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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작은글씨) - 라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ㅣ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지음, 강주헌 옮김 / 나무생각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프랑스사회는 몽테뉴, 파스칼 등 걸출한 모럴리스트(moralist)들을 배출했다. 특히 인간 심성에 대한 시니컬하기 그지없는 탐구자인‘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를 제외하고 도덕주의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미묘한 심층을 꿰뚫는 504개의 잠언과 대화, 거짓, 취향, 사랑과 삶 등에 대한 성찰로 구성된『잠언과 성찰』이란 이 책의 신랄함을 음미하다보면 더더욱 불완전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민낯을 보게 된다.
인간의 심성이란 이렇게 얄궂은 것을, 위선, 거짓, 허영, 자존심과 오만의 가면으로 덧 씌워진 실제를 까발린다. 책의 본문에 들어가기 전, 속 표지를 장식하는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는 한 구(句)의 잠언이 이 후에 열거될 인간성 탐사의 결과들이 어떠한 것들일지 선명한 예견을 가능케 한다.
우리의 저 어두운 밑바닥에 짙게 깔려있는 알 수 없는 마음과 정신, 그것들의 형태가 어떻게 표현되고 행동되는지를 관찰한 그의 시선이 느껴지고, 그 해학과 풍자의 문장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우선 인간의 자기 반영적 심성의 진실을 얘기한 몇 개의 구절들을 보면 이렇다.
“우리는 남의 불행을 보고 참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우리에게 결점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 그렇게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오만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의 오만에 대해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본성의 그 천박함, 유치찬란함, 불완전함에 대한 이 모지락스러울 정도의 독언(毒言)에도 불구하고 불쾌하지 않은 것은 무의식에서나마 나란 인간의 본질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독특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의 문장이 그저 공감의 끄덕임, 혹은 동의의 자조(自嘲)에만 머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관찰과 반성에서 자기 발전의 토대가 되어 줄 수 있다는 각성에 있을 것이다. “욕심은 못하는 말이 없고 못하는 역할이 없다. 심지어 욕심이 없는 사람의 역할까지 해낸다.”는 이 잠언이 경계하는 욕심의 무한성, 그 절제의 당위성에 대한 경고라든가, “세상 사람들 모두가 기억력의 부족에 대해서는 투덜대지만 판단력의 부족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는다.”는 정작 자기 인식에 대한 이기적 오류에 대한 심리적 작동의 지적은 미소짓는 가운데 엄중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시원시원하게, 또는 자조적이기까지한 이 해학적 성찰을 읽다보면 관통하는 몇 개의 심리적 관념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허영심, 자존심, 그리고 욕심(이기심)이라는 정서와 감정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 왜 기뻐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오만에 왜 불쾌해 하겠는가?
호기심이라는 감정의 정체를 보자.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찾아가게 만드는 사욕에서 비롯되는 호기심과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알고 싶은 교만에서 오는 호기심, 이것들 역시 허영과 자존심, 이기심의 결정체 아니던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재물을 경멸하는 사람은 많지만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라는 이 잠언을 과연 부정하기 수월한가? 그리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흘리는 것은 자신을 한탄하며 우는 것, 그 소중한 사람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던 호의가 영원히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라는 슬픔 속에 감추어져 있는 위선의 정체역시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선한 행위에 조차서도 인간의 본성이란 과연 이럴진대 그렇지 못한 우리들의 많은 행위의 은닉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구차스러움이 될 것이다.
한 두 구절의 짧은 이같은 촌철살인(寸鐵殺人) 의 잠언과 달리 각각의 주제마다 수 폐이지에 걸쳐 기술한 성찰편의 사색들은 또 다른 관심을 지펴낸다. 요즘 한창 불통(不通)의 정치를 하는 지배권력의 오만함에 대한 비판이나 TV 정치토론에서 접하게 되는 대화의 미성숙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대화가 즐겁지 못한 이유”에 대한 성찰에서 모두가“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대화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허식이라는 지적이나, 흉내, 즉 눈에 보이는 남의 것을 따라하는 행위에 내재한 불확실과 불충분성의 한계를 통한 외관 중시로 인한 자기 상실의 폐해에 대한 기술들은 오늘에도 여전히 시사성을 지니고 시대의 윤리방향을 제시해준다.
또한 <사랑과 바다에 대하여>와 <사랑과 삶에 대하여>라는 두 편의 사랑에 대한 성찰은 격정과 행복, 고통과 무력감의 양면성의 빼어난 비유의 해석을 비롯해서 매일 조금씩 우리의 젊음과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시간에 대한 통찰을 통한 본질적 유사성의 탐사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단순하면서 긴 이해의 여운을 던져주기도 한다. 가히 시대를 넘어선 인간 심성의 진면목을 키득거리며 읽게 하는 독특한 도덕책이라 하여도 무방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