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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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여느 작품과 다른 시적 운율(韻律)로 읽는 내내 간결함, 문장의 경쾌함과 율동감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임을 우선 말하고 싶다. 제목의 ‘그 노래’에 무엇인가가 깃들듯이 말이다. 저 깊은 안에 갇혀 자기 소리마저 잃어버린 그 노래의 사연들을 오늘의 사람들이 혹여 지레 귀를 막아버릴까 저어하여 선택된 유혹의 비(非)의식적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속하여 말하여야 할 것이고, 써야 할 것이기에 그래서 잊지 말아야 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아니 꼭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이기에 노래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인 1980년 전후는 내겐 더할 수 없이 우울한 시절, 바로 대학 재학시절이었다. 계엄군이 점령한 학교는 오랜 휴교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4년의 기간 중 삼분의 일은 사실 세월만 낚았다고 해도 될 듯하다. 더구나 부마항쟁을 시작으로 광주민주화항쟁이 내 젊은 대학 시절을 횡단하고 있었기에 아마 인생의 가장 밝아야 했을 시절이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는 어둠 그 자체로 기억되곤 할 것이다. 광주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 등의 시민을 향한 무차별적 만행은 새삼 되뇌고 싶지 않을 만큼 잔혹하고 처절한 것이었음을 반복하지 않으련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이 있다. 부정한 것이 권력을 가지려할 때 그 폭력성은 가히 극악함의 끝이라고, 또한 약자의 것을 빼앗고 그네들을 짓밟는 것이 곧 선이 되고 재화가 되어 권력이 되는 이 패덕(悖德)의 순환은 이젠 끊어야 하지 않겠는냐는 이성 말이다. 30여년이 지났으나 우리사회는 이 점에 있어서는 별반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녀자를 겁탈하고 대검으로 잔인하게 난도질하며 패악질로 한 지역을 파멸시킨 인면수심의 군인이 대통령이 되고 이에 뇌동(雷同)하고 협력하던 정치 행정관료들이 오늘 더욱 득세하여 나라의 정체성을 흔들어대고, 인민의 삶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잊기 좋아하며 무심하고 생무지인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설이 이러한 외형적이고 누구나 아는 드러난 폭력을 말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깊고 본원적인 폭력, 이 땅의 대다수 사람들의 생리가 되어버린, 너무도 구조적이이서 보이지 않는 폭력의 실체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단지 지독히 객관적이고 구조화되어 있는 한국인들의 폭력성이 군사 쿠데타와 정치권력 탈취를 위한 시민의 대대적 학살인 1980년 5월 광주 민중의 항쟁이란 역사적사건과 맞물려 표현될 뿐이다. 늘상 거침없이 뿜어내는 탐욕의 광기들, 그러나 이것을 광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온통 미쳐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애’와 ‘묘자’로 대변되는 소설의 두 인물을 중심으로 그녀들의 어린 시절을 에워싼 우리사회, 아니 시골동네의 이웃이라 불리는 바로 우리네들이 약자에게 행하는 위선과 추오를 보게 된다. 다름아닌 광기이다. 곤궁함으로 스러져가는 이웃, 그러한 이웃의 생존을 도적질하는 우리네들의 무심한 얼굴이다. 도적질 항의에 자신의 자존심을 해쳤다고 살해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비호하는 사회, 나아가 그러한 이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시리게, 그리고 끝도 없이 그려진다. 어찌 이 모두를 쓸 수 있겠는가? 굶어죽고, 겁탈당하고, 시퍼런 대검에 찔려 살해당하고, 삼청교육대라는 기이한 이름의 국가폭력에 끌려가 정신과 육체 모두가 파괴되는 엄연한 현실을 마주한 당사자가 온전히 살아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망상일 것이다.

 

한국인의 심신에 새겨진 이 구조화된 폭력성, 무심함, 타자가 배척된 자기중심적이기만한 탐욕스러움, 소설의 면면에 새겨진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욕망이 “새벽종이 울렸네, 새마을이 밝았네”라는 이 기만적인 노래를 타고 광적으로 흐른다. 소설은 거창한 외침이나 과도한 울분을 토하지 않는다. 구조화된 것은 자극적이지도 노출되지도 않는 것이기에 그 객관적 형상, 본질적 폭력의 양태란 어떤 것인지를 담담하게 기술할 뿐인 것이다. 권력에 눈먼 무식한 군인이 벌인 민중 학살이란 폭력이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폭력이 가능한 이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내재적 인식능력이 지닌 폭력의 모습들을 말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에게 체화된 폭력으로서의 광기 말이다.

 

계엄군에게 겁탈당하고 피투성이로 길거리에 버려졌던 정애의 정신이 현실에 머물지 못하고 이미 주검이 된 가족들의 온기와 고향마을을 떠도는 것, 또한 어린시절 정애의 유일한 벗이었던 묘자의 수감생활은 이들에게 광인의 낙인을 찍는 우리의 정신을 의심케 한다. 정작 미친 것들은 누구인가하고. 회사재산의 유출을 막기위해 수레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의 신체 곳곳은 물론 수레의 틈새 모두를 수색한다. 그러나 정작 유출되는 것은 수레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일화처럼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폭력과 패악은 구조적이고 객관적이어서 눈에 띄지 않는 우리네의 일상적 몸짓이라는 것을 소설은 말하려는 것이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사람이 더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때 터져 나오는 소리, 정애의 아비에게서, 그리고 정애에게, 그리고 묘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신음같은 공허한 노래 소리가 이젠 들리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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