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살인자의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은 그 어느 곳에서도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이 없으므로 폭력적이지 않다고 어떤 평론가는 썼다. 이렇게 무식한 소리는 초등생에게도 듣기 쉽지 않은 말이지 않은가? 살인, 한 개체의 자유를 당사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영원히 박탈한다는 의미만으로도 가장 극악한 폭력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폭력적인 말이 어디에 있나? 칠십 살 노인이 된 살인자‘김병수’의 단지 “더 완벽한 쾌락의 기대”에 의지했던 수많은 살인 행위는 분명 도덕적 관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의 진단이 내려진, 점차 기억을 잃어버리고 궁극에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사라질 노인의 기록의 조각들은 동정, 연민이란 모순된 감정으로 이끈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설은 인간의 도덕적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의 탐색이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의 확인을 향한 여정이다.

 

그런가하면 여러 층위로 겹겹이 쌓여있는 이 소설은 기억이란, 환상성 즉 망각, 삭제능력과 같은 자기 보호로서의 변화무쌍한 이기적 실체를 드러낸다. 조작된 정체성의 기록물로써. 그래서 기억을 잃지 않으며 힘겹게 복기하는 일지의 기록도 결코 진실을 담아 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비록 점차 소멸되어가는 기억, 지워지는 과거의 자신을 복원키 위한, 미래기억을 향한 집념어린 기록조차도 거짓이고 자기기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내면화되어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인간 능력의 한계성, 혹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의 자각이란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치매로 인한 기억의 지워짐이라는 자기 정체성의 상실이나 끝내 맞서 싸우려하는 외부적 위협은 바로 그 자신에 내재된 본질과의 투쟁이란 지점으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층위의 구조를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로 가정한다면, “군중, 포위, 경찰에의 연행”이라는 반복적 상황에 노출되는 치매 노인의 상황과 같은 ‘우리 사회’라는 집단적 주체의 치매적 현상에 대한 “짓궂은 농담”, 시니컬한 에피소드 한 토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살인자 김병수가 혼자만의 전쟁 - 쾌락적 연쇄살인 -을 지속하고 있을 때, “4.19와 5.16, 박정희의 시월유신에서 계엄군이 광주를 포위하고 사람들을 때려죽이고 총으로 쏴” 죽이던 폭력의 역사가 소설 중간 중간에 양념처럼 곁들여져 주마등같이 별개의 차원에서 배경을 장식하며, ‘유령에 의한 죽음’이 가능했던 시대를 증언하는 것과 같다. 즉 주체가 보이지 않는 폭력, 그것은 상상 속에 전도된 딸‘은희’를 노리는 위협(威脅)자가 치매 노인 바로 자신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암묵적 세계, 그 자체의 고유특성인 내재한 폭력을 인지하지 못함으로 인한 자기 반복적 순환을 계속하는 무지이자 몰지각이다. 이 고리를 끊어내야 폭력의 쳇바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치매라는 은유적 혼란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소설은 탈출방법으로 치매의 자각조차 상실하고, 모든 기억이 사라질 때“제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해 달라”라는 말을 뱉어냄으로써 혼란, 내재된, 본질인, 그래서 비가시적인 폭력의 세계에서 해방시키려는 듯하다. 대상없는 무의미한 용서의 발언이다. 징벌할 수 없음이다. 이것은 우리를 도덕적 모순에 빠뜨린다. 외부의 위협이 퇴행성 질병인 치매자체라는 이해와 연쇄살인 행위를 동일한 위상에 올려놓기에 발생하는 오류이다. 내재적 주체의 절멸 자체가 발생한 폭력을 도덕적으로 합리화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유령에 의한 죽음, 그 비가시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김병수의 끊임없는 행동을 지속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아주 폭력적이라 할 수 있다.

 

폭력을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생리학적 퇴행으로 야기되는 제자리에 갇혀 벗어날 수 없는 좌절감을 고통과 공포라고 말하는 것이 자기애로 눈물짓는 인간 누추함의 또 다른 미화이듯이 혐오스러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고작 흔해빠진 치매라는 자기 소멸의 공포를 말하는 것이라면 굳이 문학일 이유가 없으며, “정교하게 다듬어진 공포의 기록”이란 수사도 터무니없어 보인다. 어쨌단 말인가? 이 소설이 스릴러인가? 아니라면 공허한 말이다. 도덕적 불완전성?, 보이지 않는 내재된 구조적 폭력의 드러냄?, 삶의 환상성? 존재자로서의 의미에 대한 사유? 살인자의 기억법은 어디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좌절한 듯한 인상이다. 가독성 높은, 즉 이야기의 재미라는 절반의 성취에 머문 것만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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