픔이 가슴으로 와닿아 너무 슬펐다)
근대적 인물의 상징인 콜랭과 전근대적 인물인 강연의 사랑은 그렇게 달랐다.
어리석기까지 한 강연의 사랑은 이미 지나버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옛날처럼 더이상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귀한 것이며 그래서 더 가치있는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