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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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물(建造物)들에 어린 사연, 그리고 미학적 감상 약간을 얹어 세상의 모습, 그것이 가능케 한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해보려는 시도 같다. 그래서 내용의 구분도 희(喜), 노(怒), 애(哀), 락(樂) 넷으로 되었을 터이다. 책의 제목이‘집’임에도 불구하고 굳이‘건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집’이 사실 나에게는‘주택’이라는 협의의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책 속의 집들은 도서관, 성당, 박물관, 묘역(墓域), 요새(要塞), 복합상가, 정자, 고택(古宅) 들이어서 그저“지어서 만든 물건”이라는 광의의 표현인 건조물이 납득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어서 만든 물건이다. ‘짓는다’는 말은 여러 재료를 섞어서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이렇게 섞는 행위는 자연 사람들의 의도가 반영된다. 그것이 곧 마음이려니, 각양각색의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섞어야 하느냐라는 방법론이 나오고 이것에 갑론을박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잘못 섞은 물건들이 성내다, 나무라다라는 의미의 ‘노(怒)’부분에 소개되고 있는데, 건축가 김수근이 남긴 옛 부여박물관이 그 하나이고, 더구나 슬프고, 민망하다라는 뜻을 가진 ‘애(哀)’부분에 악명높은 서울의 추물(醜物)인 세운상가로 김수근은 다시금 등장하기도 한다.

 

이 섞는 방법이 만만찮음이다. 한 번 지어진 물건을 허무는 것이 현대사회, 특히 사적소유가 분명한 자본주의사회에 와서는 더욱 수월한 것이 아니어서 잘못 섞어진 것에 사람들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방해 받을 밖에 없다. 그러나 잘 섞어진 물건은 소박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그 아름다움에 공감케 하며, 위로마저 받을 수 있기도 하다.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나누는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책이 어린이대공원 꿈마루나 대한성공회 서울 대성당에서 부분적으로 공간의 미학적 견해를 피력하고, 세운상가를 통해서는 공간계획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발설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미덕은 이 섞는 방법에 도사린 사람들의 의식, 섞는 방법의 정신적 조건, 그 기초에 대한 것들의 통찰이라 할 것이다.

 

‘희(喜)’편에 소개된 뾰족하게 높이 솟아오른 첨탑을 지니지 않은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한옥의 지붕과 창 등 한국적 이미지들의 융합, 성스러움을 잃지 않는 소박함 속의 경건함과 숭고함에서 뽐내지 않으니 더욱 높아 보이는 것의 진리를 발견케 되고, 순천의 “진짜 상식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어린이 도서관에서 섞는 이의 고결한 정신의 실체를 보게 된다. 도서관의 주체는 누구인가,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은 정말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알지 못하던 이 건조물들이 단지 지어진 물건의 의미를 넘어서는 순간일 것이다.

 

한편, 성산동 좁은 골목 언덕길에 조촐하게 자리 잡은‘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라는 이름의 일제 종군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을 기리는 기념관의 사연은 박물관의 곳곳에 새겨진 섬세한 공간적 설계와 배려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독립공원에 천한 위안부의 기념관을 건립할 수 없다는 권력집단의 기막힌 방해에 의해 설립 부지를 잃었다는 것이다. 국가라는 것이 본디 지배권자들을 위한 관리소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국가조차 이러할진대 그러한 국가가 나서서 일본에 진심의 사죄를 요구하는데 미온적인 것은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다.

 

사실 많은 이정표적 건조물들은 그 규모나 자원투입의 측면에서 공공(公共)물이 대부분이라 할 것이다. 또한 옛 건조물들 역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이나 귀족, 사대부들, 지배권자들, 종교적 권위의 산물이다. 이러한 물건 중에 고립과 소통의 경험적 진실을 말해주는 스리랑카에 소재한 시기리야 요새는 흥미로운 주제를 던져준다. 영화(榮華)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깎아지른 수백 미터 높이의 고원에 지은 궁전, 그러나 생존하기 위해서는 내려와야만 한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성채는 주변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단절은 곧 쇠망이다. 다채로운 소통, 경계 없는 왕래와 통행만이 존속과 영화를 만들어냄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권력과 가진 자들의 구별 짓기, 경계 쌓기는 근친적 고립과 퇴보, 죽음의 착수일 것이라는 근엄한 역사적 가르침일 것이다. 인도 무굴제국의 혐오와 슬픔을 간직한 채 현대의 관광객들을 모으는 타지마할과 아라포트성의 사연도 시기리야 못지않은 진리를 발산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인간이 지은 물건들에 어린 역사적이고 체험적이며, 사실적인 진실들의 다양한 이야기의 보고(寶庫)라 할 수도 있겠다. 창덕궁 후원에 그 많은 정자들, 부엌, 방, 마루, 각 한 칸씩 세칸으로 이루어져 양용삼간이라 불리는 충재에서 간결과 절제의 정갈한 미, 아니 삶의 진수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재미이다. 자신의 설익어 어설픈 욕구를, 혹은 권세를 과시하려는, 또는 권력에 아부하고 재화의 축적에 눈 먼 탐욕을 섞어 지은 물건들의 이야기조차 신경이 곤두서는 피곤함을 물리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넉넉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구태여 안목까지 요구하지 아니하며 건조물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그런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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