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상계 - 근대 상업도시 경성의 모던 풍경
박상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00년 전 서울, 경성京城 의 비즈니스 여행!
 
  IMF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의 20세기 마지막해. 컴퓨터 업계는 Y2K ("Y"는 연도(year) "2"는 숫자 둘, "K"는 kilo, 천의 약자로 서기 2000년을 의미한다. Y2K는 밀레니엄 버그The millennium bug즉 1999년이 2000년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컴퓨터 2000년 연도 표기" 문제) 즉 컴퓨터는 2000년이나 1900년을 구별하지 못한다. 2000년 1월 1일 00시 에 우리에게 대혼란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걱정을 했고, 신문지상에는 늘어나는 부도업체의 숫자, 실업자 수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주식은 종합주가지수가 300대까지 내려 바닥을 기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렵사리 취직을 한 직장에서 그야말로 '뼈가 녹을 정도'로 일을 했고, 난생 처음 '보너스'라는 인센티브 형식의 성과급을 받았는데, 그돈을 고스라니 주식에 넣었다. "네가 제일 잘 아는 업종의 유망기업에 돈을 넣어라. 그리고 잊어라."라는 선배의 권유(선배는 삼 년 전에 주식을 시작했는데 깡통구좌로 투자를 했다가 빈털털이로 내 방에서 말 그대로 '기생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선배의 실패담에서 나중에400%가량의 수익을 얻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때문이었는데, 당시의 종합지수는 내 생에는 다시 볼 수 없는 '해저 2만리' 의 바닥이라는 그의 판단때문이었다.
 
  경제신문을 보면서 6-8페이지의 주식란은 보지도 않고 넘기면서 '신문페이지 골라서 파는 신문사는 없는거야?' 라고 푸념했던 과거가 있었건만 나의 주식투자의 경험은 '주식란'이 제일 먼저 살펴보는 '주택복권 당첨 번호 코너'가 되었다. 현대건설 계열의 '고려산업개발'을 4,000원 대에 매입했었는데, 잔돈이지만 등산을 하듯 한 발 할 발 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면서 만화책이나 영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내일신문' 즉, 내일의 기사를 미리 알려주는 신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사람들도 사서 읽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정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런 게 있다면...그럴 수 있다면 생각했다.
 
  한편 반대로도 생각해 본 적도 없잖은데, 지금의 내가 '타임머신'같은 기계를 타고 과거로 이동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인데, 현실의 뉴스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곳에서의 나는 미래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는 '현인'이 되는 것이라 현재 상승중인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둔다면, 갑부는 따놓은 당상일게다 하는 얕은 수에서 였다. 마치 울 아버지가 소주잔을 털어놓으시면서 "나 꼬마때는 밭뙤기만 즐비한 강남에서 새끼줄로 영역표시만 해놓고 농사만 지어도 내 땅이었다고... 월급타서 저축하지말고 땅 사 놓을 껄..." 하시던 푸념과 다를 바가 없다. 어릴 땐 그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십분 아니 백분 이해가 된다.
 
  '옛날 옛적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자동차는 있었나? 시장이나 점포는 있었던거야? 도대체 장사는 누가 했고 뭘 팔았던거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빠진 적도 있었는데, 우리네 옛날은 '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라는 한마디로 대변될 뿐, 그 어디서도 해답을 찾기는 힘들었는데 그 답답함을 어느정도 해소해 준 책을 만났다. 박상하의 책 '경성상계京城商界' 가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 로 시작하는 이 책은 '문자가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문서화되지 않은 1945년 8.15 해방 이전의 재계사를 살펴본 책이다. 다시 말해 500 년 조선왕조의 몰락에 이은 가혹한 외세의 식민지배와 함께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물밀듯이 밀려들어 온 근대화의 경이, 그리고 광복 전후까지의 격동기를 숨 가쁘게 관통해야 했던, 근대치의 정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그 반세기 동안의 기록을 모아둔 책이다.
 


 
  백여 년 전 서울의 풍경을 시작으로 종로 육의전을 설명하고, 당시에 급증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가 하면 전차와 고무신, 활동사진, 그리고 금융업과 광업의 모습을 담아낸다. 경성의 젊은 상인들의 출현으로 부자가 태어나고, 쌀라리맨으로 대변되는 직장인들의 생활상, 그리고 당시의 산업과 문화를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로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등의 사료史料, 그리고 100여 권이 넘는 책을 바탕으로 추적했는데, 자료의 방대함과 상서롭지 않은 당시의 글씨와 내용은 여느 소설 못지 않게 재미를 더해준다.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흑백사진들은 '이 이야기는 절대로 거짓말이 아냐!'라고 항변하는 듯 하다.
 


 
      
 
 
  이 책이 주는 의미는 그 전의 책들이 광복후와 6.25 전후를 시작으로 꾸며진 상업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나름의 역사를 지니게 된 기업들의 역사 속에서 얼핏 보이는 당시의 상황을 엿볼 뿐이었는데, 조선말과 합방때의 숨겨진 우리의 상업발전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겠다. 당시에 나왔던 모든 제품과 임금 그리고 봉급이 현시세로 비교도 해 놓았는데, 오히려 체감하기는 더욱 어려운 점을 뺀다면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될 것 같다.
 
  100년이 지난 후 내 증손주는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최첨단 시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웃음도 나오고, 그 시절에도 힛트상품으로 대박을 낸 것처럼 이시대가 놓치고 있는 그 무엇은 없을까 고민도 해봤다. 오늘과 내일만 있는 듯한 우리의 '상계Business world'가 이젠 어제와 옛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만큼 여유도 생기고, 안목도 트였는가 하는 반가움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은 변해 역사를 만들고, 사람은 움직여 문명을 만들었다. 그러한 변화 속에는 우리 조상이 있었고, 내가 있었다. 그리고 모습만 바뀌었을 뿐 상업이라는 동물에는 '돈'이라는 피는 100년을 넘게 돌고 있었다.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은 100년 전 종루거리로 떠나는 타임머신을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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