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차일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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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우린 얼마나 공감하는 것일까? 그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삶의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필요한 견고한 연대를 위한 진정의 시선과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어떤 고난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내민 따뜻한 손을 잡아 본 적이 있긴 한가? 우리의 믿음이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가? 어쩌면 메마르고 조각난 오늘의 인간들의 심성에 이러한 신뢰와 지원과 같은 애정의 유대를 기대한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상당부분은 현실일 것이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자식이 실종되고, 살해되거나, 가족의 불행한 사건이 사회, 공동체의 관심을 받는 것은 아주 순간적이다. 고작 관음증을 자극하는 미디어의 상업적 호기심이나 마치 도덕적 사회인 냥 가벼운 연민을 표시하는 것이 전부일 게다. 자신만은 자기의 가족만은 그런 고통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지나친 자극으로 무뎌진 분별력이 곧 무감각과 무관심으로 잊혀지고 결국은 고통 받는 자에게 혐오의 시선을 보내며, 자신들의 연대에서, 공동체에서 격리시키기까지 하는 것이 진실이기조차 하다. 이때 굳건할 거라 믿었던 법과 제도와 사회적 장치들,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모래알 같은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될 때 우린 어느 곳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열 세 살의 어린 소년, ‘조니’에게 세상은 이미 어떠한 연대도, 믿음도, 도움도 기대 할 수 없는 냉엄한 곳이다. 오히려 사악하고 기만적이며 위선과 폭력, 잔혹함만이 무성한 곳이다.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인‘앨리사’의 실종은 아빠의 가출과 헤어날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인 엄마의 무기력으로 가족을 끝없이 몰락시킨다. 무력한 미모의 미망인은 더러운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추악한 인간들의 사냥감이다. 성욕의 탐닉에 장애물인 아이에게 가해지는 상습적 폭력, 약물에 취해 사는 엄마, 사회의 무관심은 소년을 절망하게 한다.

「이제 조니는 그 모든 것, 그렇게 강한 확신을 가지고 배웠던 모든 것에 의심을 품게 됐다. 신은 사람의 고통에 신경 쓰지 않는다. 적어도 어린 아이들의 고통에는. 정의나 인과응보, 지역 공동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웃은 서로 돕지 않았고, 착한 사람들은 보상받을 수 없다, 그 모든 말이 헛소리였다. 교회, 경찰, 엄마, 누구도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할 힘도 없었다. 1년 동안 조니는 자신이 혼자라는 새롭고도 냉엄한 진실 속에서 살아왔다.」

결코 세상은 그와 그 가족의 고통을 이해하지도, 돕지도 않았다. 신은 없었다. 아이가 인식한 세상은 선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믿음도 존재하지 않은 냉혹한 세계였다. 실종된 누이동생을 찾기 위해서, 그가 나서야 하는 것이었다. 오직 자신만이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삼촌도, 이웃도, 공동체도, 경찰과 같은 공권력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세상은 본디 그런 것이라는 확신...
지역사회가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소녀의 실종이 1년이 지났을 무렵, 또 한명의 소녀가 실종 된다. 경찰 서장은 자기 조직의 체면과 자기 지위의 보전이란 이기심에서 이 새로운 사건을 이해한다. 어린 생명의 구출, 가족의 고통, 범죄의 규명, 공동체의 안전 보장이란 본원적 소명의식이나 의지가 아니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손익계산에서 출발한다.

피폐한 사회에 정의와 신뢰를 회복하려는 양심은 항상 있기 마련이라는 다소 고답적인 구태의연함이 있긴 하지만 조니 가족의 고통을 잊지 않는 경찰이 있다. 형사반장, ‘헌트’의 조니에 대한 보호와 미해결 시건인 앨리사 실종에 대한 수사는 출세욕에 찌든 서장의 적대적 시선을 피해 지속된다. 세상이 제아무리 추하고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곳일지언정 살아있는 단 하나의 연민, 신뢰라는 불꽃이 어둠을 걷어내는 법인 모양이다. 여기에 사랑, 믿음의 복원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소년 조니의 용기 있는 탐색과 도전이 더해져 우리들이 잃고 있는, 아니 이 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미덕들의 실체를 보여준다.

소아성애자의 광기가 저질러대는 수없는 어린아이들의 살해, 알콜과 약물에 취해 약자들을 착취하고 그녀들의 성을 유린하는 파렴치한 부자들의 광란, 하찮은 권력이라도 지니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범죄도 서슴지 않는 공적 권력의 하수인들, 쾌락을 위해서는 유아조차 밀폐된 차안에 방치하는 탕자들, 자기자식의 성공을 위해 남의 자식의 죽음을 은폐하는 두렵기만 한 오늘의 인간들의 일그러지고 뒤틀린 세계가 소년의 용기와 형사반장의 연민에 그 추악한 모습들을 드러낸다.

어린아이들의 죽음과 비열한 인간들의 조합만큼 인간세계의 타락과 추악성을 설명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내는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 우린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자각을 넓혀나가지 못하는 사회만큼 암울하고 절망적인 곳은 없을 지도 모른다. 가까이는 이웃, 그리고 우리주변의 약자, 어디선가에서 시름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통의 공감과 연민의 실천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사건이나 사건현장의 추리적 수사라는 진부한 궤적을 벗어나 사건이 지닌 본질적 배경, 인간사회의 실제, 그 파멸적 도덕과 붕괴된 정의에 대해 생각게 하는 구성은 더욱 절실하고 감동적인 새로운 스릴러문학의 방향을 제시한다. 다층적 스토리의 전개, 악의 의외성과 그 실체가 빚어내는 반전 , 예리하게 포착된 인간사회의 통찰 등 실로 품격 있는 빼어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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