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도에 여행을 갔을 때 마라도를 가느라 약 20분 정도 배를 탔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배의 모터가 일으키는 하얀 파도를 보고는 멀미가 나서 먼 바다만 바라보다가 갔다. 속을 내려다 보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고 잔잔한 흐름이었지만 언제 성난 파도가 되어 돌아올 지 모르는 바다. 내륙도시 대구에서만 살아온지라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바다는 내게 늘 경외로움과 공포심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올 봄에 읽은 이 책의 내용이 다시금 떠올랐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다 캐나다로 이주를 결정한 아버지와 가족들과 함께 화물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게 된 열여섯 소년 파이. 배가 부서져서 혼자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표류하게 된다.아.. 혼자가 아니다. 좁은 구멍보트 속에 오랑우탄, 얼룩말, 하이에나. 그리고 250kg이나 되는 사나운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먹이사슬의 고리에서 서로 먹고 먹히며 결국 살아남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227일간을 태평양에서 함께 떠돈다.(227일이라니! 나는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극한의 공포, 호랑이가 언제 덤빌지 모르는 절박함, 작렬하는 태양과 폭풍우치는 바다, 먹을 것의 부족, 외로움... 어른들 중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할 일.그는 그것을 이겨냈다.
아마 어린 소년이어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인간뿐만 아니라 신에게, 동물에게도 온통 마음이 활짝 열려있던 그런 때묻지 않은 소년이었기에 맹수와의 공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실제 파이는 힌두교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접하고는 똑같은 마음으로 신을 가까이에서 느낀다. (파이를 앞에 두고 서로 자신의 종교가 옳다고 싸우던 힌두 사제와 이슬람 지도자와 신부님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편협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동물들에게도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마음. 그리고 삶에 성실한 태도.(태평양을 떠돌면서도 기도와 호랑이의 식사를 위한 낚시와 배를 손보는 일을 거르지 않고 매일 매일 해냈다) 그것이 호랑이를 길들이고 파이가 살아남게 된 원인이지 않았을까. 그저 동물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태양과 바다의 흐름에도 순응하고 그 속에서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큰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은 작은 아픔에 엄살을 피우지 않는다. 큰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은 작은 걱정거리들에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극한의 경험을 해 본 파이에게 그 이후 그의 삶이 매일 매일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하였을까를 짚어볼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는(혹은 신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또 나약하지만 인간이 얼마나 용기 있는 존재인가를 알려준다. 이런 내용을 접하고 나면 지금 이렇게 편안히 살아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