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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간만에 미미여사의 책을 읽었다. 지인의 집에 갔다가 미미여사 책을 보고 바로 읽기 시작하다가 들고와 버렸다.
이기적이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것 같은(친아버지와의 계약에도 냉정한) 성격이면서 동시에 우연히 엮이게 된 쌍둥이들에게 친부모이상의 무한한 애정을 가지게 되는 주인공.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면서도 꽤 나름의 기준이 있어 훔쳐도 되는 돈만을 훔친다.
그리고 전직 변호사 출신의 주인공 아버지. 여러 도둑들을 거느리고 그 뒷 일을 맡지만 거기서 얻어진 수입으로 또 여러곳에 기부하기도 한다.
음. 그리고 꽤 귀여운 캐릭터. 아직 어린 애지만 똑똑하고 냉정하면서 어른처럼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기도 하는 쌍둥이. 일인분의 공간에 둘이 존재하기에 말과 편지까지도 둘이서 나눠쓰는 일란성쌍둥이 사토시와 타다시. (요즘 이런 애 같지 않은 애들이 꽤 보이네. 라는 생각을 문득했다)
제목만 듣고 보진 못했지만 작년엔가 드라마중에 불량가족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피로 맺어졌다고 해서 끈끈할 것이라는 건 구시대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피로 맺어진 관계가 오히려 쿨하고(이 책의 아버지와 주인공처럼) 완전히 남인 관계가 어쩌면 더 찐할 수 도 있다. 요즘은 이게 대샌가보다. 혈연에 매이는 구시대적 가치관에 나 역시 크게 동조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이들이 가족이라는 한계와 울타리를 과연 상처받지 않고 무사히 넘어섰을까(주인공역시 쌍둥이들의 부모가 찾아오면 버림받지 않을까 고민함) 하는 의구심은 든다.
추리소설이지만 그래서 재미있게 쭉 읽어 내려가지만 책의 곳곳에 괜찮은 글귀들이 묻혀있어 마치 보물찾기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역시 미미여사님이군 하는 그런 글들...
예를 들면......
이윽고 사토시가 말했다.
"아버지" "왜?" "우리가 " "싫어?"
여자에게 나 좋아해? 라는 질문을 받으면 거짓말이건 장난이건, 응 하고 대답해줄 수 있다. 처음부터 싫었어. 좋아한 적도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애가 그런 질문을 하면, 설령 고문을 당한다해도, 응, 하고 대답할 수 없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으려면, 몸속에 피 대신에 절대 영도의 액체질소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열세 살 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 나는 문득 생각해본 적이 있다. 여자는 남자가 될 수 없고,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누구도 반드시 한 번은 어린애였던 시절이 있으므로, 절대로 어린애에게는 잔혹한 행동을 할 수 없다. 만일 전생이란 것이 정말 있고, 예를 들어 당신이 그곳에서 새였다면, 당신은 새를 쏘거나 새를 새장에 가두어둘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이다. 쌍동이에게 상처를 주면, 내 과거 속 어린이 시절이 동시에 상처를 입는다. (p226)
내 전화를 받자 쌍둥이는 정말 기뻐했다.
"지금부터" "짐 꾸릴거야" "아버지" "지금" "알았는데" "감기란" "빨리 안 나아"
"걱정하게 만들려고" "오래 끄는 게 아닐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코감기에 걸리는 것도 즐겁다. 그래 그런거다. (p260)
이런 글들. 이런 글들때문에 미미여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