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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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상징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에 대해서 아주 다른 인식을 갖는다. ‘영혼’이 무얼 의미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육신과는 다른 본질적인 정신세계? 의식을 형성케 하는 근원적 장치? 알 수 없다. 타인의 언어와 소통한다는 것은 이처럼 하나의 단어에서조차 수월치 않은 일이다. 두 개의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의 첫째 작품인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그래서 내겐 선명치 않은 흐릿함으로 다가온다.

 

머리카락을 잘라줌으로써 ‘영혼’이란 것을 어루만져준다는‘류’라는 여성의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좀처럼 수용되지 않는 것이다. ‘플레이(Play)’라는 생활 속의 연극에 참가하여 스스로 완결하지 못하는 삶의 결여의 틈새를 부분적으로 충족시켜줌으로서 생의 지탱력을 부여해준다는 뮤토(Muto; 변화, 변하는 존재라는 라틴어)역할, 즉 치유자의 기능에 끝내 동화하지 못했다는 것이 내 심경이다. 타인의 삶에 뛰어들 때마다 하는 말이 바로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이라는 외침인데, 왠지 자기학대 같은 쓸쓸한 연민만 자아낸다.

 

다만, 읽어가는 동안 몇 개의 작품 이미지들이 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첫째는 7년간의 플레이를 멈추고 류가 찾아간 자기만의 새로운 시간, 즉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출발의 시공간처럼 여겨지는 일본의 어느 한적한 마을이 ‘파스칼 키냐르’의 『빌라 아말리아』의 ‘안 이덴’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는 결연히 그곳으로 달려간다. 내게 결여된 그곳에서 내가 헤매고 싶어지는 느낌”, 바로 이런 시원적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곤 청년 ‘카레’의 식당과 어린 아들과 여행 가방을 끌고 인적 없는 기차역(驛)을 거니는 여인 ‘리에’로부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속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들을 이끌고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삶의 완성된 사건으로 스며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인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플레이를 하는 뮤토로서의 경험을 통해 타인들의 미완성, 결여의 치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결코 그 결핍의 틈새가 완결되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과 좌절, 돌이킬 수 없는 절망임을 이야기한다. 아마 생의 절대적 완성, 실체의 세계에서 어떤 절대성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해된다. 환상으로만 완결되는 공허함이라는 말일까? “마법, 기적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작가의 선언처럼 삶의 신비를 말하는 언어가 내 감성과는 꽤나 다르다.

 

「천사의 가루」라는 두 번째 수록 작품은 첫 작품과는 달리 실체적이다. 비현실적 인물들로 보이던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실감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치과 의사인 남자‘요요’와 ‘라라’라는 여성의 필연으로서의 만남과 사랑이야기가 이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이해와 연민이 제각기의 목소리로 들려지고 있다. 세상에 환생을 믿는 이들이 65퍼센트가 된다는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윤회(輪廻)에 대한 믿음이 저변을 흐른다.

 

찰나(刹那)에 불과한 순간에 여자와 남자는 자신들의 모든 것이 그(그녀)에게 향하고 있음을 거부하기 힘든 마력에 빠져든다. 전생의 연(緣)이 이생에서 비로소 마주했다는 것인가? 남자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오지 않을 남자의 마중을 위해 공항 대기실을 찾는 여자. 그런 여자의 절대적 사랑을 바라보기만 하는 또 다른 남자, 이런 남자의 행위자체를 온전히 보듬는 또 다른 여자, 그리고 그 사랑들을 이해하는 또 다른 사람들에서 생과 사의 끈적한 순환을 마주하게 된다.

 

만남과 이별, 출발과 도착의 공간인 역사와 공항이란 공간이 자아내는 얕고 야릇한 설렘과 통증이 있다. 우리 고독한 짐승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무수한 장애와 번민을 쓰다듬는 치유의 언어와 문장들이 아름답게 구성된 이야기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질적인 언어의 상징들이 소통을 불편하게 하여 소설을 온전히 읽는 것을 방해한다. 영혼과 신비의 환상에 공감하는 이들, 그들을 위한 삶의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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