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미
티에리 종케 지음, 조동섭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소설은 독특하게도 두 개의 서체로 기술되어 있다. 굵은 서체로 써진‘너’에 대한 이야기와 보통체로 써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유연한 서사는 제각기 다른 길을 걷는다. 어떤 연결점도 없어 보이는 서로 다른 인간들만 보인다. 단지 폐쇄된 공간에 어떤 인간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막연한 유사성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될 뿐.

누군가가 쫓기고 그 집요한 추적 끝에 생포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까지는 성실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까닭도, 또 왜 동물실험을 하듯 사람을 매어놓고 길들이는 작업처럼 보이는지도 암흑을 더듬듯 오리무중이다. 이러한 구성과 추리기법은 꽤나 낯섦에도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저명한 성형외과 의사인‘리샤르 라파르그’와 호젓한 그의 저택이 그려진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이브’가 있는 2층 방에서는 불빛과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평온하다기보다는 어둠과 석연찮은 기운이 덮여있으며, 역겨운 고통마저 느껴진다. 정신병원에 갇혀있는‘비비안’의 병문안, 이를 안타까워하고 애틋해하는 리샤르, 광기에 젖어있는 비비안을 병문안 한 이후에는 여지없이 이브를 잔혹한 변태매춘에 내몰고 그 학대받는 장면을 옆방에서 응시하며 리샤르는 쾌감을 맛본다. 그러나 이 행동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알아차리고 연민을 보내기 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시선은 은행털이 중 경관을 살해하고 도주하는‘알렉스’라는 이십대 청년을 쫓는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공개수배를 피해 은둔하고 있는 자.
여기에 굵은 글씨로 써진 소름끼치고 음습한 너에 대한 이야기가 환각처럼 더해진다. 발가벗겨진 채 쇠사슬에 매여 있는 남자. 한 점 빛없는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 얼굴을 볼 수 없는 자에 의해 2년에 걸친 정신의 개조와 신체적 순응의 집요한 작업으로 길들여진다.
거미줄을 처 놓고 자신은 어딘가에 숨어 엿보며 먹이가 걸려들면 서서히 말아 보관하고 조금씩 먹어치우는 독거미처럼 완전한 무기력 상태로 몰아넣고 사슬에 묶인 먹이를 찾아온다. 이 사악하고 잔인한 괴물을 청년은 '미갈(Mygale: 독거미)'이라 부른다.

동일 시점의 두 시선, 그리고 시점이 역행하는 또 다른 시선, 이렇게 세 시선의 이야기가 점점 급박하게 어떤 실마리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이 알 수 없었던 병적이고 기괴한 사실을 야기했던 사건의 실체에 이르면‘복수’, 아비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원한이 있으며, 정신과 육체를 개조당한 청년의 공포와 당혹감, 삶의 좌절에 대한 증오어린‘복수’, 이렇게 두 종류의 복수가 놓여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좌절과 고통, 그것은 범인을 향한 냉혹한 과정으로 이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가슴으로 철저하게 진행되는 복수의 절차들, 미갈, 괴물로 변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에게서 그가 도달하기 위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목격하게 된다.

복수를 위해 메스를 들이대고,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앗아가려 하는 순간, 그 인간 또한 자신을 상실하여야 한다. 이미 괴물이 자신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수란 고통의 해결이 아니고 새로운 고통의 획득이 되어버린다. 촘촘히 얽힌 거미줄처럼 무수한 암시와 복선들이 직조되어 역겨움과 혐오,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감성을 압박해 온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흥분과 강박감이 책장 넘김을 재촉한다. 상식을 뒤 엎어버리는 기이할 정도의 독창성, 그리고 수용하기 버거울 정도의 잔혹과 사악함과 세련미 넘치는 우아함까지 아울러 갖춰 기묘한 매혹에 빠져들게 한다. 흔해빠진 영미식 복수 추리극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환상적 미묘함이 있다. 소설 읽고 행복했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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