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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ㅣ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 본 리뷰에는 소설의 내용이 있습니다.
[엔더스]의 전작인 [스타터스]를 읽고 나는 "생명윤리에 대한 도덕적 성찰을 이끄는 작품"이라고 소감을 썼었다. 그리곤 비정한 '신체강탈'의 가상세계라는 소재의 참신성과 스토리의 달달한 맛에만 머물 수 없는 소설이라고 했다. 그만큼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진중함이 소설의 전체를 이끌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엔더스]는 전편의 무거운 주제의식을 떨어내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정통 추리소설의 장점을 겨냥하기라도 한듯 미스터리와 긴장감있는 속도, 그리고 독자의 기대를 멋지게 뒤집어버리는 대반전, 게다가 TV리얼리티쇼를 방불케하는 생존게임식 요소까지 구성과 스토리의 전개가 놀라울 정도이다. 그렇다고 '리사 프라이스'가 아무런 것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모라는 게 너무 과대평가 되고 있다는 거야. 아름다움은 홀로 스타의 기준에 맞추는 게 아니라, 너한테 맞추는 거야" 와 같이 성형중독 사회를 꼬집는가하면, "백신이 허용된 특권 계층...정치인, 장성, ~(중략)~ ...유명연예인이나 상위 부유층 미들이 있었다." 처럼 생물학전으로 전멸한 중년세대인 '미들'중에서도 부를 거머쥔 소수계층이 생존하고 있음을 비추고 있다. 이는 자본집중 사회의 편중과 왜곡된 부의 윤리의식을 배경화하려는 작가의 의지라 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의 세계를 기반으로 십대의 소년 소녀인 '스타터스'들의 신체렌탈을 주도했던 바디뱅크인 일명 '프라임 데스티네이션(Prime Destination)'의 파괴가 있은 직후 이 탐욕과 부도덕한 집단의 수장인 '올드맨'의 집요한 추적과 열여섯 소녀 '캘리'의 용기있는 대결이 펼쳐진다.
프라임데스티네이션에 자신의 신체대여를 위해 머리에 칩이 이식되었던 스타터스들은 '메탈'이라고 불린다. 올드맨은 바디뱅크가 붕괴되었으나 메탈 추적능력을 통해 이들을 납치, 매매의 대상으로 삼는다. 프라임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식된 칩을 개조했던 캘리에게 올드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 캘리, 내가 그리웠지?" , "나는 여전히 어떤 칩이라도 접속할 수 있어", "게다가 무기로도 바꿀 수 있지"
동생 타일러의 신발을 사주기 위해 대형 쇼핑몰을 찾은 캘리의 눈 앞에서 시위라도 하듯 메탈이 폭발하고, 유리와 금속 파편이 캘리위로 비처럼 쏟아질 때 그녀를 방패처럼 막고있는 스타터를 느끼게 된다. '하이든', 그는 올드맨과 추종자들의 추적을 피해 캘리의 도피를 돕고, 올드맨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알린다. 아버지에 대항해 캘리와 그녀의 동생 타일러를 보호하고, 자신의 비밀주거지에 도망자들인 메탈들에게 안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습격을 받은 이들의 비밀공간은 파괴되고 같이 기숙하던 메탈들은 납치당하고 만다. 이윽고 올드맨의 접속기술은 더욱 진전되어 캘리의 신체를 통제하기에 이른다. 통제영역을 벗어나 그를 파괴하기 위한 캘리와 하이든의 쫓고 쫓기는 긴장국면은 지속되고, 캘리에게 아빠의 목소리가 접속되어 들려온다. 올드맨의 변조된 가장일까, 아빠가 생존하여 계신걸까? 캘리는 혼란에 빠진다. 이 혼란은 여타 메탈들과는 달리 캘리에게 이식된 칩의 변조과정에서 변이된 '다중접속'의 가능성, 그리고 확신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신체에 여러사람의 정신이 진입하여 사용할 수 있는 독보적인 존재, 탐욕의 화신인 올드맨이 캘리를 추적하는 이유이다. 생명의 객체화, 대상화, 생산물화의 극치이다. 인간 고유의 정체성은 완전히 실종되고 오직 재화, 황금의 논리만 작동한다.
드디어 올드맨의 정체, 붕괴된 바디뱅크인 프라임의 조직 동기가 드러나는 반전이 시작된다. "프라임이 존재하는 온전한 이유는 스타터 노예제의 끝이었어"
그리고 캘리의 의식속에 들려오는 협박의 목소리 인물인 브로크만의 실체가 드러난다. 독자가 굳건히 믿고 있었던 존재들에 대한 기대와 앎이 산산조각이 나며, 지금까지의 이야기 전개를 다시 수습하기 시작해야 한다. 캘리와 하이든 일행이 싸워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캘리의 다중접속 능력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래상품으로서의 최고 가치를 지닌 소녀, 캘리의 도전은 다시 시작된다. 자신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힘에 대항하여 그 힘을 상대에게로 역전시키는 능력, 대반전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복과 통제의 가치로 과학기술을 사용하려는 계층의 야욕, 윤리적 감각이 실종된 비정한 신체 강탈의 가상 세계를 뛰어난 스토리 전개 역량에 버무려낸 SF와 추리문학의 결정판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혹시 [미들스]라는 제목의 후속 작품을 기대한다면 작가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