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미미여사의 책을 읽었다. 사실 미미여사만이 아니라 어떤 책도 읽을 여유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지인의 집에 갔다가 미미여사 책을 보고 바로 읽기 시작하다가 들고와 버렸다.
미미여사에서는 여기서도 정말 멋진 캐릭터를 몇 명이나 만들어냈다. 이기적이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것 같은(친아버지와의 계약에도 냉정한) 성격이면서 동시에 우연치 엮이게 된 쌍둥이들에게 친부모이상의 무한한 애정을 가지게 되는 주인공.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면서도 꽤 나름의 기준이 있어 훔쳐도 되는 돈만을 훔친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여러사건에 개입하게되 되고..
그리고 전직 변호사 출신의 주인공 아버지. 여러 도둑들을 거느리고 그 뒷 일을 맡지만 거기서 얻어진 수입으로 또 여러곳에 기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 어린 애지만 똑똑하고 냉정하면서 어른같이 어른의 일을 이해하기도 하는 쌍둥이. 일인분의 공간에 둘이 존재하기에 말과 편지까지도 둘이서 나눠쓰는 일란성쌍둥이 사토시와 타다시.
추리소설이지만 그래서 재미있게 쭉 읽어 내려가지만 책의 곳곳에 썩 괜찮은 글귀들이 묻혀있어 마치 보물찾기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미미여사 책에서는 발견할 수 있다.
예를들면......
이윽고 사토시가 말했다.
"아버지" "왜" "우리가 " "싫어?"
여자에게 나 좋아해? 라는 질문을 받으면 거짓말이건 장난이건, 응 하고 대답해줄 수 있다. 처음부터 싫었어. 좋아한 적도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애가 그런 질문을 하면, 설령 고문을 당한다해도, 응, 하고 대답할 수 없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으려면, 몸속에 피 대신에 절대 영도의 액체질소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열세 살 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 나는 문득 생각해본 적이 있다. 여자는 남자가 될 수 없고,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누구도 반드시 한 번은 어린애였던 시절이 있으므로, 절대로 어린애에게는 잔혹한 행동을 할 수 없다. 만일 전생이란 것이 정말 있고, 예를 들어 당신이 그곳에서 새였다면, 당신은 새를 쏘거나 새를 새장에 가두어둘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이다. 쌍동이에게 상처를 주면, 내 과거 속 어린이 시절이 동시에 상처를 입는다. (p226)
내 전화를 받자 쌍둥이는 정말 기뻐했다.
"지금부터" "짐 꾸릴거야" "아버지" "지금" "알았는데" "감기란" "빨리 안 나아"
"걱정하게 만들려고" "오래 끄는 게 아닐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코감기에 걸리는 것도 즐겁다. 그래 그런거다. (p260)
요즘 수확이 풍성하다보니 가슴이 따스하다. 세상 모든 것에 관대해지는 기분이다. 벽을 기어가는 바퀴벌레를 보아도 슬리퍼로 내려치기 전에 이초 정도(그냥 놔둘까)하는 생각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바람직한 일이다.(p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