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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무릇 ‘문학이 사람에게 선사할 수 있는 총체는 이런 것이다.’라는 소설의 전형(典型)이라 말하고 싶다.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무지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의 오만성에 대한 따끔한 권언의 진중함이 작품 전체를 도도히 흐르는 가운데,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충돌과 화해와 적응의 지혜를 깨달아가는 노인의 연애 소설 읽기에서 사랑의 고통과 그것을 찾기 위한 분투, 그리고 글로부터 발견하는 앎에 대한 경외와 겸허의 이야기가 조우하며 인간과 삶과 자연의 본성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이 깊고 깊은 주제의 내면에 흐르는 이야기 또한 걸작이어서 권력이라는 기회주의적이고, 오만하며 무지와 위선으로 가득한 인물의 희화(戱畵)나, 양키로 대변되는 문명이란 자연에 대한 무분별과 몰이해의 표상은 조셉 콘래드의『암흑의 핵심』을 연상시키고, 자연의 순리에 무자비하게 개입하려다 야기된 살쾡이의 인간을 향한 도전과 노인과의 죽음을 건 대결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숭엄하다할 쟁투를 떠올리게 한다.
권력의 폭력을 피해 도착한 곳은 아마존 유역‘엘 이딜리오’라는 정글을 개간한 이주민의 작은 마을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우기와 범람하는 강에 고립되어 극도의 궁핍과 곤궁함으로 아내를 잃고,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우림지역의 원주민인 수아르족에 의해 도움을 받고 그들의 자연과 융화하여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체화한다. 의도하지 않은 원시부족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로 인하여 부득이 그들을 떠나게 된 볼리바르는 다시금 엘 이딜리오의 강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지만 거세게 침투해들어오는 문명은 노인이 된 볼리바르의 평온을 놔두지 않는다.
백인들의 자연에 대한 무지와 군림의 욕망은 인간들의 이 작은 마을에 일대 사건을 가져 오는데, 살쾡이의 어린 새끼를 포획했던 양키가 어미 살쾡이에게 보복을 당한 것이다. 양키의 죽음은 인간이 자연에 지켜야 하는 한계를 넘어선 교만에 대한 응징이다. 정글을, 자연의 질서를 가장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노인은 마을의 읍장(뚱보 읍장 - 권력의 기만과 위선에 대한 조롱)을 비롯한 탐색대의 일원을 안내하는 임무를 불가피하게 떠안게 된다. 문명이란 권력으로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 읍장의 정글 탐색의 행로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자연에 대한 그 완벽한 무지와 어리석음은 인간의 초라한 상상력, 그것의 빈약함만을 드러낼 뿐이다. 살쾡이의 연이은 인간의 살해와 마을로 좁혀오는 공격성에 읍장과 탐색대는 노인에게 대적을 맡기고 줄행랑을 친다.
아마 이 소설의 절정은 이것이 될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거대한 물고기와‘산티아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싸움처럼 노인 볼리바르와 2미터가 넘는 암살쾡이와의 정면대결 장면이다. 물론 산티아고는 패배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이라는 현대적 영웅을 말하고 있지만, 볼리바르와 살쾡이는 동등한 자연의 존재라는 공감이 선행된다. 인간과 정면 승부를 벌이려는 살쾡이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행위이며, 동물이 인간에게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의미를 깨우치려 한다는 의미에서 두 소설의 사투는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닌다. 그럼에도 두 싸움의 결과에서 우리는 문명에 따르는 정신적 공황에서의 해방,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겸허와 경외의 이해를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느끼게 된다. 즉 우리가 인생을, 삶을,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되는가에 대한 어떤 본질적인 전환을 생각게 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향한 인간들의 무수한 염원이 담긴 소설읽기로 소일하는 노인의 삶, 음절과 단어의 반복, 그리고 문장의 반복 읽기를 통해 읽어내는 소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상의 어려움을 실로 대변한다. 노인의 인생엔 존재하지 않았던, 어떠한 경험도 없는‘뜨거운 키스’, ‘수상도시 베네치아’와 같은 소설 속 언어들에서의 방황은 우리 인간의 속성, 본질을 그대로 말하는 것일 게다. 글을 읽는 다는 것은 새로움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알아감의 즐거움은 겸허와 겸손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 생태계 또한 결코 인간의 교활하고 오만함으로 군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 것이다. 반복해 읽을수록 의미가 더욱 풍부해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