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식량 문학동네 시집 98
박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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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이 시집만큼 내 마음을 관통하는 느낌들, 이미지들, 막연한 그 궁극의 깨달음이 공명한 것도 없으리라. 작고하시기 전, 시인 이재훈과의 대담이 실린 2001년 <현대시 11월호>에 실린 ‘해찰’하는 시인의 삶의 습속이 내 밑바닥에 가라앉은 무의식의 생김새와 닮아 있어 동지를 만난 냥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것저것 부질없이 집적거리며 해치는 그 무심한 듯한 삶의 모양새, 끝없이 어떤 먼 곳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실체가 다가오면 다시금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이.

특히나 시인의 이 유고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한결같이 뭉클한 자연에 대한 겸손과 그 웅대한 우주의 섭리에 가까이 다가간 외로운 한 사람의 존재론적 숙명으로 더없이 마음을 끄덕이게 한다.
나와 너의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바로 ‘나’, 그 무상심(無常心)과 무위(無爲)를 이제사 알듯하게 되었을 때, 바로 그 느낌의 실체를 비로소 지각할 때 보이는 세계의 모습을 말하기에는 모자란 것이 언어이지만 그걸 말하는 시인의 관조는 아름답다! 라는 엉성한 말 이외에는 할 길이 없다....

시집의 첫 장에 씌어 진 아래의 시 <그시절>의 마지막 구절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동으로 한 동안 먼 전경만을 무심히 바라보게 한다.

(......前略......)
뒷산 불던 바람 자연하고
흰 구름 둥둥 여여하였네
(......中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네
꽃잎만 한 잎
뚝! 떨어졌을 뿐 "

이러한 초월적 관조는 다음의 <예쁜 꽃>이라는 시에서 또 다른 느낌으로 접하게 되는데,

이제 더 이상 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꽃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므로
그러다 마침내 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므로

새벽 산책길에서
한낮의 호젓한 산길에서
행여 그 꽃을 보게 되면
그냥 생각만 하리
건들거리는 바람처럼....
“이쁜 꽃이 피었네”

하고 말이다. 언젠가 바람에 실려 산 속의 이쁜 꽃을 지나칠 때, 내 모습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삶이란 걸 떠나보내려 할 때의 외로움 같은 거....그것들이 시인이 말하듯 “어차피 가야 할 곳인데, 싸목싸목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는 소리에 빙그레 수긍의 미소를 짓게 된다.
그리고 <散骨을 하며 - 어머님께>와 같은 시처럼

(......前略......)
매양 그러하지만 또 눈물납니다
이제 이 세상이 모두 당신 집이지만 당신은 어디에도 안 계십니다
어디에도 남아 있지 마십시오
그리움 속에도 그리워하는 마음속에도 부디 계시지 마십시오

라고 하지만 어찌 그 무상을 넘어 내 눈물조차 가릴 수가 있었겠는가하는 투명한 시인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외로움과 그리움의 무게가 벅차게 다가오기도 한다.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 가려진 진짜의 세계, 그 비가시적인 대자연의 섭리, 존재론적 삶으로의 본질적 회귀에 대한 시인의 성찰이 깊이 있게 내 가슴에 내려앉는다. 시인 박찬이 남겨준 이 마지막 시들은 나와 오랜 동안 동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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