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의 사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1
수사나 포르테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들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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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재촉하는 사랑이야기, 금지된 사랑의 저주와 그래서 더욱 고양되는 사랑이야기, 쾌락과 복수로 이어지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비극적 사랑이야기이다. 또한 폐쇄되고 가부장적이며, 폭력과 기만, 억압과 공포로 이어지는 사악한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독재정권의 나라, 알바니아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애처로운 저항의 은유이기도 하다. 열정과 조바심, 죽음과 같은 쾌락과 사랑의 그 절실함이 작품전체를 격정적 분위기로 몰아댄다. 이해 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 표정들의 아련한 기억들이 음울함과 내재적인 은밀함을 더욱 강렬하게 하고, 까무룩하게 눈이 절로 감기는 어떤 환각적 상태에 빠져들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외부와 차단되고, 가부장적 권위, 근엄한 공포의 권력이 지배하는 공간에 갇힐수록 그 반작용은 더욱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요, 질서일 것이다. 소설은 스페인내전, 유럽을 휩쓴 파시스트들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알바니아의 한 지배권력자인 ‘자눔 라드지크 가문’에 저주처럼 내린 사랑과 죽음의 비밀, 그리고 그 황폐화를 향해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근원을 좇는다. 작품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카눈의 전설’을 소재로 한‘이스마일 카다레’의 장편소설 『부서진 4월』에서와 같이‘피는 피로 갚는다’는 보복의 순환은 비극을 예고하지만, 인간의 본능이란 금기(禁忌) 앞에서 더욱 초연해지는 것,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 금지된 것을 넘어서는 사람들의 추동력은 격렬함, 간절함, 죽음의 불사를 초래한다.

우리들, 인간성이란 것의 본질인 욕망을 가두는 것, 그 자유로움을 억압하는 제도와 장치는 인위적으로 가둬지는 것이 아니다. 제지되고 폐쇄될수록, 아니 자연의 질서를 작위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이 이미 오만이고 무지이며 왜곡을 부르는 것일 게다. 고립과 차단의 질서화는 오히려 정신과 현상을 손상시키고 무질서와 황폐화만을 야기한다는 것을 우린 우리의 불행했던 현대사를 통해 아픈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다. “무자비한 종교같은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암흑의 세계, “시체 애호가들의 나라이자 무덤을 찾는 자들의 나라”라 불릴 정도의 폭압성과 엄격함만이 작용하는 폐쇄적 공간인 1960년대 알바니아의 사회상은 라드지크 집안과 교차하며 비극의 본질을 공유한다.

소설은 라드쉬크 가문의 가장인 대(大)자눔의 둘째 아들인‘이스마일’의 어린 시절의 흐릿하고 몽환적인 기억들과 그의 성년으로서의 현실, 즉 과거와 현재시점을 오가며 비극적 기원의 비밀스런 윤곽을 드러낸다. ‘그 여자’로 지칭되는 엄마의 죽음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 엄마의 죽음과 동시에 가족과 항시 함께했던 의사 기오르크 박사의 사라짐은 시대의 폭력성과 가문의 비극성을 동시에 표출해낸다. 여기서 엄마와 기오르크의 관계가 지니고 있는 금기의 파괴가 낳은 결과는 은밀하고 잔인한 죽음의 원인이 되고, 그것은 곧 권력의 저항이자 관습의 순응이라는 대자연의 질서로의 회귀를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동시에 금지된 사랑, 그 금기에 도사린 부인 할 수 없는 절대적 쾌락, 죽음까지 수용 할 수 있는 사랑, 그 죽음의 부름 속에 살아있음과 깨어있음을 찾았던 부조리의 격렬함이 거친 숨결로 다가오기도 한다.

급기야 형 빅토르의 아내인 형수 헬레나와의 초조함과 은밀함을 동반하는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의 거의 모든 것을 쏟아 낸다. “이스마일이 쓰다듬는 형수의 등은 이스마일을 빅토르의 우주로 접근시켜주는 작은 우주였고, 사랑하는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는 그에게 죽음과 같은 쾌락을 일깨워주었다.”라고 하듯이,  금기의 파괴는 질서와 제도, 권력의 중심을 파괴하려는 것의 다름이 아니다. 권위적인 가부장적 질서인 자눔과 그를 닮아가는 형 빅토르라는 기존질서를 무너뜨림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행위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스마일과 헬레나의 사랑의 행위는 그 어떤 사랑보다 극한의 격정과 강렬함을 내 뿜는다. 그 격렬함,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서로에게 넘겨주게 되는” 사랑의 침대 속에 내재하는‘죽는다’라는 내밀한 고백처럼 쾌락과 죽음이 분리 할 수 없는 일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총소리, 그러나 쾌락과 복수에 대한 갈망이 혼재된 적대감 앞에서의 침묵과 순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 된다. ‘바타이유’를 연상시키는 이스마일과 헬레나의 사랑행위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초월하게 한다. 육체적 달콤함, 욕망의 본능,  그 촌각을 다투는 심장의 떨림, 그것이 추억을 이루는 물질들과 연결되어 설혹 상상의 세계일지언정 절실함이 만들어내는 삶의 진리로 이끈다.  에로티즘에 실린 그‘저주의 몫’을 이 보다 풍부하게 전달하는 작품도 없을 게다. 자유를 향한 연인들의 질주가 더 없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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