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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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에서 솔제니친에 이르는 19세기와 20세기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문호들의 작품을 음식이라는 코드로 재해석하여 당대 러시아 사회와 사람들의 정신을 조명하는 이 책은 독서가들에게 책 읽기의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하여 준다. 소설과 희곡 등 문학작품 속에 투영된‘음식’, ‘먹는다’라는 소재가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의미심장한 제재였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러시아문학의 이해에 한걸음 다가선다는 느낌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2세기에 걸친 러시아의 세계사적 격변은 그대로 사람들의 삶에 녹아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중의 기본인 먹는 행위는 개인 삶의 미세한 변화는 물론 사회 상황이라고 하는 시대의 조류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19세기 전반기, 러시아에 문학다운 문학의 뿌리를 비로소 내리게 했다는 푸슈킨에게서 음식들의 요란한 나열과 비평을 보게 되는 것은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에 대한 열망의 문화적 소산임을 알게 되는 것이고, 20세기 초 소비에트 혁명의 무참한 시대의 식탁과 먹는 것이 ‘파스테르나크’의 ‘지바고’나, ‘솔제니친’의‘이반’으로 표상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남의 것인 서구화와 자신의 것인 슬라브적인 것의 갈등과 절충, 융화가 러시아인들에게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었는가를 바라보는 것은 부끄러운 근대화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우리의 역사와 견주어 흥미로운 과정이 되어주기도 한다. 프랑스적인 것은 고급스럽고 우아한 것이고 슬라브적인 것은 촌스럽고 저렴한 것이라는 당대 러시아 지배계급의 허영과 맹목이 대문호들에게 어떠한 문화적 기호로서 수용되고 있는 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의지일 것이다. 물론 음식과 역사적, 문화적 상호성만을 해독하는 것은 아니다. 먹는것 그 자체가 지니는 본성으로서의, 인간 삶의 본질이라는 철학적 사유가 배제되지 않은 독해이기에 더욱 매혹적인 관점이 된다.

 

그러나 ‘고골’이나 ‘체호프’의 작품 해석에 주류를 이루는 비평적 단어인‘범속성’에 대한 의미의 부정확한 정의에 기초한 해석의 연장이나,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통해 주장하는 삶의 존재론적 의의와 같은 이해에 있어서는 인문학적 논리를 벗어나 사적인 주장으로 비쳐 부분적으로 거북한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범속성이라는 어휘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지향성을 지니고 있지 않음에도 고인물, 비루함, 게으름과 같은 언어와 동등으로 의미화 하는 것과 같다. 범속성은 지극히 찬미할 수도 있는 언어이며 혹은 비난에 사용 할 수도 있는 언어이지만 그것은 전제된 상황에 종속되어 활용되는 것이지 어휘 본성이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미 언급하였지만 이 책은 신선한 문학적 해석을 지닌 매혹적인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 ‘불가코프’의 『개의 심장』, ‘유리 올레샤’의 『질투』와 같은 작품들은 폭넓은 러시아 문학의 접근을 가능케 해주고, 독자의 읽기 영역을 확장시켜주고 있으며, ‘고골’의 「옛 기질의 지주」, ‘체호프’의 「국어 선생」등 단편소설의 해석은 여기서만 맛 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 된다. 어쨌든 책의 코드는 ‘먹는 것’, 음식의 자연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을 오가면서 거장들의 문학이라는 숲속에 내재된 정신과 육체, 즉 인간의 삶속을 산책한다.

 

내게 깊은 인상을 준 해석은 ‘고골’의 『검찰관』, ‘곤차로프’의『오블로모프』, 그리고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들 수 있겠다. 본의 아니게 말단 관리에서 담대한 사기꾼이자 허풍꾼이 되는 ‘흘레스타코프’의 빈곤한 경험과 상상력을 표현하는 유치찬란한 음식이름의 열거, 철저한 감각의 백지상태, 고요와 무관심한 평온이 가득한 ‘오블로모프 기질’과 관련한 논쟁 가능한 삶의 범속성에 대한 비평, 고급 레스토랑과 지옥이 동의어가 되는 문학 관료들의 탐욕에 대한 작품설명은 독자로서만이 아니라 글 쓰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시사점들을 드러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은 예기치 않은 기쁨과 우연의 일치와 기적과 선물로 가득 찬 것”이라는 ‘파스테르나크’의 흠결 많은 대작 『닥터 지바고』 대한 이해를 토대로 혁명과 이로 인해 소외되고 소멸되는 인간의 존엄성, 참된 존재로의 복귀를 향한 고독한 여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무릇 전체주의를 동반하는 혁명의 고통스런 이면을 생각게도 한다.

 

사실 책은 먹는다는 것의 사색을 통한 존재론 적 삶에 대한 다양한 사유들에 대한 해석이고, 이에 대한 특히 범속성에 대한 비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톨스토이’식 쾌락주의 비판을 기초로 하여 음식과 섹스의 권력과 지배 욕구라는 폭력성을 지적하고, 먹는다는 것의 문화화, 즉 미학화, 의식화와 같은 군더더기인 과잉의 악덕에 대한 이야기도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먹기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은 범속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녀모두 진정한 생생한 관심사는 모두 먹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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