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이른 새벽, 떠나는 아버지의 운구를 향해 부르짖는 한 여인의 소리를 들었다. ‘아빠, 나를 나아줘서 고마워요. 아빠’ , 지금도 이 목맨 울음을 떠 올리면 가슴 뭉클함과 눈시울이 젖어든다. 아내를, 여동생을 여윈,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더 이상 손을 맞잡을 수 없는 이별을 겪는 이들의 슬픔은 세상 모든 서글픔과 비통함으로 가슴을 사무치게 한다.

 

26편의 내면의 일기로 읽히는 이 에세이집은 슬픔 속에 숨 쉬는 사람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사람이 발산하는 그 빛 때문에 진정 아름다운 사유들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슬픔의 비의(秘義)를 간직한 채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삶은 상실을 필수로 하는 고통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아주 느린 속도로 읽어나가야겠다고 펼쳐든 이유는 공허함의 깊어짐과 의지가 소진되어가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와의 작은 대화의 시도였다고 해야겠다.

 

또한 슬픔이라는 공통의 감정을 지닌 누군가와의 유대감에 대한 기대였을 것이다. 분명 이러한 기대는 내가 향한 시선의 방향을 전환하는 데 깨달음과 위로와 격려, 공감으로 작은 성취를 가져다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이미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자기와의 대화에 나서는 고독의 시간에 대한 잃어버린 가치의 회복이었을 것이다. 토해내지 못하고 가슴 어딘가에 막혀 있는 슬픔에 저지당한 채 있는 사람들이 이겨내고 마침내 발견하는 새로운 삶에 대한 이해는 반복하여 곱씹는 나만의 언어가 된다.

 

누군가를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게 되고 나서, 그 사람을 만난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다는 말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P 14~15)

아버지를 보내드리면서 절규하는 여인이 토해냈던 언어가 그토록 시리게 아름다웠던 이유를 이제는 더욱 분명하게 안다. 그녀의 삶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리라는 것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가 그녀의 인생을 바닥에서 지탱해주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희망, 사랑, 신뢰, 위로, 격려, 치유 ....”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존재들이 나의 외부에 있으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침묵 속에 작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으로써 진심으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 주선되는 닫힌 문의 열쇠를 발견하는 짧은 순간의 번쩍임이 있다. 아마 벗어나기 어려운 시련 속에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 시공을 초월하는 울림이 있음을 말하는 작가의 타인에 대한 깊은 유대와 이해의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내면에 잠들어있는 예지의 힘에 대한 일깨움, 어떻게든 견뎌냈기에 살아있는 그 내재된 삶의 용기, 특히 용기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구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P 52)는 구절은 내게 붙잡아야 할 미세한 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슬픔 속에서 다시 발견했을 때” (P 166), 그것을 환희에 넘치는 슬픔이라 묘사한 작가의 감성은 꽤나 오래 내 마음의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이 책은 내 시선이 닿는 책장의 한 곳에서 내 손길을 자주 받아야 할 것 같다. 진정 개개인의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단 한 번뿐인 경험인 문학작품으로서 독자와 무구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책이 되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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