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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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자연의 깊숙한 곳, 밀림 속 미지의 어둠, 문명이란 인간의 백치 같은 탐욕이 미치지 않은 곳, 그곳에 퍼부어지는 포탄 세례는 정말이지 광기이고 애처로운 익살이며, 터무니없는 공포일 것이다. 이것은 알 수 없는 무엇에 대한 탐색의 열망을 실천하는 인간들에게 칭송의 시선을 보내는 인간의 오랜 심리적 동인의 본질과 연결되는 무엇일 것이다. 암흑의 진실에 근접하려는 인간의 욕망, 그것에서는 왠지모를 죽음의 색깔과 또 인간 필멸(必滅)의 냄새가 감돌지 아니하는가?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오지(奧地), 그 암흑의 심연에 대한 탐험의 매혹적 갈망에는 이미 오만이 가득하다. 문명이라는 서구 백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텅 빈 공간, 임자 없는 공간, 누군가에 의해 이해되어야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 말이다. ‘말로’라는 인물이 곧 이러한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이다. 콩고 원시 밀림의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오지 운반선 선장으로 부임한다. 그곳에는 다른 어떤 곳을 합친 것보다 많은 상아를 모아 보내는‘커츠’라는 경외의 인물이 있다. “식물과 물과 정적(靜寂)으로 구성된 기이한 숲의 세계”, 그 압도적인 암흑의 실체에 완전히 동화되어 어둠 같은 존재가 되어 그 세계를 지배하고 군림하는 신화 속 인물이 된 인간.

 

소설은 낡은 운반선에 의탁해 말로라는 인물이 커츠라는 그들 세계의 영웅을 찾아가는 여정과 그와의 짧은 만남, 그의 죽음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삶의 기만과 암흑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의 정신세계를 들려준다. 문명의 공간에서 벗어나 암흑의 공간 깊숙이 들어가 궁극적인 인간의 열망, 자기의 본원을 찾으려는 응전의 세계가 비의(秘儀)의 주술처럼 흐른다. 그러나 그 실체, 사실이란 “금고를 터는 도둑놈에서처럼 도덕적 목표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체 썩는 냄새 확 풍기는 그런 욕망일 뿐이다.

 

커츠를 향해가는 여정에서 백인들이 원주민들과 그들의 땅에 가하는 무지한 폭력의 장면들에 대해 말하는 말로의 시선은 마치 서구의 제국주의적 파렴치와 무례를 혐오하고 비난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단지 행위의 잔혹성과 무지에 대한 얕은 연민 이상으로 해독하기에는 저항을 일으킨다. 즉 아무런 방어의 의지도 없는 검은 인간들에 대한 약탈자의 야만성에 대한 본질적 반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원주민들을 적이니 죄인이니, 일꾼이니 하는 우습기조차한 규정에 대해 반감을 표시한다거나, 커츠의 움막주위에 걸린 원주민들의 잘린 머리들에 명명된‘반항자’라는 터무니없는 표현의 고발에서 구태여 서구의 제국주의적 쾌락에 대한 본원적 회의와 자성(自省)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말로라는 인물을 통해 탐색되는 서구 백인의 자신들 외에 대한 시각의 통찰은 비범한 곳이 있다. 즉 타자에 대한 사물화를 인식하는 점이다. 그 예는 자신을 도와 키잡이를 하던 검은 인간이 창에 맞아 죽은 후에 하는 자기중심적 연민의 발설에서 발견 할 수 있다.

키잡이 검둥이가 죽자 “일종의 유대관계가” 비로소 생겨나났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의 죽음으로써 “관계가 갑자기 깨지자 비로소 나는 그런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거야.”라는 말처럼 검은 인간이 도구적 수단, 이용물에 불과했으나 다소의 감정적 공감의 대상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아마 물화(物化)에 대한 문학상 최초의 인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감정 유대, 공감이 상실되고 단지 이익의 거래 대상으로 변질된 타자에 대한 오늘의 인식은 이처럼 영토주의적 탐욕이 은폐된 것이 아닐까하는 이해 말이다.

 

이러한 타자, 자기외의 대상에 대한 무관심이 빚어내는 냉혹성, 자기애의 열중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곧 커츠란 인물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우월한 문명적 도구로 원주민을 제압하고 어두운 밀림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인물의 죽음에 이르러 나타난 표정은 바로 암흑의 핵심, 그처럼 도달하려 했던 삶의 열망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항거의 어조, 진실의 끔찍한 표정”, “열망과 증오가 기이하게 뒤섞여”, “고통으로 가득하고 만물의 덧없음이나 심지어는 고통 자체의 덧없음에 대한 무관심한 경멸로 가득한 형상 없는 회색 비전”이 그것이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며 나지막이 외치는 “무서워라!”라는 한마디는 완벽하게 압축된 지혜와 진실인 것이다. 커츠의 이 말이야말로 암흑의 문턱에서 서성대던 말로라는 인물에게 삶의 구원을 허용한 진실의 언어였을 것이다. 오지와 텅 빈 공간에 대한 오만, 타자에 대한 물화, 이들 탐욕의 열망을 정의하는 한마디, 암흑의 핵심, 어둠의 심연에 대한 진실의 소리.

 

- 蛇足

사실 이 소설을 많은 비평가들은 정치적 주제로 해석하고, 서구 제국주의의 비판적 문장으로 독해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하나의 거대한 은유, 즉 인간의 삶에 대한 본원적 욕망의 탐색에 집중하면 그렇게 초라한 주제적 논의를 탈피 할 수 있을 것 같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백경)』의 선장 ‘에이허브’는 ‘커츠’와, 수부‘이시마엘’을 ‘말로’로 대입하면 죽음과 구원의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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