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여행법 - 소설을 사랑하기에 그곳으로 떠나다
함정임 글.사진 / 예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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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의 의미인‘여행’하는 방법에 대한 책일까? 아닐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 소설 속 무대인 도시의 거리와 풍경이란 특정 장소로 이동하고 그 감상을 말하고 있으니 여행기이다. 그러나 소설들을 읽고 그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들의 영혼이 배어있을 공간을 시간을 초월하여 음미하고 그 감각을 깨워내는 작업이기에 단순히 여행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책의 제목을 해석하려 할수록 그 제목이 지닌 의미에 수긍을 하게 된다. 소설가(小說家)만이 하는 여행, 지극히 문학적(예술적) 행보라는 얘기다. 그래서 수십 편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함정임’의 소설 여행 담론은 허구의 소설 작품을 현실의 공간, 바로 지금 여기라는 실체감으로 끌어오는 살아있는 서평이 되어 죽은 문장들에 숨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그렇다. 이 책은 소설가의 애정이 곳곳에서 숨 쉬는 서평모음이다. 그 애정들이 우리들의 것과 아주 닮은 것이 많아서 그녀의 소설 사랑에 동화되어 버린다. 30여 편의 소설과 작가들의 작품을 축으로 하여 다양한 관계성에 얽힌 작품들의 비교문학적 소개로 거의 10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의 맛깔스런 감상을 더불어 맛볼 수가 있다. 일례로 천명관의 작품을 얘기할 때에는 김영하와 김애란의 작품이 같이 등장하고, 애드거 앨런 포를 말할 때는 보들레르와 플로베르가 얘기되며, 헤밍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코리네 호프만과 카렌 블릭센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그녀의 감상들은 하나의 작품에서 여럿의 작품으로 확장되어 풍부한 이야기 거리들을 쏟아내고, 소설이 단순히 문학 작품의 의미 이상의 어떤 충일함으로 가득차서 다가오게 한다.


특히 이 책에 새로운 규정을 가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소설의 공간적 무대를 같이 거닐며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혹은 작가의 분신이 되어 그 이미지가 체화된 상태에서 서평을 쓴다는 의미에서 장소적 공간의 어떤 정서적 내면화로 인한 애정이랄 수 있는‘토포필리아(topophilia)적 서평’이란 지위를 부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장소적 애정에만 머무는 것이라면 여행기에 불과하겠지만 문학이 있고, 삶의 철학과 인문학적 식견이 같이 넘실댄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서평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영국, 프랑스, 터키, 그리스, 아일랜드, 미국, 페루, 아프리카 등 소설 속 무대가 된 지역을 모두 돌아다니며 읽고 쓴다는 것이 사치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책은 뉴요커인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의 첫 대목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젠가 맞이할 멋진 죽음의 장소, 그리고 자아 찾기라는 인간의 성찰을 얘기하면서 저자의 여행 변과 교묘히 쌍을 이루며 작품과 도시의 얘기를 풀어간다. 그리곤 허먼 벨빌이 그려낸 독특한 인물인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 소설은 인간의 조건을 묻는 것, 즉 인간학으로서의 소설론을 전개하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과 작품이 소개되고 있지만 내 눈을 유혹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내가 읽고 감동을 받았거나 공감을 했던 작품들, 혹은 그 작가의 문장이나 글쓰기를 흠모하게 된 작가들의 얘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카뮈가 그렇고 키냐르와 칼비노가 그렇다. 그 중에서도 ‘파스칼 키냐르’는 삶에 대한 내 의식과 가장 깊게 공명하는 작가인데, 그의 출생지인‘르 아브르’의 예술적 혼이 깃든 야외의 풍광과 삶의 궤적이 작품, 《옛날에 대하여》의 문장들과 조응하여 다시금‘아연실색’의 기운에 침잠하게도 한다.


또한 카뮈의 산문인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대한 저자의 감상은 그의 마지막 삶의 고장이었던‘루르마랭’과 묘지 곁에 놓고 온 명함의 인연이 어우러져 애틋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그것은 나에게 잔뜩 쌓여 어딘가 놓여있을 그의‘결혼’에 관한 산문집을 찾아내는 수고를 하게하고, 어렵사리 헤집어 마치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듯 흐뭇한 기분에 빠져들게도 한다. 그런가하면 시각적, 일상적 환상으로 환상을 구분했던 칼비노를 통해 네르발과 모파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도 하고, 바로 그 환상이란 “잡히지 않는 것,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언어로 표현해 하나의 질을 내고, 형상을 창조해 내는 것”으로서의 소설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한편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시작하여 페루의 작가 바르가스 요사로 이어지고 요사의 관능이 넘치는 문학은 뒤라스와 에르노의 열정과 에로티시즘에 가닿는다. 장소에서 정서(情緖)로, 그리고 정서의 심연으로 깊이를 더해가며 삶 속으로 파고드는 저자의 소설 이야기는 그렇게 묘한 그리움과 생명력으로 우리의 가슴에 “자국을 남기며 공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나면 책 속에 서술된 작가들과 작품들을 정리하고 읽어야 할 작품 목록에 기입하느라고 분주해진다. 이처럼 이 책은 문학작품을 다양한 층위에서 읽을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도 하고, 독자 자신의 감상과 비교하면서 비판과 새로운 관점을 더하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의 삶과 그 형식의 탐구가 바로 소설이라는 저자의 정의처럼 문학작품들, 소설들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된다. 그러고 보니 마치 소설 예찬(?)론 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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