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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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코메디언의 유쾌한 '야고보 길 순례기' !
 
  올해 봄 즈음인가보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시간에 맞춰 TV를 본 적이 없는 나는 어느 케이블방송으로 [야고보 길 순례]를 본 적이 있다. 우연히 리모컨을 좌지우지하다가 만나는 제대로운 프로그램은 항상 끝에서 5분을 보는 것이 다반사인데, [야고보 길 순례]는 이제 막 시작한 터라 '나보고 꼭 보라는 이야기인가보다' 하고 엉덩이를 고추 앉아 브라운관에 눈을 맡겼다. 구성진 나레이터의 목소리와 해설은 마치 자신이 다녀온 듯 자신감이 있었고, 펼쳐지는 광활한 대지에 칼로 그은 듯한 조그만 길로 더 작은 사람이 걷고 있었다. 첫화면에 보인 것이 목표는 없는 것처럼 시선은 고정된 채 한아름의 짐을 짊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을을 보며 난 '고종 황제'를 떠올렸다. 밝은 태양볕 여름의 어느날 그물진 막대기 하나 들고 조그만 공을 맞춰 상대에게 넘기려고 애쓰는 언더우드 목사의 행동(그는 이를 운동이라 했고, 이름은 정구Tennis 라 불렀다)을 보고 고종황제는 말씀하셨다. "아니 이 뙤약볕에 뭐하는 짓이냐? 아랫 것들 시키지 않고..." 내 마음이 그랬다. 
 
'왜 멀리 외국까지 가서 저러고 걷고 있지?'
 
 옛날에야 '순례'라 해서 태어나 가진 원죄와 현재까지 지은 죄를 벗고자 순례자들이 있었다지만, 제각각의 국적과 말을 가진 오만 가지 복장으로 걷고 있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몰입하고자 모가지를 늘여뜨린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가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되어있었다. 내가 살던 곳 반대편으로 넘어와 상상하지 못한 낯선 곳에 떨어져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길을 찾아 걸어가는 어행.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 이 '야고보 길 순례'가 아니던가? 그 후로 며칠동안 '야고보 길'은 내 뇌리의 넓은 자리에 세를 얻고 있었다. 이 책,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만나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다.
 
  독일에서 코메디언으로 잘 알려진 저자는 휴식없는 업무의 연속, 어리석음으로 비롯된 쓸 데 없는 좌절과 분노로 인해 담낭이 터져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어 어쩔 수 없는 휴식을 갖게 되고, 그 '작전 타임'의 시간에 우연히 만난 책 [기쁨의 야고보 길]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자신도 그 길을 걷는 여정에 뛰어들게 된다. 2001년 6월 9일부터 7월 20까지 42일,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600 킬로미터의 도보로 여행하며 매일 매일의 여정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이 책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Ich bin dann mal weg]이다. 독일 아마존 7위에 오르고, 2백 만부가 팔렸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소개가 되었는데, 책을 펴기 전 처음엔 유명 연예인의 수고로운 여행기여서 그 유명세가 한 몫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의 여행기간 동안 펼쳐진 실시간의 중계일기는 생생하기 그지없고, 위트와 농담이 함께 어울어져 그 힘이 독자들로 하여금 빠지게 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의 글은 솔직하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처음 여행을 마음먹은 것도 단순히 [책]에 빠져 함께 경험해 보고 싶었고, 그는 그곳에서 '구도자들의 순례길'인 만큼 어행중에 '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내 자신이 누구인지 나조차도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한 가지 질문을 찾아 여정을 시작한다. 그 질문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였다. 하지만 여행의 둘째 날부터 그는 비오는 날 경사진 산길의 강행군을 포기하고 프랑스인의 '차'를 얻어탄다. 순례자의 여정에 '자동차'라니...스페인 사람이었으면 절대로 태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말 그대로 고생을 사서 하는 여정에서 '안락을 추구'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서양인의 그것은 가능했나 보다. 오히려 '삶의 어느 순간을 기록한 개인자서전'인 만큼 적당히 숨기고 포장했을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의 솔직한 생각과 행동의 기록이 이 책을 끝까지 사로잡는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야고보 순례길은 '오롯이' 혼자서 갈 수 밖에 없는 여정이란다. 다시 말해 동행이 있게 되면 그에 맞게 보폭을 맞춰야 하고, 그의 사정과 형편을 고려하다 보면 자신이 계획한 걸음을 온전히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그와 함께 발맞출 때 우리는 그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 훌륭한 사람'은 남에게 구애받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길만을 걸어온 사람이 아니던가? 자신을 찾아 떠난 여행인 만큼 '나를 챙기기도 벅찬 여정'에 남과 함께 가기 위해 수고로움을 자처한다는 것은 그들의 '합리주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여행의 의미에도 어긋난 것일지도 모른다. 중도에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 뒤쳐지거나,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을 지키지 못한 일이기에 아직 순례를 마칠 내공이 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끝이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과 같단 말인가? 정말 혼자여만 하는 것인가? 왠지 모를 '팍팍함'에 나마저 갈증이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야고보 순례'의 여정을 함께 하며 든 생각은 순수하게 혼자서 걷는 시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되지만, 순간 누군가 '인기척'만 느끼게 되어도 '사회 속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인간(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순례길의 목적은 사람마다 달랐다. 저자처럼 책을 통해 그것을 답습하려 했던 사람도 있었고, 남미의 처녀들처럼 되돌아가는 길엔 유럽의 신랑감을 데려오라는 부모의 명령으로 막중한 임무를 띠고온 사람들도 있다. 병으로 먼저 떠나 보낸 자식과 함께 왔던 어머니는 자식이 포기한 그 길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해 끝마침을 하늘에서나마 지켜보게 하려고 했고, 순례의 길에서 동냥으로 생활을 연명하는 치들도 있다. 그랬던 만큼 그는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솔직하다. '순례를 한다고 해서 냄새나고, 시끄럽고, 지저분한 순례자의 숙소에서 꼭 자야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 뭉쳐서 꿍싯거리고 복닥거려야 제대로운 순례가 되란 법은 없잖은가?'라는 식으로 생각하며 순례자의 숙소를 박차고 나와 길건너편에서 호텔에서 편한 잠을 잔다.  그의 덩치와 인상때문에 동성연애자이면서도 영국인 순례자 앤으로부터는 '추근덕대는 놈' 취급을 받기도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갈증을 참아가며 아픈 발로 걷기보다 사람들과 부딛는 시간들이 그에게는 더 어려운 시간이고 많은 생각을 던지는 지도 모른다.
 
  "순례길은 나의 인생 여정을 보여준다. 시작은 실제의 내 삶처럼 난산이었다. 어행 초창기와 어린 시절의 나는 내 속도를 찾기 힘들었다. 인생의 길 중간까지는 그때까지 쌓아온 긍정적인 경험과 함께 오류와 혼돈이 공존했고 가끔 길 밖에 나앉기도 했다. 그러나 반쯤 왔을 때부터는 목적지까지 기쁜 마음으로 행진했다. 이 순례길이 친절하게도 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여주는 듯하다. 담담함을 지닐 것, 무관심과 냉담함이 아닌 긍정적인 의미의 담담함. 그러면서 유쾌함을 견지할 것. 이름 붙이자면 '유쾌한 담담함'이 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순례를 하는 매일매일도 전체의 순례길과 똑같이 구성된다. 세부적인 것이 전체의 복사본이다. 하나가 전체에, 전체가 하나에 있다."(p 360)
 
  그의 여정의 시작은 거창한 '구도求道'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정을 모두 마칠때 즈음 태어나 지금껏 자신이 누구였음을 알게 되고, 앞으로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에게 그것은 '유쾌한 담담함' 이었다. 저자는 이제부터 '얼마의 부를 이루고, 얼마의 명예를, 얼마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목표가 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진정한 인생의 목표라는 것을 배웠고, 이제부터 그의 하루 하루의 인생은 그것을 지켰는지 아닌지를 반성하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 지금부터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오늘 밤에 죽을 사람인 것처럼 대하라. 당신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라는 어느 책에 읽은 말이 생각난다. 혹자는 '오늘밤에 곧 죽을 사람으로 보고' 상대를 대하라 했고, 저자는 '유쾌하고 담담하게' 미래에 대하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길, 나만의 길에서 만날 인생의 목표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정말 궁금하다. 나도 찾을 수 있을까? 이 길을 꼭 떠나보고 싶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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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의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 - 전 세계 인생 고수들에게 배운다 막시무스의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 1
막시무스 지음 / 갤리온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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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식혀줄 [위인들의 유쾌한 농담]이 듬뿍 담긴 책 !
 
 
  [지구] - 아주 오래전부터 허공을 돌고 있는 커다란 배다.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시용설명서가 첨부되지 않아 아무도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모른다. 게다가 배를 책임질 선장은 원래부터 없고 승객만 가득 타고 있다. 책의 가장 첫 장을 지구에 대해 재미있는 설명으로 시작하는 멋진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목은 [막시무스의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 조금은 긴 듯한 제목이네요. 저자 역시 특이하게 '막시무스Maximus' 라는 이름의 소유자입니다. 저자의 소개란을 보니 지구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손꼽은 것은 딸아이를 낳은 일(여기까지 읽고 난 저자가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이고, 어느 출판 문화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요즘은 [넥타이 매지 않기], [날마다 은퇴해서 글쓰기], [일 년에 한두 주제를 골라 관련된 책 몰아 읽기], [밥은 제때 챙겨 먹기], [비행기에 타서는 비행기 폭파범이 등장하는 소설 읽기], [마음에 있는 그대로 말하기(영화 '라이어'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 쉽진 않을거에요)], [날마다 조금씩 더 부드러워지기]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남자인 듯 합니다. 특이한 듯한 저자만큼 책도 특이 하고 재미있습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현명한 답은 있으며,
현명한 답을 아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축제가 된다."  
 
  이 책은 유쾌할 수 있는 삶을 방해하는 인생의 여러가지 문제 즉, 실패, 불안, 거짓말, 가난, 곤경, 비난, 어긋난 우정, 죽음 등에 먼저 산 현인들이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 것들을 모았습니다. 마치 톨스토이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앞서 산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삶의 문제들에 대해 보다 현명한 답을 찾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인생독본]을 펴낸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에 흩어진 소중한 말들을 한데 모았다고 하니 정성이 고맙지 않습니까? 이 이유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한 듯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인 막시무스maximus 는 참 멋진 사람입니다. 원래부터 멋진지, 아니면 그런 멋진 글들을 읽고 나서 멋져 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상의 말들에 대해 던지는 농담을 모아 [그만의 단어장]을 만들어 책 속에 숨겼습니다. [막시무스 농담사전]이 그것인데요... 처음에는 웃음이 나고, 몇 초 후엔 그말의 의미에 공감하고 뜻을 되새기느라 고민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커피]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커피' [ 커피가 천천히 사람을 죽이는 독약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술과 담배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커피와 술과 담배를 즐긴다. 나도 빨리 죽기는 남들만큼이나 싫기 때문이다.] 커피와 술, 그리고 담배를 즐기지 않는 사람보다는 빨리 죽는다는 사실을 뒤로 한 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기 때문에 즐긴다는 말도 안되는 그의 농담에 '그렇단 말이지?' 미소지으며 담배를 한 개피 물었습니다.
 
커피와 함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 [독서]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 - [책의 의미는 읽는 사람 마음대로다. 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같은 사람이 같은 책을 봐도 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 따라서, 원래부터 좋은 책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책이 좋은 사람을 만들지도 않는다. 좋은 책은, 좋은 당신이 그렇게 읽을 때만 존재하는 그러니까 당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책에서 성자의 말을 읽어 냈다면 그것은 당신 마음속에 성자가 앉아 있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이, 좋은 책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면,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의심해 볼 일이다.] 재미있는 해석, 아닙니까?
 
  책을 좋은 책과 나쁜 책으로 구분하는 잣대로 '베스트셀러'로 판단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세상에 잘 알려진 사람이 쓴 책이라면 모두 좋은 책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의 내 나이, 나의 환경, 나의 생각에 '딱' 어울리는(해답을 던져주거나, 문제를 던져주거나, 내 등을 긁어주거나, 내 맘을 설레게하는...) 책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책이 우스워보일 수도 있고(정말 멋진 명작이 아닌 다음에, 내용을 아는 책을 다시 읽기는 TV 주말의 명화로 영화를 다시 보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죠), 다른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했음에도 내가 느낀 소감만큼 느끼지 못했다는 실망스러운 대답을 듣기도 합니다. 그 이유를 막시무스가 말하는 독서의 정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권의 책은 언제든 최소한 '한 명의 주인'과는 만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책이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일생동안 좋은 공기를 남기고 세상을 푸르게 할 나무가 제 명을 다 못하고 그 시체가 책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뿌려진 의미가 없어져 불쌍하잖아요.
 
  이 책은 [부당한 비난에 웃으며 대처하는 법], [불안을 잠재우는 기막힌 방법],[국회의원들에게 보수를 줘야 하는 이유],[사소한 일에 목숨 걸어야 하는 이유],[박수 받을 때 주의할 점],[곤경에 빠진 친구를 돕는 법],[맘에 안드는 세상을 바꾸는 법],[기회를 잡는 유일한 방법],[살면서 필요한 넥타이의 개수] 등 우리가 한 번쯤은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을 집어내고 현인들의 입을 빌어 명쾌하고 유쾌하게 답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저자 막시무스가 '촌철살인의 해설'도 해 줍니다. 친절하기 그지 없습니다.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방법이 68개나 들어 있고, 막시무스의 농담사전에는 74개의 특이하고 재미있는 정의가 들어 있습니다. 이 책 속에서 아인슈타인과 단테, 소크라테스, 윈스턴 처칠, 막심 고리키까지 반가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겨져 있습니다. 근사하지 않습니까?
 
  제게는 다시 한 번 꼭 읽고 싶은 글을 만나면 책의 한 쪽 귀퉁이를 살짝 접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랫쪽에만 접으면 두꺼워져서 첫 장이 아랫쪽이었다면 다음 장은 윗쪽을 접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접힌 부분이 많아지면 다시 읽어야 할 좋은 책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 읽어서 모두 기억할 수없는 저의 한계를 확인하고는 합니다. 이 책은 세워서 모로 봤을 때 'll' 모양의 책이었던 것이 ']['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얼마나 즐겨 읽었는지 아시겠죠?
 
  이 책을 읽으면 즐겁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도 세상을 볼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어깨에 놓여진 무거운 짐들이 약간은 가벼워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신 미소를 머금고 책을 읽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지루한 휴가길에, 잠 못드는 늦은 밤에 아니면 조용한 북카페에서 한 권의 노트와 연필 한자루 놓고 읽는다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째 쇼핑몰 호스트가 되어 물건을 파는 멘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여러분이 제가 소개한 이 책을 구입해서 읽으신다면 [쇼핑 호스트]라 불려도 [책장수]라 놀려도 웃으면서 감사해 하겠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즐거움을 여러분도 느끼실테니까요. 
 ^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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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상계 - 근대 상업도시 경성의 모던 풍경
박상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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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서울, 경성京城 의 비즈니스 여행!
 
  IMF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의 20세기 마지막해. 컴퓨터 업계는 Y2K ("Y"는 연도(year) "2"는 숫자 둘, "K"는 kilo, 천의 약자로 서기 2000년을 의미한다. Y2K는 밀레니엄 버그The millennium bug즉 1999년이 2000년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컴퓨터 2000년 연도 표기" 문제) 즉 컴퓨터는 2000년이나 1900년을 구별하지 못한다. 2000년 1월 1일 00시 에 우리에게 대혼란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걱정을 했고, 신문지상에는 늘어나는 부도업체의 숫자, 실업자 수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주식은 종합주가지수가 300대까지 내려 바닥을 기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렵사리 취직을 한 직장에서 그야말로 '뼈가 녹을 정도'로 일을 했고, 난생 처음 '보너스'라는 인센티브 형식의 성과급을 받았는데, 그돈을 고스라니 주식에 넣었다. "네가 제일 잘 아는 업종의 유망기업에 돈을 넣어라. 그리고 잊어라."라는 선배의 권유(선배는 삼 년 전에 주식을 시작했는데 깡통구좌로 투자를 했다가 빈털털이로 내 방에서 말 그대로 '기생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선배의 실패담에서 나중에400%가량의 수익을 얻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때문이었는데, 당시의 종합지수는 내 생에는 다시 볼 수 없는 '해저 2만리' 의 바닥이라는 그의 판단때문이었다.
 
  경제신문을 보면서 6-8페이지의 주식란은 보지도 않고 넘기면서 '신문페이지 골라서 파는 신문사는 없는거야?' 라고 푸념했던 과거가 있었건만 나의 주식투자의 경험은 '주식란'이 제일 먼저 살펴보는 '주택복권 당첨 번호 코너'가 되었다. 현대건설 계열의 '고려산업개발'을 4,000원 대에 매입했었는데, 잔돈이지만 등산을 하듯 한 발 할 발 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면서 만화책이나 영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내일신문' 즉, 내일의 기사를 미리 알려주는 신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사람들도 사서 읽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정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런 게 있다면...그럴 수 있다면 생각했다.
 
  한편 반대로도 생각해 본 적도 없잖은데, 지금의 내가 '타임머신'같은 기계를 타고 과거로 이동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인데, 현실의 뉴스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곳에서의 나는 미래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는 '현인'이 되는 것이라 현재 상승중인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둔다면, 갑부는 따놓은 당상일게다 하는 얕은 수에서 였다. 마치 울 아버지가 소주잔을 털어놓으시면서 "나 꼬마때는 밭뙤기만 즐비한 강남에서 새끼줄로 영역표시만 해놓고 농사만 지어도 내 땅이었다고... 월급타서 저축하지말고 땅 사 놓을 껄..." 하시던 푸념과 다를 바가 없다. 어릴 땐 그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십분 아니 백분 이해가 된다.
 
  '옛날 옛적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자동차는 있었나? 시장이나 점포는 있었던거야? 도대체 장사는 누가 했고 뭘 팔았던거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빠진 적도 있었는데, 우리네 옛날은 '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라는 한마디로 대변될 뿐, 그 어디서도 해답을 찾기는 힘들었는데 그 답답함을 어느정도 해소해 준 책을 만났다. 박상하의 책 '경성상계京城商界' 가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 로 시작하는 이 책은 '문자가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문서화되지 않은 1945년 8.15 해방 이전의 재계사를 살펴본 책이다. 다시 말해 500 년 조선왕조의 몰락에 이은 가혹한 외세의 식민지배와 함께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물밀듯이 밀려들어 온 근대화의 경이, 그리고 광복 전후까지의 격동기를 숨 가쁘게 관통해야 했던, 근대치의 정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그 반세기 동안의 기록을 모아둔 책이다.
 


 
  백여 년 전 서울의 풍경을 시작으로 종로 육의전을 설명하고, 당시에 급증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가 하면 전차와 고무신, 활동사진, 그리고 금융업과 광업의 모습을 담아낸다. 경성의 젊은 상인들의 출현으로 부자가 태어나고, 쌀라리맨으로 대변되는 직장인들의 생활상, 그리고 당시의 산업과 문화를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로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등의 사료史料, 그리고 100여 권이 넘는 책을 바탕으로 추적했는데, 자료의 방대함과 상서롭지 않은 당시의 글씨와 내용은 여느 소설 못지 않게 재미를 더해준다.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흑백사진들은 '이 이야기는 절대로 거짓말이 아냐!'라고 항변하는 듯 하다.
 


 
      
 
 
  이 책이 주는 의미는 그 전의 책들이 광복후와 6.25 전후를 시작으로 꾸며진 상업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나름의 역사를 지니게 된 기업들의 역사 속에서 얼핏 보이는 당시의 상황을 엿볼 뿐이었는데, 조선말과 합방때의 숨겨진 우리의 상업발전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겠다. 당시에 나왔던 모든 제품과 임금 그리고 봉급이 현시세로 비교도 해 놓았는데, 오히려 체감하기는 더욱 어려운 점을 뺀다면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될 것 같다.
 
  100년이 지난 후 내 증손주는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최첨단 시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웃음도 나오고, 그 시절에도 힛트상품으로 대박을 낸 것처럼 이시대가 놓치고 있는 그 무엇은 없을까 고민도 해봤다. 오늘과 내일만 있는 듯한 우리의 '상계Business world'가 이젠 어제와 옛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만큼 여유도 생기고, 안목도 트였는가 하는 반가움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은 변해 역사를 만들고, 사람은 움직여 문명을 만들었다. 그러한 변화 속에는 우리 조상이 있었고, 내가 있었다. 그리고 모습만 바뀌었을 뿐 상업이라는 동물에는 '돈'이라는 피는 100년을 넘게 돌고 있었다.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은 100년 전 종루거리로 떠나는 타임머신을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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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미술관에 가다 - 미술 속 패션 이야기
김홍기 지음 / 미술문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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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당대 최고의 패션과 모델들이 미술작품 속에 있다 ?!
 

 


  아담이 금단의 사과를 한 입 깨뭄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알게되고, 출산의 고통을 얻게 되고, 땀의 결과로 생명을 이어가게 되며, 그럼에도 유한한 생명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깨문 한 입의 사과가 아담과 이브가 누릴 수 있는 수많은 특혜를 잃게 만들었지만, 그 덕에 인류는 태어나고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와 함께 '노출의 수치감'으로 인해 성기위에 가려진 나뭇잎은 또한 최초의 의복이 되었고, 지금껏 우리 인류와 함께 하고 있다.
 




 
  의복(옷)은 인간의 육체의 보호라는 원초적 기능에서 탈피해 나아가 의복을 착용한 주체의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는 하나의 코드로 발전하여 자리잡고 있는데, 한 개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데 있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사람의 옷차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의복은 상대방의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고, 성격을 짐작하게 하며,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의복은 때때로 그보다 더욱 은밀한 것을 속삭이며,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깨닫지 못했던 깊은 마음속의 비밀을 의복을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인류에게 역사가 있듯이, 의복의 변천 과정 역시 역사를 갖는데, 여기 미술과 패션을 좋아하여 본업도 아닌 '미술을 통한 복식사의 재조명'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있는 한 남자가 기존의 미술사에 복식사의 시각을 더해 이 두 분야의 서로의 옷을 벗겨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자 펴낸 한 권의 책이 있다. 다음 블로거 김홍기의 [샤넬, 미술관에 가다]가 그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투자수단으로서의 미술작품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문외한인 내가 그것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어려움을 겪던 중에 '패션으로 들여다 본 미술작품' 이라는 시각에 흥미를 느꼈다. 작품의 이해방법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주로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을 주로 다룬 이 책은 앵그르와 휘슬러, 티소 등 70여 명의 유명화가의 작품 120여 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책에 소개된 작품들 만으로도 유명 화가의 작품전을 보는 듯 했는데, 저자는 작품 속에 나타나는 복식의 작은 디테일이 그림 전체의 의미를 설명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카메라와 사진이 없던 옛날 당시의 패션사조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미술작품을 통해서 일텐데, 최고의 화가와 최고의 모델 그리고 당시에 가장 유행했던 의상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현재의 의류화보를 버금가는 듯 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나? 작품과 화가 그리고 모델, 그리고 모델이 입은 의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좌우측으로 패션 디자이너와 큐레이터를 옆에 두고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전공을 하지도, 본업으로 삼고 있지도 않다고 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내공을 책에서 마음껏 발산한다. 작품이 표현된 당시의 흐름과 미술가에 대한 디테일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된 참고문헌만 국내외 단행본은 100여 편에 이르고, 논문도 20여 편에 달하니 이 책에 들인 저자의 공력과 복식사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한다. 그의 현란하고 자세한 설명은 미술작품과 그림속 패션을 한층 빛나게 했다. 
 
 
 


 
 
  이 책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미술작품에 있었는데, 손에 잡힐 듯한 의상들의 표현력과 모델들의 표정 그리고 포즈는 한참동안 넋을 놓게 만들었다. 클로드 모네의 [일본 여인-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에서는 손에 잡힐 듯 튀어나오는 듯한 기모노의 묘사나 금박을 뿌린 듯 빛을 발하는 듯한 표현들은 눈을 뗄 수 없게 하고, 제임스 티소의 [옷 가게의 젊은 점원]은 마치 점포의 안에서 점원에게 말을 걸어야 할 만큼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검은색 새틴 소재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도발적인 포즈로 정면을 응시하는 콜렌 캠벨 부인의 모습(조반니 볼디니作)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만큼 매력적이고, 마치 헐리우드 배우같은 미모를 지닌 마리 루이즈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작품들은 시간을 잊은 채 시선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 뿐인가? 금방이라도 바스락 거릴 듯한 벨벳의 감촉이 느껴지는 [세농부인의 초상]이나 모피의 풍성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검정의 배열- 아치볼드 캠벨 부인의 초상] 작품 속에 살아 숨쉬는 의복들은 시간을 거슬러 그녀들에게도 안겨있었다.
 
 








 
  피부를 덮는 제 2의 피부라 불리는 의복은 그 단순한 기능을 넘어 의복을 입는 주체의 사회적 지위와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나아가 시대의 흐름과 사조를 반영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아름다워 지기 위해 변신을 거듭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단순히 유행을 넘어 시대성에 대한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 사물이나 관념에 미치듯 몰두하고 있는 사람'을 들어 우리는 '매니아'라고 한다. 저자의 '미술을 통한 복식사의 재조명' 에 대한 매니아적 사랑은 전문가의 그것을 뛰어넘는 지식과 열정이 이렇듯 훌륭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저자의 책이라는 점에서 뿌듯함마저 느꼈다. 미술 또는 패션에 관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지식과 큰 즐거움을 선사해 줄 책이다. 무더운 여름밤에 더위를 잊고 갤러리를 걸은 기분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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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우리 음식 - 음양이 조화된 한국의 전통음식, 국영문판 Korean-English edition
김규석 지음 / 미술문화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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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먹거리 고민, 우리의 한식韓食 에서 찾아라!
 
  최근 늘어나는 성인병과 암, 그리고 비만등과 같은 질병의 발생률은 우리가 자신의 깜냥보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이 먹거나, 잘못 먹고 있기 때문에 계속 늘어가고 있다. 게다가 많이 씹지 않아도 되고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의 출현과 각종 화학조미료, 그리고 트랜스지방으로 범벅이 된 음식과 과자 등의 맛에 길들여져 그것이 몸에는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좀처럼 그만두기가 힘들기만 하다. 다행히 웰빙Well-being가 하나의 건강트렌드로 자리를 잡으면서 천연에 가까운 유기농 채소와 조미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을 찾고 만들고 있어 반갑다고 하겠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웰빙식이라고 하는 식단에 있는데, 이들이 거의 모두 외국의 식단을 쫓는다는 것이다. 일전에 소개한 도서리뷰 [식탁위의 명상] 를 쓸 때 언급했던 바와 같이 육류가 주식인 서양인의 신체구조와 곡물이 주식인 우리의 그것은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의 식재료가 우리 몸에는 제일 잘 맞듯이, 선조때부터 내려온 우리의 음식이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다고 봐야겠다. 또한 우리나라 음식은 지금, 건강식 또는 다이어트식으로 그 어느 때보다 세계의 주목과 각광을 받고 있는데, 자국민이 자기나라의  음식을 잘 알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몇 해 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드라마 '대장금'을 시작으로 국내외적으로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한편으로는 만화가 허영만이 [식객食客]이라는 만화로 우리나라의 위대한 음식문화를 소개했다. 이는 또 지난 해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하였고, 며칠 전엔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화제를 낳고 있다. 또한 우리의 식기와 전통주 [화요]를 생산하는 광주요의 조태권 회장은 한식韓食의 세계화를 위해 사비를 털어 한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련의 상황들을 잘 살펴보면 지금껏 우리가 서양의 음식을 즐기고, 그것들을 쉬이 접하는 것은 우리음식의 우수성에 대해 말로 만 듣고 말할 뿐, 그것을 실제로 먹거나 확인해 보지 못한 탓도 있겠다. 제대로운 우리 먹거리를 먹을라 치면 그 품질과 희귀성때문에 서양의 어느 요리보다 비싼 가격을 치뤄야 맛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 그래서 제 나라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문화가 널리 전파되지 못하고 소수의 부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부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맛을 물론이고 듣지보 보지도 못한 것들이 태반인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우리나라 고급요리의 대중화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지금이 아닐까?
 










  그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라도 한 것일까? 한 권의 소중한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고, 내 눈에 띄었다. 5만원의 책값에 가로 23 센치미터, 세로 27센치미터의 만만치 않은 크기로 344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우리음식에 관한 책이 그것인데, 제목은 [지혜로운 우리음식]이고 부제는 [이연채의 남도 전통음식]이다. 이 책은 1994년 타계하신 무형문화제 제 7호 남도의례음식장 이연채 선생의 음식 저작권을 관리하는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김규석 선생과 함께 무형문화재 제 17호 남도의례음식장 최영자 선생의 감수로 만들어진 책이다. 총 100가지의 음식과 20가지의 상차림을 분류별로 나누어 유래와 재료, 요리법 순으로 설명되었다. 게다가 세계인의 한식韓食에 대한 관심을 고려해 영문으로도 대역을 해놓은 놀라운 책이다. 특히 이제껏 [비법]으로 전해오면서 전수자들에게만 이어졌던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를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겠다.
 
 



  저자는 예로부터 자연과 더불어 전통의 맥을 이어온 문화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전통음식은 자연의 재료에서 우러나는 순수한 맛을 멋과 함께 느끼며 계절에 맞춰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우리 생활과 가장 밀첩한 관계에 있었던 문화인데, 현대의 변화된 생활 속에서 조금씩 잊혀지고 묻혀져가는 우리 음식 문화를 보존하고, 연구 개발하여 보다 독특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에는 우주의 질서인 음양오행陰陽五行 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는데, 모든 산물의 현상이 서로 대합되는 속성을 가진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상호 조화를 이루고, 우주의 기초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등 오행이 서로 어울려 만물의 조화를 이룬다. 목木은 동쪽- 봄 - 푸른색 - 신맛에 해당하고, 화火는 남쪽 - 여름 - 붉은 색 - 쓴맛 에 해당한다. 토土는 중앙 - 환절기 - 노란색 - 단맛을 의미하고, 금金 은 서쪽 - 가을 - 흰색 - 매운맛 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수水는 북쪽 - 겨울 - 검은색 - 짠맛 에 해당된다. 이렇듯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에 따라 음식을 섭취해야 하고, 인체의 약한 기관을 보양해주기 위해 음양오행에 따라 보양음식을 먹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식궁합'이라 함은 '음식의 조화'를 의미하는데, 모든 음식재료는 음陰 의 성질의 식품과 양陽 의 성질의 식품이 있어 이들 두 성질의 재료를 적당히 섞어 조리하면 음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맛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도 건강하게 해주는 음식이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저자는 음식飮食 은 몸에 맞춰 만든 것이고, 요리料理는 입에 맞춰 만든 것으로 내 몸이 뜨거우면 찬 음식을 먹어줘야 하고, 차가우면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음식들 만들 때 음양의 재료 비율은 8 : 2로 해주면 이상적인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제 1부 [지혜로운 밥상] 에서는 우리 국민의 보약, 밥을 필두로 매일 식사를 위한 음식인 찜과 탕 그리고 밑반찬인 저장찬이 소개된다. 그리고 한식의 최고요리라 할 수 있는 신선로를 소개하고 있다. 침이 절로 넘어가는 맛있는 음식의 사진과 음식의 설명 그리고 그 순서에 맞는 제조법과 영문 해설등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신선로는 무려 10 페이지를 할애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지금껏 내가 먹어 봤던 것은 '신선로가 아닌 듯' 한식의 백미라 하는 이유를 알 듯 했다.
  











제 2부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떡과 한과] 에서는 14 가지의 떡과 4 가지 다식, 13 가지의 한과와 4 가지 정과, 8 가지 부가과 5 가지 건포 그리고 식혜, 수정과 동동주 삼해주와 같은 음청류와 술을 소개한다. 수많은 떡과 다식, 한과등 먹어 보지 못한 것들이 태반이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 맛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건포 부분에서 소개되는 어화는 말린 오징어를 가지고 꽃을 만드는 것인데, 드라마 [식객]에서 일본 대사관에 가서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서 본 것과 같았다. 음식이라고 하기엔 아까운 한 편의 미술 작품같았다.
 
 










 
 
  
 
  
 


 


 
 
제 3부 [사랑받는 이바지 음식] 에서는 친정에서 시댁으로 보내는 음식선물, 이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음식 중에서 특히 예를 갖추어야 하는 이바지는 함부로 보내지 않았으며 내용물의 질을 따지고 가짓수를 잘 갖추어 보냈다고 한다. 정성가득한 이바지 음식을 보면서 예와 정성을 다하는 우리의 음식선물들을 만나게 된다.
 
 

 
 
제 4부 [격식있는 상차림]에서는 의례나 절기에 따라 각각 상 차리는 법도가 따로 있었던 우리의 음식문화를 보여주는데, 결혼과 회갑같은 큰상 차림을 비롯해 명절상, 제례상, 돌상, 주점상, 다과상, 주안상을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아침, 저녁 밥상에 쓰이는 일상식을 반상이라 하는데, 독상을 원칙으로한 우리의 5첩, 7첩, 9첩 반상을 자세히 소개해 준다. 잊고 있었던 계절 감각과 잃었던 입맛을 살려주는 한식韓食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웰빙도 좋고, 퓨전도 좋다만 우리의 기본이 되는 우리 음식을 모르고 어떻게 그 좋고 나쁨을 평할 수 있을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도 오래 가는 것이 우리 음식의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만큼 정성이 담긴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렇게 깊은 정성과 손맛이 결합한 음식을 먹는다면 성인병, 비만, 당뇨, 아토피 등 지금 우리가 음식으로 인해 고민하는 모든 현대인의 병으로부터 벗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즉, 우리의 몸에는 우리 땅에서 나는 식재료가 제일이듯, 우리 음식이 우리 몸에 가장 잘 어울린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 한식韓食 의 기본을 안다면 그것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현실에 맞게 간소화하고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둬야 할 책이다. 특히 한식을 취급하는 음식점의 관계자와 한식 조리사, 요리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는 소중한 자료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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