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은 아가사 크리스티를 좀 읽었고  어릴 때 셜록홈즈 무지 좋아했고(어릴 때 셜록홈즈 안 좋아한 사람도 있을까?ㅋㅋㅋ) 뭐. 이정도...

 그다지 추리소설 매니아는 아니지만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과 '미스테리 극장 에지'가 끝나자 안따까움을 금치 못했으며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와 '21C 소년단'에 빠졌으며 명탐정 코난의 광팬이니 추리영역을 싫어하진 않는 듯 하다.

 그리고 몇 달전에 미야베 미유키의 '나는 지갑이다'와 놀라운 반전이라고 소개된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게 되었다. 나는 지갑이다는 뻔한(처음부터 살인자가 누구인지 다 드러난 상태라 추리의 즐거움은 없음)내용을 여러 인물들의 지갑이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이끌어가는 내용이라는 좀 새로운 시각의 신선함이 있었다.

그리고 살육에 이르는 병은 놀라운 반전(반전이 정말 놀랍기는 하다. 아니 놀랍기만 하다 )보다는 살인장면의 잔혹함에 더 놀라며 한동안 정신이 피폐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묘하게 추리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이런 걸 중독이라고 하나보다 ㅎㅎㅎ)

일본 추리소설도 많이 나와있었지만 우리나라 추리소설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 뒤적이다 이 책을 발견했다. 책 표지도 예쁘고(추리소설에 너무 적합한 표지이지 않은가? 이 표지를 보고도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기대되는 우리나라의 추리소설작가들의 단편이 총망라되어있다는 추천글에 망설임없이 사서 읽었다.

음... 사설이 너무 길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좀 심심하고 너무 착한 추리소설들이다.

살육에 이르는 병이 살인장면의 잔혹함, 살인자의 이상심리 등을 너무 상세하고 자세하게 나열하여 주된 추리의 묘미보다는 잔혹함에 이끌려 인상을 쓰면서 오싹오싹 소름을 돋아가면서 읽었는데 이 책은 한 낮에 막간을 이용해서 읽어도 충분했다. 그리고 몇 편은 추리소설이라 이름붙이기에도 부끄러운 그냥 단편소설이라 부르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도 "한국추리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국추리소설가들의 선물쯤으로 이해하여주고 한국추리문학이 발전한다면 이는 순전히 당신들의 힘이다" 라는 서문을 먼저 읽고는 추리소설에도 알량한 민족정신이 발휘되어 그래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제 걸음마를 떼었으니 우리 추리소설계도 눈부신 발전이 있을꺼야라고 생각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즐겁게 읽었다.(하나도 무섭지도 않고 ㅎㅎㅎ)

'반가운 살인자'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살인자를 찾아가는 과정에 미스테리를 좀 더 가미했으면 더 좋았을테이지만 실직가장의 절망적이고 아픈 마음에 공감하면서 마음이 좀 아팠다.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는 사랑' 은 흥미있게 읽었다.

이 참에 올해의 추리소설 시리즈를 몇 권 더 구입했다.

우리나라 추리소설계의 눈부신 발전을 기대하며~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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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의 글을 오랜만에 읽었다. 바이올렛이후 6년만에 내는 소설이란다. 그렇게 오래되었던가?

신경숙이 그려낸 주인공들은 늘 코스모스같다는 생각을 했다. 화사하고 우아한 꽃이지만  가느다란 줄기로 이리저리 바람 불 때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걸보면 안따까움이 절로나는 코스모스. 봄의 따뜻함 속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가을 찬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이른 서리를 맞기도 하는 코스모스처럼 약하고 여리고 감성적인 주인공들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글들을 읽다보면 도무지 현실적인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집착하는 주인공들의 집요한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직도 이렇게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왜 이렇게 사나? 무엇때문에 자신을 이리도 힘들게 만드나? 하는 연민과 안타까운 마음이 그녀들을 현실속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싫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신경숙 소설의 매력이기도 한 것 같다. 매번 기다려지는 걸 보면. 그녀가 역사소설을 썼다기에 흥미가 있어서 사두었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리진.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입김에 풍전등화였던 조선말. 궁중의 최고 무희.  프랑스공사관의 사랑을 받고 파리로 건너가 근대의 시작점에 서 있었던 여인.

이 책을 읽으면서 정작 주인공인 리진보다 더 마음을 끌었던 인물이 세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방식.

첫번째는 명성황후

 딸과 같이 가까이두고 예뻐하던 리진이 어느덧 여인으로서의 한껏 물이 올랐을 때 왕의 눈에 띌까 먼 프랑스로 보내 버린다. 리진에게만은 다른 궁녀들과는 다른 속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자로서의 질투심이 어미로서의 포용력을 눌러 버린 것이다. 야속타 한마디 하지 않는 리진,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그녀를 보내면서  그 속도 아팠을 것이다. 자존심 강하고 오만하며 현명한 그녀는 아마 역사를 제대로 태어났다면 위대한 이름으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아버지와의 대립, 유약한 남편, 밀려드는 열강의 압력, 그런 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은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고 현명함은 퇴색되었고 판단력또한 빛을 잃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리진과의 하룻밤. 밤새 잠을 못이루던 왕비의 넋두리.

"내 소망은 내가 살아날 길이 백성들이 살아날 길이기를 바랐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꿈이었을까? 어이된 일인지 내가 살길을 찾는 길은 늘 백성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질 않았느냐. 조선을 부강하게 하려고 한 그 뜻은 어디가고 내가 들인 외세로 내 백성을 치게 하는 격이 되었을꼬.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이리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인지 알아보고 싶으나 내가 올라탄 등은 호랑이 등이었느니. 한번 타고 나니 내릴 길이 없구나"

어쩌면 먼 타국까지 가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 회귀본능으로인해 몽유병을 얻는 리진의 삶보다 명성황후의 삶이 더 가여웠다. 국모로서도, 또한 어머니로서도 결코 평탄치 않았을 이 자존심 강한 여성이 가엾다.

 두번째는 서씨. 이렇게 선함만으로 똘똘뭉친 인물을 만나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불행한 자신의 삶을 이리 타인을 위해 타오르게 만드는 인물은 정말 경외스럽다.  

두 어머니의 서로 다른 사랑. 명성황후가 이기적인 모성을 지녔다면 서씨는 희생적인 모성애를 지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벙어리 궁중악사 강연.

리진이 왜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했을까? 단지 그녀 곁에 머물기 위해서 많은 기회들을 뿌리치고 그림자처럼 곁을 지켜준 그를 왜 리진은 알아보지 못했을까? 궁중무희와 궁중악사라 부부의 연은 맺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오누이처럼 그렇게 늘 함께 할 수는 있었을터인데. "널 사랑하는 마음을 어디에 대어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세상이 좁다는 걸 알게된다"는 사랑을 다시 어딜 가서 구할 것인가. 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덧붙여 리진을 사이에 둔 콜랭과 강연의 사랑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았다.

마치 세상의 전부인양 리진을 사랑하던 콜랭은 리진을 홀로 남겨두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근대서구 사회의 대표적 인물인 콜랭은  합리적이고 다정하며 늘 타인을 배려하나 개인주의적이다.그래서 그가 원하는 사랑은 돌려받는 사랑이다. 그녀의 죽음앞에서도 그는 자신에게 한 마디도 남겨놓지 않았음을 이로인해 자신의 사랑을 돌려받지 못했음에 화를 내고 스스로 상처받는다.

그리고 강연의 사랑. 자살하여 죽은 그녀의 무덤가에서 죽음을 택한 강연은 그녀를 위해 많은 기회를 뿌리치고 결국 손가락까지 잃는다. 모든 것을 그녀를 위해 순순히 내어준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은방울. 어젯밤으로 나는... 되었다. 모든 것이 되었어. " 그저 하룻밤 옆에서 같이 잠을 잤을 뿐인데 강연은 그것으로 다 되었다했다. 그녀를 생각하며 보냈을 그 긴 시간과 불멸의 밤들이 다 보상되었다 한다. (강연의 사랑의  아픔이 가슴으로 와닿아 너무 슬펐다)

  근대적 인물의 상징인 콜랭과 전근대적 인물인 강연의 사랑은 그렇게 달랐다.

어리석기까지 한 강연의 사랑은 이미 지나버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옛날처럼 더이상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귀한 것이며 그래서 더 가치있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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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7살 큰 딸 아이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저 건강하게만 크면 좋겠다고 늘 바래왔지만 밖에 나가서 노는 거만 좋아하는 녀석을 보면서 내심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 때 학교에서는 오전 독서하기 지도 열풍이 불었다. 모든 반 아이들이 반드시 10분씩 모두 시간을 내어서 책을 읽게 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그러나, 10월에 있을 시학력평가시험으로 인해 이런 독서지도는  어느새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학교성적올리기에 급급한 교장선생님의 지시로 독서시간은 과감히 없어지고 그 대신 시험대비 방송수업을 한다. 왜 어른들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지 아이들도 헷갈릴 것이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할까? 추천도서를 뽑고 독서록을 만들게 하고 독서대회를 열어 상도 주면서... 공부를 잘하게 하기 위해서? 책속에 길이 있기 때문에? 교양있는 어른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그전에 어릴 때 내가 왜 책을 읽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밥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말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책에 열중했던 적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어릴 때의 책 읽기를 아주 강조하는 어떤 이 에게 한 사람이 물었단다."아이가 책에만 빠져있어 친구들과 놀려고 하질 않아요. 혹 사교성이 떨어지진 않을까요?" 어떤 이는 이렇게 답했단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책을 통해서 사교성, 도덕성, 사회규범 등 필요한 모든 가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너무 책에만 빠져있다고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지요"라고.

그러나, 그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 의문스러웠다. 분명 책을 통해 선함과 현명함을 배우고 또 다양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는 있겠지만 직접 부딪쳐서 알게되는 경험적 지식이란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답이 보였다.

 책과 친해지면 아이들은 모든 걸 배울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하지만 책 읽기가 정말 빛을 내려면 책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책과 함께 만남을, 일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조개껍데기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듯, 아이들 책 읽기는 사람들과 어울림 속에서 빛나게 영글었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희망을 찾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p50)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박영숙관장님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만들기 위해 단순히 도서관을 열고 그 속에 좋은 책으로 가득 채워놓기만 했다면 느티나무는 커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감명을 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도서관을 운영하는 방식은 아이들과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우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나, 거리의 가출 청소년에게나, 학원도 못갈 정도의 형편이라 그저 갈 곳이 없어 놀기위해 오는 아이들에게나, 그런 사람들과의 일상과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 책 읽기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책 속에 길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재미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고 엄마, 아빠와 노는 것이 재미있듯이, 그저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 생각을 들어보고 그 삶을 엿보고 하는 일이 재미있어서다. 내가 어릴 때 밥먹으러 오란 소리도 못들은 척 책에 빠졌던 시간에는 그 순간 그게 더 재미있어서다.

 사람이 살면서 즐거움을 갖는 일은 아주 다양하다. 스포츠를 즐기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또 어떤이는 돈을 버는 것이, 어떤 이는 공부를 하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그런 즐거움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교양이 부족하다고 속으로 비웃을 일도 없고 아이들에게도 책읽기를 강요할 필요도 없다. 그저 혼자서 책읽는 게 즐겁다면 그렇게 하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게 행복하다면 그러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박영숙관장님은 그녀 자신이 그 즐거움을 알기에 그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애를 쓰신 것 같다. 그래서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그 많은 뒤치닥거리 일들은 사서 만드신 것이리라.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출 청소년에게 밥을 사주고 보호자가 없는 아픈 아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도서관에 모이게 한 것 같다.  그녀의 노력덕에 분명 아주 많은 사람들이 즐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나는 책 읽기가 재미있고, 책 내용에 대해 같이 수다떨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즐겁다. 7살, 4살 두 딸이 나와 같은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함께 얘기할 수 있다면 더 즐거울 것 같다. 내가 이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리 될 것이다. 그러자, 친구들과 밖에 나가 놀기를 즐기고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딸 아이를 좀 더 기다려 줘야겠다는 느긋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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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다닐 때 친했던 내 친구 하나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이 없는 성격으로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아주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가벼워 보였었지만 그애가 책사이사이에 써놓은 짧은 글귀들이나 주고 받은 쪽지들에서 그애는 늘 새로운 감각으로 가득찬 감상적인 글들을 남기고는 했다. 말과 행동과 그녀의 글에서 느끼는 불일치감이 묘하게 그 친구를 매력있게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예를들면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를 물어보면 " 그 애는 비가 내린다고 말하지 않고 비가 온다고 말해. 그게 싫었어" 이런 식. 감각적인 그 친구와는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2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갑자기 그 녀석이 보고싶군. 내일 전화 한 통 해봐야 것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친구 생각이 난 것은 그때 내 친구가 좋아했던 소설가가 한수산이었고 친구의 추천으로 한수산의 책을 몇 권 읽었기 때문이다. 바다로 간 목마 같은 책들...

 온다 리쿠는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가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20살의 나이에 내가 읽었던 한수산의 글이 떠올랐다. 아주 감각적이고... 아, 이렇게도 표현을 할 수 있다니... 하며 감탄하게 되는 순간 순간의 문장들.

 막 출발했을 때는 누구나 침묵을 두려워하며 수다를 떨었으나, 이제는 침묵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말이 몸속에 가득 차 있지만, 자신의 속에서만 가득 차버려 이야기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P61)

 해질녘에는 주위가 어두워져 가는데다 피로가 겹쳐 우울해졌지만 해가 저물어 버리자 오히려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새로운 세계의 주민이 된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낮의 세계는 끝났지만, 밤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언제나 기대에 가득 차 있다(P105)

기분이 가라앉자 격한 감정에 휩쓸린 후의 허탈함이 찾아왔다(P133)

대체로 우리 같은 어린아이들의 부드러움이란 건 플러스의 부드러움이잖아. 뭔가 해준다거나 문자 그대로 뭔가 준다거나. 그러나 너희들 경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주는 부드러움이야. 그런게 어른이라고 생각해.(P196)

어렴풋이 밤이 새기 시작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한겹씩 막이 벗겨져 가는 것처럼, 그때까지 어둠에 가라앉아 있던 것이 우르르 앞으로 떠밀리듯 올라왔다(P245)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짐없이 열을 내뿜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때는 생물이라는 것이 일개의 연소기관이구나 하는 걸 실감한다(P281)

이런 구절들이다. 이런 구절들이 별 것 아닌 주제의 소설에 양념을 치듯이 적절히 배치되어있다. 그래서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멋진 글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이러니 읽는 동안에도 문장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읽고 싶어졌다.

별 것 아닌 내용인데... 말 그대로 하룻동안 보행제에 참여한 고등학교 3학년 생들의 이야기일 뿐인데 단순히 그것뿐이었는데 읽고 있는동안 왠지 맘이 짠해온다.

조심스럽게 친구들을 깊이 배려하고 좋아해주는 심지 굳고 성숙한 10대들을 보니 부럽기도 했고 질투도 났다. 내가 어릴 적에 저토록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가. 그러기 위해 나는 노력했던가. 결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이들의 모습이 부러워서였을까? 자꾸만 옛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보행제라는 행사를 우리 학교에서도 할 수 없을까? 거기서 거기인 코스대로 움직이는 수학여행이 아니라 1년을 준비해온 보행제라는 행사를 통해 단 하루동안이지만 아이들과 어른들도 부쩍 성장할 수 있는 그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

애들이 조금 더 크면 무작정 걷기만 하는 여행을 꼭 해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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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정말 진국이다. 가볍게 읽히지만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 지로의 성장소설이지만 현실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콕콕 찝어내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처음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읽었는데 어느새 푹 빠져서 아마도 그의 팬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간결한 문체와 톡톡튀는 대사, 군더더기 없는 내용, 사춘기 소년의 시각이라 눈높이를 낮추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들...

지로의 친구인 곰삭은 늙은이 같은 말과 행동의 무카이(얼마나 귀여운가!). 현실적이고 재바른 준(이 놈도 너무 맘에 든다), 불량학생 구로키(밥 한 번 사먹이며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다), 건방지고 똑똑하며 허영과 진실을 구분할 줄 아는 나나에.  그리고 선량하고 가족적인 남쪽 섬 이리오모테의 섬 주민들.  또한 아이들을 존중하고  남의 사생활을 문제삼지 않으며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면서도 온화함을 잊지 않는 파이카지학교의 선생님들.  마지막으로 사회부적응자이며, 권력에 불응하는 무정부주의자이며 그리고 진정한 투사이자 자유롭고 강한 영혼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

 아이는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한다. 강인해보였던 아버지가 현실에 타협하면서 조금씩  비굴해지고 이중적이 되는 것을, 그리고 뒤돌아서는 굽은 어깨를 나약함을, 어느새 키가 쑥쑥 자라 아버지 키 만해지면 아이들은 그제서야 조금씩 아버지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한 인간으로 동정하게 된다. 대부분의 성장소설 속 아버지와 아들관계가 이러하다. 현실도 그러하므로.

 이 책의 주인공인 우에하라는 다른다. 젊었을때의 이상이 현실속에서 변질되고 자식들을 위해, 보다 안정적인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며 비굴해지는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에하라는 끝까지 현실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꿋꿋하다.  그럼에도 도시에서의 우에하라는 난폭하고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어려운 말만 늘어놓으며 학교에 찾아와서 선생님에게 쓸데 없는 말까지 늘어놓아 아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든다. 그러다 결국 쫓겨나다시피해서 섬에 가게 된다.

 그러나 섬에서는 다르다. 우에하라는 여전히 난폭하고 대책없지만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들과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고 불의에 결코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의 이상의 꿈을 끝까지 이어나가려고 한다. 이렇듯 사람은 자신이 있는 장소가 바뀌면 자신의 가치도 달라지는 듯 하다.

 그래서 2권의 내용이 특히 좋았다. 도쿄에서의 우헤하라의 주장들이 늘 관습과 법과 사회비리에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쳐 상처뿐이었다면 섬에서는 자신의 개인 노동과 이웃과의 공동체적 관계속에서 개인이 국가와 체제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개개인의 도덕적 판단, 개인의 노동, 타인과의 공동체 삶 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마음 속이 훤해지는 것 같았다. 공산주의가 하나의 정치체제로서가 아니라 물욕없는 섬 사람들의 생활문화로 자리잡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아서 정말 좋았다.

아마 지로도 이 이상적인 섬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기를 마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사람 한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거라고""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327p)

"날씨 좋은 날에는 논밭을 갈고 비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본디 인간이 지녀야 할 모습이로고"(127p)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289p) 

 

 몇 달 전에 하종강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란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을 이끌었던(아니 뒤에서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던 이란 표현이 더 맞을듯) 사람들이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후일담쯤 된다.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물론 임종석처럼 정치판에 뛰어들어 소신없이 박쥐노릇이나 하는 사람들도 있어 욕을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시민으로 살면서 건전한 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처럼 소수의 사람들이긴 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처한 상황속에서 진보적인 노력들을 끊이지 않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들이 우에하라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왠지 안심이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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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동산 2007-09-0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1권을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1권에서의 우에하라의 모습이 엉뚱하고 대책없기는 하지만 그냥 혼자 맘속으로만 궁시렁대며 살아가는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되어 뿌듯(?)했었거든요.ㅋㅋㅋ~1권후반부쯤에 우에하라가 정말 화가 나서 사람들을 집어던지면서 "혁명은 운동으로 안 일어나~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거라고~"라고 절규(?)할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나왔답니다..남쪽으로 튀어~를 읽으면서 운 사람이 있으려나~?대책없이 바른(?)사나이 우에하라 덕분에 지금의 우리를 찬찬히 돌아보게 했던 소설이기도 해요..근데 인절미~하종강님도 아시나요??음..진중권님을 모르시는 분이 하종강님의 책을 사서 읽으셨다니 놀라우면서도 반갑습니다...저책 저도 읽고 싶었거든요..망치도 대환영일걸요..빌려주삼..나는 지갑이다..하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빌려주셔요..^^덧붙여 남쪽으로 튀어를 읽으면서 내 맘속에 쏙 들어오는 문구들이 몇개 있었는데 그게 조기 위에 나왔네요..다시 읽어도 맘에 들어오는 글입니다..이제 학교 생활하면서도 책 열심히 읽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영화 많이 소개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