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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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행위와 의사(意思)가 이야기다. 물론 이야기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사가 되는 것도 아니요, 더구나 소설이라는 텍스트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아마 작가는‘이야기는 모두 소설이다.’ 라는 명제를 주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한 명의 독자만 있더라도 작가일 수 있다는 다소 감상적인 의미를 끼워 넣으면서.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스토리인가? 아니면 소설인가? 라는 경계를 오간다. 과연 소설일까? 즉‘문학’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서구 자연주의를 왜곡하여 받아들여 작가 자신의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사소설이 일본문학의 하나의 주류가 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 같다. 타인의 일상사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그러하다보니 그저 스토리를 가지면 소설문학이 된다는 인식에 공감하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이다. 그저 등장인물들의 시시콜콜하고 지극히 사적인 일상의 단편이요, 혹은 작가 내심의 반영, 이야기 작법의 다른 표현이란 느낌이다.

 

이야기는 두 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연작(連作) 이야기다. 제목도 ‘side A’, ‘Side B’로 되어 각자의 상황적 측면에서 바라본 이야기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상황이란 아내의 죽음과 남편의 죽음이란 지극히 예상 가능한 사이드(Side)이다.

사이드 A는 사고(思考)를 하면 뇌의 수명이 단축되어 죽음에 이른다는 가상의 치명적 질병을 앓고 있는 아내에 대한 남자의 애틋한 연민을 그리고 있고, 사이드 B는 교통사고와 말기 췌장암에 걸린 남편에 대한 죽음의 이별이 만들어내는 탄식과 애절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여자는 모두 전업 작가이다. 굳이 이 이야기에 마음을 붙이려면 작가, 즉 쓴다는 행위와 읽는 행위의 관계에 대한 어떤 성스러움에 대한 진실일 것이다.

 

아내가 이 이상한 죽음의 병에 걸린 이유가 그녀의 가족들이 보이는 평온의 이면에 은폐된 이기심과 무관심, 무책임성이고, 타인의 성취에 보이는 치졸함의 폭력성이다. 여기에 여자의 작가적 역량을 무참히 짓밟았던 사람들의 정체성을 폭로하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케하는 남자의 헌신과 격려로 사랑의 얘기를 덧댄다. 그런데 대단히 실용적이어서 자신에게 극진했던, 작가로서 날 수 있도록 도와준 남편을 위해 저작권 등의 권리를 유산으로 남기는 마지막 대목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허구적 즐거움을 일거에 날려버린다. 사랑이란 결국 물질적 보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첫 번째 이야기에 비해 그 완성도가 더욱 취약하다.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의기양양하게 뽐내는 것인데, 한 이야기에서 여자를 죽였으니 이번엔 남자를 죽이면 그것은 또 어떤 반응일까하는 지극히 속물적 겨냥을 하고 있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선망했던 한 남자와 우연히 마주친 어느 날, 그 남자의 품에 자신이 쓴 소설책이 있고 더구나 그 감동으로 눈가가 젖어있다면, 그리고 절판된 옛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마저도 기억하고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서도 역시 여자는 Side A의 여자와 같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다.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인 여자의 집필을 위해 삶의 리듬과 행동을 헌신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마 그러 할 것이다. 작가와 사랑하고 결혼한 남자, 그리고 그러한 남자의 헌신적 배려와 사랑이 고마운 작가인 여자의 이야기. 그런데 참으로 진부한 스토리 아닌가? 게다가 이러한 배우자가 불치병으로 죽음에 직면해 있다면, 그 이별만큼 인간을 간절하게 하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면 어떠했을까? 흔한 사랑과 이별의 애달픈 이야기에 어떤 관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단지 작가와 독자의 관계성에 대한 ‘아리카와 히로’의 분신, 그 생각을 엿본다는 것 이외에 말이다. 독자와 작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말고..., 러브 스토리를 그저 경쾌하게 즐기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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