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웃기는 코메디언의 유쾌한 '야고보 길 순례기' !
 
  올해 봄 즈음인가보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시간에 맞춰 TV를 본 적이 없는 나는 어느 케이블방송으로 [야고보 길 순례]를 본 적이 있다. 우연히 리모컨을 좌지우지하다가 만나는 제대로운 프로그램은 항상 끝에서 5분을 보는 것이 다반사인데, [야고보 길 순례]는 이제 막 시작한 터라 '나보고 꼭 보라는 이야기인가보다' 하고 엉덩이를 고추 앉아 브라운관에 눈을 맡겼다. 구성진 나레이터의 목소리와 해설은 마치 자신이 다녀온 듯 자신감이 있었고, 펼쳐지는 광활한 대지에 칼로 그은 듯한 조그만 길로 더 작은 사람이 걷고 있었다. 첫화면에 보인 것이 목표는 없는 것처럼 시선은 고정된 채 한아름의 짐을 짊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을을 보며 난 '고종 황제'를 떠올렸다. 밝은 태양볕 여름의 어느날 그물진 막대기 하나 들고 조그만 공을 맞춰 상대에게 넘기려고 애쓰는 언더우드 목사의 행동(그는 이를 운동이라 했고, 이름은 정구Tennis 라 불렀다)을 보고 고종황제는 말씀하셨다. "아니 이 뙤약볕에 뭐하는 짓이냐? 아랫 것들 시키지 않고..." 내 마음이 그랬다. 
 
'왜 멀리 외국까지 가서 저러고 걷고 있지?'
 
 옛날에야 '순례'라 해서 태어나 가진 원죄와 현재까지 지은 죄를 벗고자 순례자들이 있었다지만, 제각각의 국적과 말을 가진 오만 가지 복장으로 걷고 있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몰입하고자 모가지를 늘여뜨린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가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되어있었다. 내가 살던 곳 반대편으로 넘어와 상상하지 못한 낯선 곳에 떨어져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길을 찾아 걸어가는 어행.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 이 '야고보 길 순례'가 아니던가? 그 후로 며칠동안 '야고보 길'은 내 뇌리의 넓은 자리에 세를 얻고 있었다. 이 책,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만나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다.
 
  독일에서 코메디언으로 잘 알려진 저자는 휴식없는 업무의 연속, 어리석음으로 비롯된 쓸 데 없는 좌절과 분노로 인해 담낭이 터져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어 어쩔 수 없는 휴식을 갖게 되고, 그 '작전 타임'의 시간에 우연히 만난 책 [기쁨의 야고보 길]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자신도 그 길을 걷는 여정에 뛰어들게 된다. 2001년 6월 9일부터 7월 20까지 42일,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600 킬로미터의 도보로 여행하며 매일 매일의 여정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이 책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Ich bin dann mal weg]이다. 독일 아마존 7위에 오르고, 2백 만부가 팔렸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소개가 되었는데, 책을 펴기 전 처음엔 유명 연예인의 수고로운 여행기여서 그 유명세가 한 몫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의 여행기간 동안 펼쳐진 실시간의 중계일기는 생생하기 그지없고, 위트와 농담이 함께 어울어져 그 힘이 독자들로 하여금 빠지게 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의 글은 솔직하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처음 여행을 마음먹은 것도 단순히 [책]에 빠져 함께 경험해 보고 싶었고, 그는 그곳에서 '구도자들의 순례길'인 만큼 어행중에 '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내 자신이 누구인지 나조차도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한 가지 질문을 찾아 여정을 시작한다. 그 질문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였다. 하지만 여행의 둘째 날부터 그는 비오는 날 경사진 산길의 강행군을 포기하고 프랑스인의 '차'를 얻어탄다. 순례자의 여정에 '자동차'라니...스페인 사람이었으면 절대로 태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말 그대로 고생을 사서 하는 여정에서 '안락을 추구'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서양인의 그것은 가능했나 보다. 오히려 '삶의 어느 순간을 기록한 개인자서전'인 만큼 적당히 숨기고 포장했을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의 솔직한 생각과 행동의 기록이 이 책을 끝까지 사로잡는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야고보 순례길은 '오롯이' 혼자서 갈 수 밖에 없는 여정이란다. 다시 말해 동행이 있게 되면 그에 맞게 보폭을 맞춰야 하고, 그의 사정과 형편을 고려하다 보면 자신이 계획한 걸음을 온전히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그와 함께 발맞출 때 우리는 그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 훌륭한 사람'은 남에게 구애받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길만을 걸어온 사람이 아니던가? 자신을 찾아 떠난 여행인 만큼 '나를 챙기기도 벅찬 여정'에 남과 함께 가기 위해 수고로움을 자처한다는 것은 그들의 '합리주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여행의 의미에도 어긋난 것일지도 모른다. 중도에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 뒤쳐지거나,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을 지키지 못한 일이기에 아직 순례를 마칠 내공이 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끝이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과 같단 말인가? 정말 혼자여만 하는 것인가? 왠지 모를 '팍팍함'에 나마저 갈증이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야고보 순례'의 여정을 함께 하며 든 생각은 순수하게 혼자서 걷는 시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되지만, 순간 누군가 '인기척'만 느끼게 되어도 '사회 속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인간(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순례길의 목적은 사람마다 달랐다. 저자처럼 책을 통해 그것을 답습하려 했던 사람도 있었고, 남미의 처녀들처럼 되돌아가는 길엔 유럽의 신랑감을 데려오라는 부모의 명령으로 막중한 임무를 띠고온 사람들도 있다. 병으로 먼저 떠나 보낸 자식과 함께 왔던 어머니는 자식이 포기한 그 길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해 끝마침을 하늘에서나마 지켜보게 하려고 했고, 순례의 길에서 동냥으로 생활을 연명하는 치들도 있다. 그랬던 만큼 그는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솔직하다. '순례를 한다고 해서 냄새나고, 시끄럽고, 지저분한 순례자의 숙소에서 꼭 자야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 뭉쳐서 꿍싯거리고 복닥거려야 제대로운 순례가 되란 법은 없잖은가?'라는 식으로 생각하며 순례자의 숙소를 박차고 나와 길건너편에서 호텔에서 편한 잠을 잔다.  그의 덩치와 인상때문에 동성연애자이면서도 영국인 순례자 앤으로부터는 '추근덕대는 놈' 취급을 받기도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갈증을 참아가며 아픈 발로 걷기보다 사람들과 부딛는 시간들이 그에게는 더 어려운 시간이고 많은 생각을 던지는 지도 모른다.
 
  "순례길은 나의 인생 여정을 보여준다. 시작은 실제의 내 삶처럼 난산이었다. 어행 초창기와 어린 시절의 나는 내 속도를 찾기 힘들었다. 인생의 길 중간까지는 그때까지 쌓아온 긍정적인 경험과 함께 오류와 혼돈이 공존했고 가끔 길 밖에 나앉기도 했다. 그러나 반쯤 왔을 때부터는 목적지까지 기쁜 마음으로 행진했다. 이 순례길이 친절하게도 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여주는 듯하다. 담담함을 지닐 것, 무관심과 냉담함이 아닌 긍정적인 의미의 담담함. 그러면서 유쾌함을 견지할 것. 이름 붙이자면 '유쾌한 담담함'이 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순례를 하는 매일매일도 전체의 순례길과 똑같이 구성된다. 세부적인 것이 전체의 복사본이다. 하나가 전체에, 전체가 하나에 있다."(p 360)
 
  그의 여정의 시작은 거창한 '구도求道'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정을 모두 마칠때 즈음 태어나 지금껏 자신이 누구였음을 알게 되고, 앞으로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에게 그것은 '유쾌한 담담함' 이었다. 저자는 이제부터 '얼마의 부를 이루고, 얼마의 명예를, 얼마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목표가 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진정한 인생의 목표라는 것을 배웠고, 이제부터 그의 하루 하루의 인생은 그것을 지켰는지 아닌지를 반성하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 지금부터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오늘 밤에 죽을 사람인 것처럼 대하라. 당신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라는 어느 책에 읽은 말이 생각난다. 혹자는 '오늘밤에 곧 죽을 사람으로 보고' 상대를 대하라 했고, 저자는 '유쾌하고 담담하게' 미래에 대하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길, 나만의 길에서 만날 인생의 목표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정말 궁금하다. 나도 찾을 수 있을까? 이 길을 꼭 떠나보고 싶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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