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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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음, 본 리뷰는 귀하의 독서 재미를 박탈할 수 있습니다]

 

이치라는 것이 있다. 당연히 세상의 순리가 자기 자리에 맞게 들어서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이 말을 곰곰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독선이 보인다.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 그 순리라는 것이 그 만큼 늘어난다. 그 순리에 대한 믿음은 충돌하고 이내 갈등하게 된다. 내가 당위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당위가 아닌 것이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 '경우' 또한 이와 같은 용법을 지닌 말이 아닐까. '사람이 경우가 없어'라고 상대를 비방하는 표현에는 다분히 주관적인 자신의 분별력과 이치에 대한 거슬림의 감정이 있다. 그러나 상대는 오히려 자신의 판단에 어떠한 그릇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기준에 작용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도덕 원칙으로서의 정의일까? 아니면 단순히 감정적 불쾌를 나타내는 질투나 시기심, 혹은 무례함이나 불합리성, 균형감의 파괴에 대한 불만일까? 이미 <고백>이라는 걸출한 작품에서 변질된 자기애라는 인간의 내면에 괴물화된 이기심의 형태들을 깊이있게 투영하였듯이 비록 돈독한 신뢰관계로 인간 상호간의 심리적 교량이 있을것이라는 이해에도 불구하고 이를 초월하는 또다른 형식의 자기애라는 인간 심리와 마주하게 된다. 아마 이것의 실체를 작가는 경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러하니 애초에 이 주관적 판단을 전제로하는 심리적 행동은 펼연적으로 오류를 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보육원과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두 여자 아이들은 성장하여 우연히 보육시설의 봉사활동을 하다 서로의 처지를 알게되고 우정을 쌓는다. 그리곤 파란 리본과 함께 맡겨진 사연을 나누고 그 리본의 반을 잘라 요코, 그리고 하루미, 두 여성은 새로운 가족이상의 의미를 교환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소재가 되어 지방의원의 아내가 된 요코에 의해 <파란하늘 리본>이라는 제목의 동화집으로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오른다. 신문사 기자가 된 하루미는 사전 허락없이 자신의 사연을 출간한 요코의 이유있는 사죄를 허물없이 보듬고 대중적 지지를 보내준다. 그러나 지방의원의 아내이자 유명동화작가가 되어 분주한 날을 보내던 요코를 시샘하듯 불온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의 어린 아들 유타가 유괴되고 비밀을 공개조건으로 아이를 살려주겠다는 협박장이 선거 사무실로 날아든다.

 

이의 원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지방의원인 남편의 비서인 아키라는 여성, 후원회장인 아키의 아버지인 고토, 남편의 부정선거 자금의혹을 고발했던 내부자인 남편의 오랜 지기, 요코의 결혼을 여전히 마땅치 않아하는 시어머니 등등이 얽혀 의혹자는 점차 확대되고, 사건은 남편의 부정선거 자금의 비밀을 밝히라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거듭 날아든 협박장은 점차 요코쪽으로 방향을 겨눈다. 요코는 아이의 무사한 귀환을 위해 자신의 출신에 얽힌 모든 진실을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진실을 알기위해 그녀는 자신의 출생시기와 보육원에 맡겨지던 시절과 일치하는 한 살인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자취를 좇고, 의혹의 여인을 알아낸다. 모든 정황적 증거는 그녀가 살인자의 딸임을 가리킨다. 그리곤 유명 TV프로그램의 인터뷰 방송에 초대되고, 자신이 30여년전 살인사건 가해자의 딸임을 밝히고 자식으로서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사죄와 책임을 다할 것임을 호소한다.

 

소설은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가족을 이루고 행복한 미래를 펼쳐가던 그녀에게 과거의 진실을 구태여 알게하고 행복을 박탈하려는 유괴범의 저의는 무엇일까? 하고. 대체 범인은 요코에게 어떤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의 정체를 마주하는 순간 아~하는 자조적인 탄식을 하게 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무언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삶의 질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 이러한 인간의 본원적인 '경우'의 원칙은 대체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희생자일 뿐인 버려진 아이였던 요코에게 불행의 진실을 알게하는 것이 경우를 지키겠다는 도덕적 혹은 감정적 미덕을 지키는 정의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무튼 사람의 심연을 지배하는 의식의 요구는 이기심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곤혹스러운 자문을 하게한다. 경우를 주장하기 보다는 그 경우의 배경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말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나토 가나에의 인간의 자기애에 기초하는 또 하나의 세밀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우린 타인의 행복에 무심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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