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명연설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홍선영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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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에 어떤 새로운 흐름, 또는 전환을 만들어 낼 정도의 연설, 그것은 대중의 마음을 자신의 신념이나 이기적 목적의 실현을 위해 설득하는‘말(語)’일지언정 분명 무언가 인간의 감성을 꿰뚫는 통찰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를 조금 비딱하게 말하자면 사람, 군중의 심리를 선동할 줄 아는 기술에 능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우호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기희생, 겸허와 같은 진심으로 느껴지는 감동이 담겨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설집에는 17세기 영국여왕‘엘리자베스 1세’의 오늘의 시선으로 읽자면 오만방자한 의회연설부터 21세기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버락 오바마’의 취임연설까지 영미권(英美圈)을 대표하는 40여 명연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는 시대의 간극 탓으로 명문이라 할 수도, 또는 감동이나 공감을 가질 수도 없는 것들, 서구중심이라거나 자국중심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어 반감을 일으키는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여러 의미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은데,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명문들을 포함하고 있는 연설의 전체와 맥락을 접할 수 있다는 유익함 등이라 하겠다.

특히 부수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유익성이 어떤 측면에서는 명연설의 구성적 측면을 넘어선다 할 수 있다. 미국의 대 영국 식민지 독립투쟁, 인디언 원주민에 대한 백인의 악행, 흑백 인종차별의 지난한 역사, 양차대전 당사국의 현황과 입장, 구미 열강과 소비에트 러시아 및 국제 공산주의와의 팽창주의 대결, 식민지배에 대한 영미의 관점, 여성 참정권을 비롯한 민주주의 실현의 과정, 하물며 지구 생태계보존, 사형제도, 인종간의 화합을 향한 진정의 목소리까지 정의와 도덕적 가치에 이르는 폭넓은 식견들을 목격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위대한 명연설』이라는 이 저술의 가치는 단순한 연설집의 의미를 뛰어넘어 근대 역사와 사상의 향연이랄 수도 있다.
한 인디언 종족의 추장인‘테쿰세’의 만족 할 줄 모르는 백인들의 탐욕에 대한 적극적 저항의 외침이나, 오늘의 흑인 대통령 탄생의 밑거름이 된 노예해방전쟁기의‘프레더릭 더글러스’가 외치는 백인들의 이중적인 도덕성의 잣대와 위선에 대한 주장, 여성 참정권의 당위성에 대한 투쟁의 연설에서 뿌리깊은 인종과 성적차별, 제국주의적 본성을 보면서, 오늘의 서구사회가 역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잃어버린 19세기의 제국주의적 자신들의 힘의 회복을 부르짖는 가증스러움도 확인하게 된다.

1918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평화조약 14개 원칙’을 포함하는 유명한 연설은 당시 식민지 상태였던 한국으로서는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는데, “타인에게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정의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뚜렷이 확인하였다.”고 짐짓 평화와 정의를 말하지만 식민지 주권문제는 지배국가의 뜻에 맡긴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서 단지 자국의 이익을 위한 평화전략이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아전인수식의 연설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인데, 그들,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자국민에게는 더없이 열정과 희망을 자극하는 것이었겠으나 그들과 반대쪽에 서있는 아시아인, 동양인으로서는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윈스턴 처칠’에 대한 영미국가들의 존경을 모를 바는 아니나, 그의 연설에서 나는 한 마디로 전쟁광의 모습과, 패권주의자의 야심만을 읽게 된다. 그의 연설은 ‘평화의 핏줄’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다니는 모양이지만 “미영 양국의 공동기지는 전 세계 수많은 섬에 퍼져있다. 우리군의 군사기지가 될 것”이라는 한껏 들뜬 팽창주의적 야심이나 “물질적 풍요에 이의를 다는 것은 국가의 자유를 저지하는 인간 이하의 범죄다”와 같은 근시안적 가치관에서 사실 좌절감이 더 깊어지기만 할 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윌슨이나 처칠같은 서구 제국주의 지도자들의 모순된 내용에 대한 서구인들의 열광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미국의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나 영국 수상 ‘해럴드 맥밀런’ 같은 이들의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이해,  그러면서 차이를 넘어 먼 미래의 앞날까지 내다보고자 노력하는 다원성과 자유와 관용의 모습이나, “물질적 부가 성공의 기준이 아니어야 한다.”면서, “도덕적인 자극이 더 이상 맛없는 이윤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 때문에 가려져선 안 된다.”는 윤리적 변화와 행동의 실천에 대한 반성과 요구는 그야말로 보편적 진리를 내재하는 명연설의 귀감으로 새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잘 알지 못하던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수상, ‘케빈 러드’가 호주원주민에 대한 이주민인 백인들이 수백 년간 자행한 야만적 폭력과 차별을 진심으로 사죄하는 2008년 국회연설은 진정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타들어가는 괴로움이 종이를 뚫고 나올 듯이 고함을 내지릅니다. 그들에게 가해졌을 상처와 모욕, 멸시, 어머니와 자녀를 물리적으로 갈라놓는 그 터무니없는 잔인함이 우리의 감각을, 인류애를 깊숙이 찌릅니다.”라는 절절한 이해와 속죄의 표현, 더구나 “이렇게 사죄드리지만 겪은 고통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은 그리 강력하지도 않고 슬픔은 지극히 개인적인 까닭에...”하는 구절에서는 감동으로 눈물이 다 나올 정도이다. 이러한 진심의 사죄를 더욱 빛나는 하는 것은 세 번 거듭되는 사죄의 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로서 사과드립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대신해 사과드립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의회를 대신해 사과드립니다. ” 그는 이렇게 'I am sorry'를 세 번이나 말했다. 어느 누가 그를, 백인들을 용서치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최고의 명연설이 아닐까?

‘마하트마 간디’의‘비폭력, 비협력 운동(사티하그라하(satyagraha))’의 의지를 그대로 드러낸 재판정 연설, 사랑을 위해 왕위를 내던진 시대의 로맨티스트로 기억되는 영국 왕‘에드워드8세(윈저공)’의 퇴임사, ‘워터게이트’라는 파렴치 행위로 중도 사임하게 된 ‘닉슨’의 몰염치하고 졸렬한 자기변명에 급급하는 연설, 영미권 국가들의 소위 20세기 4대 명연설이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취임연설, 윈스턴처칠의 나치침략 전쟁 독려사, 존F.케네디의 취임연설, 마르틴 루터 킹의 워싱턴 평화행진 연설,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마거릿 대처의 공기업 민영화, 공공지출의 감축, 노동조합의 규제, 나아가 패권주의 부활의 외침같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연설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포함하는 진귀한 자료들은 이 연설집의 또 다른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열정과 감명을 불러일으키는 이들 명연설 테크닉을 배우는 참고로서는 물론 역사적 사실과 인류의 보편적 진실로서의 도덕성과 정의에 대한 성찰까지 실로 일거양득, 일석삼조의 저작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한 권 쯤 읽어보고 지닐 만한 도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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