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독(毒)이란 사전적 의미처럼 건강이나 생명에 해를 끼치는‘성분’이다. 이것은 어떤 도덕적 기준이나 양심의 개입을 허용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독은 ‘인간의 도덕률에 어긋나는 나쁨’이라는 악(惡)과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본성을 가진 것임에는 분명하다. 즉 독 자체가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지만 이것이 무엇인가에 의해 표출되면 악과의 분별은 무의미해 진다. 독은 이처럼 표출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모호한 것이고, 소설의 제목처럼‘이름’을 가질 수 ‘없는’것일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독이 어디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사회에 작동되고 있는가는 항상 주의를 요구한다. 소설은 직설적으로 무차별연쇄독살 사건으로 독의 물질적 실체를 드러내지만 사실 의지가 없는 독으로서, 이 형상은 결과이지 본질이 아니다. 성분에 불과한 독이란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만져지지도 않는다. 무엇인가가 품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독성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이것을 가장 많이 뿌리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는 바로 사람이라는 생각 말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에 지나치게 무거운 접근이 되어버렸지만,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발산하는 독성에 대한 탐색이기 때문이다. 산책 중의 한 노인이 편의점에서 산 우롱차를 마시고 돌연사 한다.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독극물 주입에 의한 네 번째 희생자가 된 것이다. 청산가리라는 독은 누군가라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 정말의 독이 되었다. 사람의 행동이 수반된다. 한편으로 이마다 콘체른이란 대기업 사내보 편집실의 26세 아르바이트 여성의 극단적인 자기애는 타인에 대한 폭력행위로 나타나고, 직장 동료들을 지속적으로 가해한다. 이 병적인 여성의 행동은 오직 타인을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자기 위안이란 보상으로 대체하는 것인데, 그녀가 퍼뜨리는 성분은 분명 남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독이다.

 

여기에 독은 산업사회가 무책임하게 저질러댄 오염물질로서도 그 모습을 나타낸다. 특히 새집증후군이나 오염된 토지에 건설된 주택으로 인한 각종 질병은 바로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 낸 찌꺼기로서의 독이다. 한국사회로 말하자면 개발열풍으로 토양에 대한 성분 조사도 없이 준공업지나 공업지에 마구 지어진 주택단지가 그 희생물일 것이다. 원인도 모를 천식과 피부질환 등등, 사람을 해치는 독을 뿌려대는 바로 그 사람들의 무책임한 의식이야말로 독이라는 것이다. 소설은 또 추가한다. 학교에서 저질러지는 집단 따돌림(이지메)에 희생되는 아이들의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외상(外傷)을. 사람들이 뿜어내는 독성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것들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줄 수 없을 정도이다. 결국 인간이 독 그 자체가 아닐까하는 소설 속 인물의 독백은 의문이 아니라 단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야기의 구조는 독극물 연쇄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결합하면서 거대한 독의 그물망으로 촘촘히 채워진 세상의 현실을 해부하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독의 네트워크’의 현실을 엮는 이는 대기업의 사내보 편집실 직원인‘스기무라’라는 삼십대 후반의 남성이고, 더구나 회장의 사위라는 신분으로 대상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청년의 궁박한 삶이나, 자기 욕망 달성의 한계에 분노를 일으키는 여성과 대비되어 간접적이고 넌지시 부조리한 오늘의 삶의 형상을 조명하게 한다.

 

이렇듯 일면 무거운 사회 비평적 시각을 주제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의 재미에 압도당하는 이유는 희생자의 손녀인 여고생 미치카와 회장의 딸인 스기무라의 아내인 나호코, 그네들의 딸 모모코등이 어우러져 발산하는 연민과 가족애와 같은 따뜻한 온기 때문이고, 사내보 편집실의 여성 편집장인 소노다를 비롯한 직원들의 수식되지 않은 인간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세상물정에 어두울 것만 같은 어수룩한 인물인 사내보 편집직원인 스기무라의 탐정 아닌 탐정으로서의 역할 수행이 어떤 작위도 없이 사건의 중심으로 접근하게 되는 자연스런 이야기의 전개가 큰 몫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소설은 엄청난 감정의 기복이나 자극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우리 현대인들의 도덕적 무관심을 질타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타인의 감성을, 건강을, 생명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독성을 간직한 우리 사람들은 스스로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부(富)가, 나의 지위가, 나의 직업이, 나의 태도와 행동, 그 자체만으로도 독성이 발산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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