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거울 속에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헬렌 맥클로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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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해독하지 못한다고 모든 것이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해독 불가능한 영역이 인간에게 불안함과 두려움을 던지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70여 년 전에 쓰인 신비와 초자연적 현상이라 불리는 것들에 대한 인간 이성의 치열한 독해인 이 소설은 바로 경계에 놓인 인간들의 심리적 탐색을 시도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어린 공포의 실체를 과학적 이성만으로 과연 규명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이 해독의 책임자가 정신과 의사인 것은 어쩌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한창 위력을 떨칠 때이니, 작가적 상상력을 그리 탁월한 선상에 놓는 것을 주저하게 하지만, 다양한 소재들을 뒤섞어 발산시키는 이야기의 마력은 가히 이것의 보상을 훌쩍 넘어버린다.

 

배경 또한 한창 감수성 높은 여학교와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중세의 고딕식 음침함이 자리한다. 그리곤 아무런 설명도 없는 일방적 해고를 요구받는 미술 여교사 ‘포스티나’의 당황한 모습이 보이고, 이 의문은 유약한 여성의 심리적 묘사와 그녀에 대해 주위에서 점차 강화되던 경계와 외면의 시선이 더해지면서 불온한 분위기가 지면을 장악한다. 해고 제안에 왠지 항거 하지 못했지만 그 부당성에 좌절하던 여자는 그녀에게서 유일하게 호의를 거두지 않은 동료 여교사인‘기젤라’에게 사연을 하소연 하고, 석연찮은 기운을 감지한 기젤라는 그녀의 연인인 정신과 의사인 ‘배질 윌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제 희생자로 보이는 여교사에게 행해진 부당성의 실체를 좇는다. 불안과 분열적 징후를 보이는 포스티나의 대리인을 자청한 정신과의사는 그녀의 승낙을 얻어내고, 그녀를 여학교에서 내 보낼 수밖에 없었던 학교장의 설명을 접하게 된다. 동시에 서로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포스티나를 목격했다는 학생들과 교사들, 하녀들의 두려움에 가득한 증언은 그 설명 할 수 없는 공포로 대체되어 학교의 명망 유지를 위한 불가피성이었다는 항변이다. 그러나 이 유령 현상에 대한 믿음, 심령적 두려움의 근원에 부정한 인간의 의지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과학이요, 합리적 이성이 가지는 판단일 것이다.

 

아마 소설이 단지 이 심령현상의 배후, 그 이면에 은둔하고 있을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에만 몰두하였다면 굳이 더 읽어볼 의욕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인간의 정신, ‘거울’로 상징되는 자아의 반영물인 거울 속의 존재, 그 낯선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포스티나라는 여성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나’의 다양한 주체들을 발견하는 즐거움, 그리고 분열된 ‘나’의 집합체를 내 몸속이 아닌 외부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혼란과 의심의 경합은 소설적 재미의 격을 올려놓는다.

 

그런데 서로 다른 시공(時空)에 동시에 존재하는 ‘나’를 오늘의 이성은 수용할 것을 거부한다. 누군가의 착시이거나 음험한 수작이 담긴 장난 아니고서는 과학적 논리에서 설명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이 허무맹랑해 보이는 유령타령이나 도플갱어의 주장은 교활하고 야비한 인간의 폭력성이나 탐욕을 위장하려는 기만적 술책의 다른 언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배질 월링이 포스티나에게 도플갱어의 혐오스런 망령을 덧씌운 몇 가지 합리적인 증거와 용의자를 발견해내고 궁극에 가장(假裝)과 거울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환영이 정말의 실체로 인지되는 명쾌한 정신분석학적 해부에 이르게 하는 것은 미스터리의 해결과 이성과 심령의 대결이라는 이중적 성공으로 이끈다.

 

한편 스토리를 구성하는 소재나 전개에 있어서도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데, 특히 포스티나의 어머니로 묘사되고 있는 1900년대 고급 화류계 여성과 상류 계급 남성들의 생활양식, 혹은 여학교를 무대로 펼쳐지는 교사들과 학부형들을 통한 여성들의 패션이나 이성관, 문화의식, 그리고 애증과 약자에 대한 혐오가 발산하는 폭력성, 도덕적 문란, 시대를 휩쓴 매춘부와 명문가들의 얽히고설킨 출생 비밀 등 다채로운 일화와 사건들은 소설의 풍미를 한껏 높여준다. 또한 인물, 사건, 심령적 소재의 완벽한 조화와 소설 전체를 감싸고도는 무의식의 어두운 심연같은 음울한 분위기는 알 수 없는 내면의 무엇을 자극하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게 하고, 사건의 완전한 진상의 수용여부, 즉 과학적 이성과 심령에 대한 믿음의 선택을 독자에게 남겨둔 작가의 중용적 결말도 여타의 미스터리 작품들과 색다른 인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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