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한창훈 지음, 한단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누구나 누구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득실거리는 2016년 한국사회의 오늘을 사는 내겐 부패한 권력의 안하무인과 탐욕을 호들갑스럽게 전하는 매스컴이 진부하기 그지없다.  터무니없이 불안정하고 비인간적이며, 탐욕을 옹호하는 비이성적 권력이 지배하는 상인화된 사회에서 무엇이 그리 새로울까? 그래서일까?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않다." 라는 한 줄의 법으로 사는, 그리고  "저는 당신보다 높지 않습니다."라며 서로 손을 뻗어 어깨에 대는 인사를 하는 소설 속 섬 주민들의 삶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동경의 시선만 보내게 된다.

 

총 다섯 편의 연작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의 제1 배경인 섬은 그래서일까?  뭍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며,  누군가는 그곳의 바람, 파도와  달려드는 갈매기, 외로움 탓에 '가히 살인적'이라 떠나는 곳이다. 소비와 탐욕과 무사유가 최고의 가치인 사회에 찌들대로 찌든 나같은 이들에게는 낯설고 비현실적이라 공감하지 못하는 곳일 게다.

그러나 푸르고 맑은 바다, 여러가지 꽃들, 그리고 "너무 맑고 또렷해서 빗자루질이라도 하면 후드득 별이 떨어질 것 같은" 곳이라고 하는 이들,  아마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사유할 줄 아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저 단 한 줄의 법이면 충분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소설은 얄궃게도 이들에게 시련을 준다. 그들 섬에 화산활동이 시작되고 부득이 고위관리와 지도자, 무수한 법과 공장이 있는 우리들의 세계에서 삶을 꾸려야만 한다. 제2 배경이다. 다섯 편의 연작중 제 1배경을 서술한 [그나라로 간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어지는 네 편은 이 익숙한 우리들의 '나라'에 적응하는 섬 사람들의 생존기라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에서 표제작인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오늘 우리들의 세계에서 흘러내리는 고름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제 섬 사람들은 쓰레기 치우는 곳, 파출부, 환자 목욕시키기, 가로수 정비, .... 이 일들에서 생활의 방편을 얻어내고 만족과 관조의 삶을 살아간다. 이때 뻔뻔한 우리의 세계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 그들의 적응은 우리사회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무사유의 사회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말이겠는가?  소비지상, 물질중심, 이익 우선, 무한경쟁, 자유시장과 같은 이 세계의 가치가 토해내는 경제적 불균형, 사회적 양극화, 문화전쟁의 양상, 도덕성의 상실, 지적 공백 상태에 이들이 적응했다는 이 천박한 문장보다 역겨운 말이 어디 있을까?

 

"당신은 일방적으로 설득하려고 해. 그게 무슨 대화야?"

 "맞아 나는 당신을 설득하고 싶어. 이해받고 싶단 말이야."

"지겨워 듣기 싫어"

 

남의 말을 들어 줄 여유가 없는 사회, 그래서 '이야기 들어주는 집'이 성황을 이루고, 나아가 "서로 번갈아 이야기 하고 관심 깊게 들어"주는 '쿠니의 대화하는 집'이 있으며,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네 고향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더럽대" 라며 섬 주민의 아이를 몰려들어 때리는 우리의 아이들과, "악보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면 안 된다.훌륭한 연주가가 되려면 기존의 연주를 그대로 본받는 것도 꼭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아무나 한 명만 치면 되잖아요."  교사와 아이의 대화가 발하는 우리 이성의 현주소와 교육의 뼈아픈 이야기가 흐른다.

학교에 들어가서 배워야 할 것들을 학원에서 미리 배우고, 준비하는 자만이 성공 할 수 있다고 끝없이 내모는 경쟁중심의 이 피폐한 사회,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시도할수록 지쳐가고, 서로 등을 돌리며, 누구보다 높아지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분노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윽고 화산활동이 멈추고 그들의 섬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이야기인 [다시 그곳으로]라는 연작은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이득이 없는 사람들이 떠나는 항구에는 어떠한 환송도 없으며, 화물선에 실려 비좁은 공간에서 독선적인 배의 절대규칙에 얽메여 항해한다. "선장은 언제나 옳다."  우리사회의 수많은 법률위에 있는 이 절대규칙이 결코 낯설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남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더군요."라는 이 세계에 대한 지도자의 행태에 이보다 적확한 이해가 어디에 있을까?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않다!" 와 대척점에 놓여있는 비이성적인 이 사회의 현실들을 다 섯편의 우화로 지펴낸 170여쪽의 작은 소설집이 발산하는 무게는 장중하기 이를 데 없다.  '가히  살인적'인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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