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둘레길 여행 바이블 - 지친 일상을 쾌적하게 바꾸는 참살이 여행
이상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사방 고층빌딩과 수많은 사람들, 차량들이 만들어내는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이질적인 소음에 시달리고, 꽉 짜여 무력감을 야기하는 단조로운 일상의 지루함과 피곤에 쪄들어 있는 나를 느낄 때면 어딘가를 무작정 걷고 싶은 충동으로 헐떡이곤 한다. 메마른 아스팔트와 시멘트길이나 인공적인 장소가 아닌 그 어떤 곳, 마냥 홀로 걷다가 사위를 둘러보고 또는 가던 길 멈추고 나무나 바위에 앉아 무념의 여유를 자연과 호흡하고 싶은 그런 욕구에 시달리곤 한다.
그렇다고 인파가 즐비한 유명한 산이나 계곡, 관광지를 찾아 나설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어딘가를 올라 세상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며 호연지기 같은 걸 느끼고픈 허영도 없으니 마땅히 이 모호한 심사를 받아 줄 장소가 흔쾌히 그려지지 않곤 했다.

이런 내게 사는 곳 가까이에 언제라도 다가가 내 몸과 정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도보 길을 안내해 주는 이 책은 마치 내 마음 속의 간절한 정화의 욕망을 알기라도 한 듯한, 좀 과장하자면 성스런 경전과도 같은 고마움이라 할 수 있다. 그저 작은 준비로 배낭 하나 둘러메고 가볍게 향할 수 있는 자연과 어우러진 길, 도심에서 수 십 미터만 벗어나도 자연 속에 있는 듯한 길, 구태여 산 정상과 같은 목표를 가질 필요가 없는 길, 그저 무념무상 터벅터벅 내 발걸음과 흙이 마찰하는 소리만을 들리는 그런 길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었으니 그리 과장이랄 것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초행길일 밖에 없는 내게 소개되는 서울과 수도권에 개설된 수십의 둘레길, 게다가 둘레길 마다 저마다 고유의 특색을 지닌 코스들에 접근할 수 있는 진입 경로로부터, 둘레길 내비게이션이랄 만큼 혹여 경로에 잘 못 들어설까 꼼꼼하고 상세하게 기술된 안내는 길눈 어두운 나 같은 이에게는 진정 완벽한 트레킹 지침서가 아닐 수 없다. 열 세 개의 코스로 이뤄진 남양주 소재 다산길이나, 무려 스물한 개 코스로 구성된 북한산 둘레길처럼 각 둘레길마다 너 댓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비교적 평지인 곳, 약간의 구릉이 있는 곳, 강변길이 이어진 곳, 사찰과 유적 등 역사와 이야기가 흐르는 곳, 숲과 호수와 계곡이 있는 곳 등 둘레길마다 고유의 성격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 내 감정의 느낌에 따른 선택이 가능토록 설명되어 있다는 것도 아주 유용한 정보라 할 수 있다.

지속적인 체력단련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겐 둘레길의 코스별 거리나 소요시간, 요구되는 걷기의 난이도는 매우 중요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가볍게 운동화신고 별다른 의복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등산화나 트레킹 전문화가 요구된다거나 스틱, 여벌의 옷 등이 필요하게 되면 난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개되고 있는 일백여 남짓한 코스마다 별 한개 두 개 등 난이도의 표시와 코스의 고저 등 중요한 특징, 정확한 코스연장과 음료나 휴식처 유무는 내 자신의 능력에 기초한 선택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내 성향과 체질에 맞게 느껴지는, 호감이 가는 몇 개의 둘레길 코스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난이도에 별 세 개가 표시된 북한산 둘레길 제14구간인‘산너미길’은 왠지 체력적 자신감이 붙고 나면 찾아야지 하고 미루게 되고, 북한산 생태 숲이 있는 별 하나짜리 4구간‘솔샘길’은 마음에 새기게 된다.

특히 북악산 툴레길은 방송매체에서도 수차례 소개되었음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건만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백사실계곡을 지나 홍치문으로 이어지는 2코스는 인상적인 자연의 풍광과 미술관, 이국적 카페까지 어울려 하시라도 달려가고픈 심정으로 유혹한다. 또한 다산 정약용선생의 유적지에 이르는 다산실 2코스의 폐철로와 연꽃마을로 이어지는 여정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경기도 시흥 늠내길 제4코스인 옛길은 여우고개, 소래산 마애상, 청룡약수터와 어울려 각각에 서린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려 올 것만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외에도 군포의 진산이라는 수리산 자락에 펼쳐진 일명 바람고개길(수릿길)이나 화성시에 있는 융건릉둘레길의 솔숲은 마냥 낭만적인 정취로 유혹해댄다. 예술의 향기를 느끼고 싶을 때, 자연 속에서 한껏 고독의 멋을 부리고 싶을 때, 옛 선현들의 그윽한 향취에 물들고 싶을 때, 그저 자연의 숲과 강이 발산하는 순수함에 깃들고 싶을 때, 그러한 다종의 느낌에 따라 내가 하시라도 내 딛을 수 있는 길들이 나를 위한 길처럼 손짓하고 있다는 매혹에 젖어든다.

이제 내겐 나를 해소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변명의 구실이 사라졌다. 언제라도 마냥 걸으며 자연의 신비로운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었던 욕망의 길이 내게 펼쳐졌으니 말이다. 그저 갇혀있어 막혀있던 내 숨통이 그야말로 탁 트일 것만 같다. 아마 이 책은 내 배낭에 담겨 의기소침하고 표정을 빼앗아 갈 때면 나를 위한 위로와 충전의 길을 동행할 것 같다. 절로 마음이 상쾌해지고 의욕이 솟는 어떤 즐거움이 몰려온다. 겸손함으로 시작하는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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