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부하기 그지없는 구태의 물음을 하는 것은 우리가 현대라 부르는 오늘의 사회, 즉 근대의 민족국가가 비로소 성립함으로서 ‘정치’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되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최근 기득권 세력의 보수 행동대원인 모(某)의원이 한 소설가에게 그의 소설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고 시비를 걸었다는 기사는 이 글의 발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설가는 이런 시비가 바로 정치적이라며 반박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논쟁 장(場)이 소위 SNS라는 단문의 표피적 공간이다 보니 구구절절 무지한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미흡한 반박이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근대적 소설의 목적이란 독자들의 도덕적 상상력을 확대시켜 인간 욕망의 복잡성에 대하여 시민들이 좀 더 알게 되고, 그 자신과 국가에 더욱 적절한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설가들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도덕적 질서를 찾는 인간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혼돈을 그려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대국가 체제 속에서 인간 개인의 삶이 그 국가가 장치해 놓은 정치적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의 행동과 언어, 심리적 상태와 욕망, 이념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미 정치를 떠나서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엘리엇(T.S.Eliot)’은 “어떤 것이 문학인가 아닌가는 미학적 관점에서 결정되지만, 그것이 위대한 문학인가 아닌가는 비(非)미학적 관점에서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토마스 만’은 “인간의 운명은 정치적인 의미에서 결정되리라”고 하였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정치적으로 규정되는 것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공적인 충돌 속에서 겪은 개인적 경험이 소설의 주제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촘촘히 얽혀 있는 국가정치의 신경망이 현대인의 정신과 육체를 규율하고 통치한다. 따라서 개인들은 당해 국가정치가 표방하는 어떤 이념에 사로잡힌 한도 내에서 행동한다. 그러한 개인들이 자기 삶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부도덕성과 불평등을 호소하고, 불의와 부당성의 제거를 위해 고통과 혼돈을 말하는 것, 즉 정치적 표현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이처럼 지독한 무지와 독단이 어디에 있겠는가?

 

요즘 벌어지는 한국의 TV속 토론광경을 지켜보면 대립하는 양측이 사용하는 언어가 마치 다른 것처럼 보이곤 한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상호 소통이 불가능한 지경이라는 것이다.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자, 나의 이러한 감상은 정치적이라고 할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들이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의 규칙들, 경계들을 말하고 있으며, 그 불통에 대해 울화가 치밀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이들의 언어와 행동 밑에 깔린 동기는 개인의 동기 뿐 아니라 전체 사회와 국가, 문화의 동기들을 보여줌으로써 자기가 정당하다는 신념, 욕심의 충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곧 소설의 소재이고 소설이 말하는 것이다.

 

근자에 발표된 한국 소설들을 열거해 보자. 미군기지촌이 배경인 ‘정한아’의 『리틀 시카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그린 ‘강병융’의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 가난의 상속자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류사회의 양가적 행동을 묘사한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물질과 과시와 폭력의 도시에서 신음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인 ‘김사과’의 『테러의 시』, 타자에 무관심한 현대사회의 수많은 장치들의 혐오스런 작용을 고민케 하는 ‘구병모’의 『고의는 아니지만』, 한국사회 자본가들의 왜곡된 형성을 쓴‘황석영’의 『강남몽』, 소위 대선정국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주의의 파행을 그린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등등, 이들 소설은 모두 정치적이지 않은가? 정치를 떠난 개인의 삶을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대 민족국가의 성립 이래 정치를 개인의 삶과 분리하여 생각 할 수 없게 된 연유에 있다.

 

성적 욕망도, 물질에 대한 소비의 욕구도, 지위에 대한 야망도, 권력의 탐욕도, 친구와의 우정도, 연인과의 사랑도, 어린아이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도, 노인의 쓸쓸한 고독도 모두 정치적이다. 정치라는 삶의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미세한 변화에 민감한 예술가는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의 작품은 곧 정치적이다. 시민들, 민족의 촉각인 이들에게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건 부당함과 비정함, 불의와 폭력이란 암흑세계에서 쥐죽은 듯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소설은 인간 개인들의 비도덕적 상황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소설이 이것을 쓰지 않는다면, 인간의 얘기를 쓰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써야 한다는 것일까? 현대의 소설은 그래서 정치적인 것이다.

                           

[참고도서]

1.‘폴 돌란’의 『정치와 소설 ; Fiction and Politics in the modern world』

2. '구스타프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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