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항구 매그레 시리즈 16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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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농의 ‘매그레 시리즈’중 작은 항구도시인‘지베’를 배경으로 한 <플랑드르인의 집>에 이어 우연히도 짙은 안개에 싸인 소도시‘위스트르앙’항구로 이어졌는데, 왠지 무표정한 피로가 묻어난 듯한 느낌, 만남과 이별조차 무심해야 할 것만 같은 절제되고 동떨어진 무엇에 이끌렸기 때문일까?
치열함을 비켜간 정적 분위기에 대한 나의 기대는 옳았다. 감정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작품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말이나 행동, 내면의 요란함이 없는‘매그레’란 인물이 그래서 더욱 마음에 닿는다.

작중 인물들 역시 장황하거나 번잡스러움 없이 정제되어있어 거추장스러운 너절함 없이 깔끔하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관찰, 인간 개성에 대한 탐사는 이 시리즈의 일관된 지향점을 확인하게 한다. 사건 추리의 트릭이나 논리추구와 같은 기교적 재미가 아니라 사건의 내재적 본성을 이루는 사람들의 면모에 애정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과 악이라는 극명한 인위적 잣대로 단정하는 오만의 짜증남이 없기에 평온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머리에는 총상을 치료하고 꿰맨 상처를 지닌 채 파리 한복판을 방황하는 중년의 남자가 발견된다. 프랑스북부 인구 1천명 남짓의 자그마한 항구도시‘위스트르앙’의 실종된 항만관리소장으로 신분이 확인되고, 매그레는 기억과 언어능력을 상실한 남자를 위스트르앙 그의 거처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다음날 독살된 주검으로 발견된다. 스토리는 이와 같이‘조리스’라는 남자의 머리에 난 상처와 독살의 의문을 쫓는 일면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특징은 단선적으로 용의자를 추적하는 데 있지 않다. 항구 도시의 구성원인 마을 인물들, 그 개인들, 인간들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 그 본성을 쫓기에 풍성한 무엇이 된다.

죽은 자의 계좌에 입금된 거금이나, 전과자인 하녀의 오라비, 토끼 사냥을 다니는 시장, 갑문을 관리하는 항만관리소의 동료선장 등 사건의 복선처럼 작용하는 조치들이 형식미를 더하고는 있지만 이는 역으로 이 소설이 추구하는 인간탐사의 하부구조로 작동할 뿐이다. 많은 선박의 소유주로서 권세를 과시하는 몸짓이 밴 작은 마을의 시장, 그리고 친절함에도 정숙한 위엄이 묻어나는 시장의 아내, 손상되지 않은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하녀의 순박함, 선원들의 투박함과 자신들만의 무언의 집단의식과 동료애, 경계를 세우는 이러한 집단의 세계에 다가가는 열린 마음과 그 뒤섞임의 의미 등 인간사와 인간개체에 대한 응시가 매력적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는데, 지배적 질서이자 사회의 엄격한 규범을 획일적인 잣대로 들이대지 않는 매그레의 관점이다. 사건의 발단이자 원인이 된 진실로 접근함에 따라 여동생과 오빠의, 잃어버린 연인과 그 결실에 대한 떼어놓을 수 없는 천륜지정, 그리고 이를 막아서는 소유욕과 질투의 덧없음, 끈끈하게 얽힌 동료의식 등 인간이 최후까지 지켜내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전체를 장악한다.

“살인범을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묵은 원한이 있다고 해둡시다! 외지에서 온 뱃사람이 선장을 죽이고 사라졌다고....”

타인들의 치정다툼에 터무니없이 희생된 주검에 대해서 다분히 비도덕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지만 산 자들의 평화와 사랑을 위한 정의라는 측면에서 이런 이해와 관용은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김 서린 기차 창문을 통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원들과 항구를 바라보는 수사관의 시선처럼 인간사란 그리 선명하게 재단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게다. 온 사위가 적막한 어느 산막의 눈 내리는 겨울날 읽기에 그만인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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