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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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우연, 그리고 신비의 그늘을 드리운 5편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경이롭다 할 정도의 반전이 돋보이는 연작소설이다. 용의자, 범인 추정의 인물적 트릭이 아니라 우연이 필연으로, 신비가 논리와 과학적 이성으로 전환됨으로써 사건의 본질적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그야말로 반전의 지존을 마주하게 된다고 할까?

한낱 망상에 불과한 듯 보이는 에피소드적 사건이 무의식속에 새겨진 과거 시간의 은밀한 실체라는 진실을 드러내고, 우연의 동시성은 필연이라는 계획된 행위의 은폐인가 하면, 논리적 육감이라는 인간의 신비로운 직관의 세계는 태곳적부터 인간 생체에 축적된 감관적 지식, 바로 과학적 이성에 가닿는 인간 정신에 대한 빼어난 관찰이 그것이다.

 

첫 번째 수록된「꿈에서 본 소녀」는 열 살 어린 시절의 꿈에 나타났던 ‘모리사키 레이미’라는 소녀를 현실에서 발견하고 그녀의 잠든 방에 방문했다 엽총의 사격을 받고 도망치던 청년의 단순 치사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십 칠년 전 당시에 출생치도 않았던 꿈속에서 본 소녀를 연인으로 확신함으로써 발생한 터무니없어 보이는 사건, 기이한, 설명할 수 없어 신비롭게 보이기만 하는 이 ‘꿈’의 진실을 추적하게 되면 현실 속의 많은 실체를 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C.G.융이 설파한 무의식의 심연을 탐험하는 문학 판(版)이라 할까? 어린 시절 동네 단짝 친구였던 신코짱이라는 소녀의 죽음과 그녀의 인형에 얽힌 추억, 잠재의식 속에서 소년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던,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조종당하던 존재의 진실들에 연결된 망각된 사실들이 드러남으로써 단순한 에피소드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전혀 다른 성질의 복잡한 사건으로 변화된다.

 

「영(靈)을 보다」라는 두 번째 작품 역시 이처럼 사건의 본질이 완전히 전복되고 있는데, 여기에 유령의 환영을 보는 순간 또 다른 장소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우연’적 동시성에서 은폐된 필연성을 발견하는 이성의 시선이 더해진다. 충동적 살인에서 자살 위장의 실패와 계획살인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주의 사건담당’이라는 살짝 유치한 별명을 지닌‘구사나기’형사와 대학동창인 물리학 교수 ‘유가와’의 협력수사라는 인적조합으로 구색을 더한다. 즉 신비와 우연이라는 의혹의 이면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추적하는 과학적 지성에 대한 찬사라 할까? 그러나 인간 지성의 접근을 불허하는 신비와 우연의 영역은 정말 없는 걸까?

 

작가는 호기롭게 물리학 교수‘유가와’의 과학적 지성을 통해 불가해한 신비와, 우연의 지대란 없다는 듯이 사건의 본질을 규명하지만 마지막에 수록된 다섯 번째 작품인「예지몽」의 여운을 남기는 문장은 인간의 이해가 따르지 않는 영역의 존재를 암시한다. “엄마, 또 이상한 꿈을 꿨어”, “ 그 아주머니가 아래로 떨어져”, “남자랑 같이 어두운 계곡 같은 데로 떨어져”..... 독자들에게 한 번 해결해 보라는 과제일까? 아니면 불가해의 영역에 대한 의혹의 시선인가?

 

세 번째 작품은 인간의 감관으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현상을 제재로 하고 있다. 시끄러운 영(靈)이라고 불리는 으스스한 기운과 저절로 사물이나 구조물이 덜덜 떨어대는 현상은 실로 온 몸의 솜털조차 곤두서게 할 것이다. 건강용품 서비스 엔지니어인 남편의 실종, 남편이 갇혀있으리라 추정되는 주택과 이질적인 주택점유자들과 이상 행동, 그리곤 저녁 8시만 되면 사시나무 떨 듯 진동하는 주택에서의 기이한 소음은 여자의 논리적 육감을 이끈다. 어쩌면 육감이란 고대로부터 인간의 몸에 층층이 쌓여온 오묘한 감관의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학적 이성보다 열등한 것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떠드는 영혼」은 이러한 인간 정신세계의 탐색 못지않게 흥미로운 은유가 덧대어 지는데, 부도체인 유리막대가 열을 머금자 전도체가 되고, 마침내 그 열로 인해 녹아버려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탐욕으로 인해 자신조차 파멸하고 마는 인간 심리의 도덕적 통찰이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삶의 존속을 좌우하는 ‘돈’, 이것이 주체이고 인간이 객체로 전락하고 만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은 살해하고, 살해당하며, 스스로 생을 끊기도 한다.

 

돈의 노예가 된 인간, 이러한 관점에서 네 번째 수록작인 「그녀의 알리바이」는 「떠드는 영혼」의 또 다른 판본이라고도 할 것이다. 빈사상태에 빠진 가업을 존속시키기 위해 벌어지는, 즉 돈을 위한 죽음의 이야기다. 다만 용의자의 지위를 피하기 위한 자기변호의 입증수단인 ‘알리바이’라는 보편적 이해가 전도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발상의 전복이 소설을 이끈다. 수사의 시선을 오히려 용의자 자신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보편적 이성은 이에 무능함을 노출 시킨다.

 

『예지몽』은 이렇듯 꿈을 신비주의로서만이 아니라 현실적 현상에 토대를 둔 인간 욕망의 실현수단이자 의지의 발현이라는 과학으로서의 심리적 표상으로 실현시킴으로써 우리들이 의식의 표면으로만 이해 할 수 없었던 신비와 우연의 허상을 해체하여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이성의 무능지대를 종횡누비면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색하고 진실 접근의 통로를 안내하는 것이다. 정교한 트릭과 아울러 주도면밀한 사건과 의식 흐름의 구성, 의문의 여지없는 명쾌한 추리까지, 가히 완벽한 또 하나의 미스터리 걸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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