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대개 역사적으로 민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소를 오늘날 발견하기란 수월치 않은 일이다. 참지 못하고 흔적을 아예 지워버리는 일을 선택하곤 하기 때문인데, “공간들이란 희미하게나마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의 흔적을 간직”한다는 경외의 발로일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기억이 모티브가 되어 한 여인의 의식을 완벽하게 허물어뜨리는 여정을 쫓는 것이 이 소설이다. 아마 이 작업이 후일 유태인 처형에 동조한‘벨디브(유태인 강제수용 벨로드롬 경기장) 사건’을 소재로 한 『사라의 열쇠』 집필로 연결되었던 모양이다. “돌이 인간의 불행을 빨아들이고”, “벽이 고통을 느낀다고 믿었던” 것처럼 특정 공간을 만들어내는 벽, 집, 건물 등에 스며들어 있는 과거 사람들의 감정을 예민하게 불러내고 그 고통을 위로하려는 의지의 투영이었을 것이다.

 

마흔 살의 이혼녀,‘파스칼린 말롱’은 새 출발을 다짐하며 자기만의 거주공간을 마련한다. 첫 눈에 자신의 이러한 상황과 기분에 걸 맞는 집의 입주는 부푼 기대와 충일한 만족감으로 가득하게 한다. 그러나 이사하는 날, 현기증과 구토 증세, 오한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사무실에 출근하면 이 증세는 말끔히 사라진다. 왠지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만 한데, 이 집에서 일곱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 사건의 첫 번째 여성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죽고 있으며, 그 장소의 예외가 어디 있겠느냐고 자위하지만 구토와 어지럼증, 악몽은 점점 심화되기만 한다.

 

“어떤 장소에서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 이 낯설고 거북한 기운, 그녀는 사건의 기록을 검색하곤 피살자가 열여덟 앳된 여성임을 알게 되고, 나머지 여섯 명의 연쇄살인 희생자가 된 여성들 또한 열다섯, 열일곱의 어린 여자들이었음에 살인자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 피살자들에 대한 연민이란 양가적 감정에 시달린다. 죽은 이들의 피살 현장을 한 곳씩 찾아 장미 한 송이에 애틋함을 담아 두고 오는 발길을 반복한다. 그 공간들에 그네들의 응어리진 고통이 숨 쉬고 있다는 믿음으로.

이 괴이한 장소에 대한 연민의 집착은 그녀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데, 회사에 손실을 가하는 결정적인 업무실수의 반복으로 나타나고, 소개받은 남자와의 섹스는 그의 목을 졸라댐으로써 피폐화되어가는 정신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이것은 자신의 죽은 아이, ‘엘레나’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여인으로서의 고통스런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서 피살된 일곱 명의 여성들에 투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후 육개월 만에 죽어간 아이에 대한 애통함은 이혼의 상처로 더 깊숙한 의식에 자리하고, 전 남편의 새로운 여자의 불룩한 배는 절망의 극한으로 치달아 정신착란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깊은 상실감에 허우적거릴 때 위로 받기는커녕 무관심과 배신이 돌아오고, 공간에 스민 영혼의 교감이란 비의적 감수성을 지닌 여인으로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정신의 무게이다. 마침내 이 착란적 고통을 해결하려는 듯이 달려가는 장소는 섬뜩하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녀가 찾아간 그 장소적 공간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공간적 장소가 간직하고 있는 감정과 기억들이란 모티브는 자연스레 인간의 정신, 그 내적 심리의 반영으로 연결된다. 내 손길과 시선이 익숙하게 묻어있는 가구들, 그리고 내 몸처럼 안락한 느낌을 주는 나의 집처럼, 사랑의 기억과 같이 떠오르는 마로니에 공원과 가로수가 있던 붉은 벽돌의 카페처럼, 담과 벽들, 집과 건물들은 어떤 감정의 흔적들을 분명 담고 있다. 아니 내 내면의 정신작용이 그 감정의 흔적들을 입히고 불러내는 것일지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정서와 치밀한 심리적 묘사를 담아 슬픔과 그리움, 원망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매료되게 하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도 소름끼치는 착란의 세계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침한데 아름답고, 불안한데 명쾌한 낯선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