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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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선 영원히 묻고 답하여야만 되는 문제일 것이다. 사적 자유와 공적 통제, 개인의 이익과 공적 질서의 대립, 가족연대와 공공선의 갈등 말이다. 형제자매와 부모와 자식이라는 혈연으로 묶인 가족 공동체와 사회라는 공동체를 위한 질서의 수호는 서로 도덕과 정의, 사랑과 유대라는 덕목의 치열한 교전을 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내 부모를, 내 자식을, 내 형제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정의도, 도덕성도, 법과 질서도, 그 어떠한 위협과 권력의 압력에도 대항하려 한다. 그러나...그들의 부모와 자식과 형제에 의해 회복할 수 없는 상처와 생명까지 잃어야 했던 사람들의 호소에 반한다.

 

사실 이 물음은 사회학, 도덕 철학 등은 물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학 작품들이 반복해온 주제이다. 그럼에도 이 질문의 영역에 빠지게 된 사람들이 다시금 물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어쩜 사람의 이성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층위(層位)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할런 코벤’은 이것을 다시 묻고 다시 썼다. 그래서 인간이 회피 할 수 없는 본원적 욕망에 고통스러운 연민의 실체들을 투영하면서‘사랑의 연대(連帶)’는 우리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대처가 아니냐고. 아마 이것조차 우리들이 인정 할 수 없다면 삶이 어떻게 지탱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 같다.

 

이야기는 참혹하게 살해된 사체로 발견된 두 명의 아이를 비롯한 20 년 전 여름 캠프 숲속에서 사라져버린 아이들의 사건을 축으로 하여, 공적 질서 수호자로서의 상징적 인물인,‘폴 코플랜드’ 카운티 검사의 혐오스러운 사적 이익과의 첨예한 갈등을 대척점에 놓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매춘부 여성에 성폭력을 가한 두 명의 청년을 심판하는 검사 코플랜드와 자식들을 유죄 판결에서 구해내려는 부모들의 무자비할 정도의 저항은 소설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 줄기인 네 명의 아이들을 삼켜버린 숲 속 사건이 현재화 되어 코플랜드의 앞에 나타남으로써 그의 행보를 과거의 아픔으로 이끈다. 살해된 것으로 알았던 실종자중의 한 명이 20년 전에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었으며, 이제는 또 누군가에 의해 피살되어 시체(屍體)공시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사체를 확인하기 위해 출두한 노부부는 자신들의 자식임을 부정하고, 동일인임을 확신하는 코플랜드는 당시 사체를 찾지 못했던 그들과 같이 사라져 버린 자신의 동생 ‘카밀’의 생존가능성과 함께 사건의 이면에 잠자고 있는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공적 대리인인 검사 코플랜드는 사건 인물들과 가족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개인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즉 사적 유대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소설이 묻고, 답하고자 하는 물음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공공의 선을 위해 어느 누구보다 질서에 복종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이 과연 가족이라는 사적 관계를 외면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탐색토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동생 카밀의 실종 이후 삽을 들고 숲으로 들어가 땅을 파헤치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기억과 함께, 아내의 죽음 이후 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 횡령으로 피소된 남편의 구제를 호소하는 처제의 위증 부탁 장면으로 극화된다. 그는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까...

 

한편, 이 소설이 책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교하게 짜여 사유를 요구하는 이 같은 주제라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배후에 대한 베일에 가려진 진실에 대한 점진적인 접근의 지속적인 기대라 할 수 있다. 결국 점진적인 드러냄에서 사라져버렸던 아이들과 그네들 부모의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이기심과 부도덕성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스릴러 고유의 신경중추를 지속적으로 흥분시키는 재미는 주제적 물음으로 회귀한다. 바로 급격히 상승하는 이야기의 속도와 함께 진전되는 내용과 형식미가 주제적 의미와 물 흐르듯이 연결되어 절로 곤혹스러웠던 우리네들의 질문에 답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무사히 그 숲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코플랜드가 하는 이 상징적 독백은 실로 모든 것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아마 우리 사람들은 이 연대의 숲, 추악의 숲, 욕망의 숲, 증오의 숲인 세상을 영원히 심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에 포획된 채...그것이 사람의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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