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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름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7
루스 뉴먼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을 집어 들었다면 에필로그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장을 덮을 때까지 결코 내려놓을 수 없다. 명문 케임브리지대, 젊은 대학생 무리들, 반사회적 성격장애자, 성적 학대, 살인사건과 같은 소재도 흥미로운 요소이지만 끊임없이 현혹되는 사건의 장치들에 기만당하고 그 전복이 거듭되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의식의 향연, 그리고 '에어리얼(Ariel)'칼리지라는 케임브리지 29개 칼리지에는 없는 허구의 배경과 함께 억압받는 여성의 고통을 섬뜩하고 처절하게 그려내곤 했던 시인(詩人) '실비아 플라스(Sylvis Plath)'의 자살과 그녀의 정신병원 경험, 소외와 자기파괴라는 음침함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유고시집 『에어리얼(ariel)』이 연결되어 기묘한 환상을 키운다.
단지 살해사건의 용의자 추적이라는 궤적이 주는 흔한 스릴이나 범죄수사과정의 추리에 머물지 않는다. 피로 낭자한 살인 현장에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텅 빈 눈을 하고 자아를 잃어버린 것 같은 여학생 ‘올리비아’, 피살자의 흘러내린 내장을 안으로 밀어 넣는 남학생‘닉 하드캐슬’처럼 눈에 보이는 사실은 있으나, 살인자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라는 아이러니가 맨 먼저 호기심을 이끈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발생한 살인 사건과 세 명의 피살자, 동료 학생들의 관계성이 암시와 복선을 내재하고 인간들의 복잡한 심리와 행동, 그 갈등들을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게다가 이성에 대한 유혹과 소유욕, 질투와 배신이라는 젊은 남녀들이 발산하는 본능의 무대창치로서 캠퍼스 생활은 감각적 재미를 더하고, 소설의 중심 플롯이 되는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의 장면들에서 펼쳐지는 지적 게임과 그 곳에서 드러나는 아동의 성적 유린과 인간의 가학성을 보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독자의 의식을 지배한다.
한편 이번 한글 번역본의 제목인‘일곱 번째 이름’은 한 인간의 내면에 여러 교대인격을 지닌, 세칭 다중인격자를 상징하고, 소설 내에서도 반복되어 설명되고 있지만 원제목인‘twisted wing', 즉 ’비틀린 날개‘라는 기생곤충을 통해 “뒤틀린 내면을 지랄 맞게 잘 숨기는 몸”을 비유함으로써 반사회적 성격 장애자의 성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소설적 장치들은 반전요소의 시발점이 되고 있는데, 이는 몇 차례의 거듭되는 반전에도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눈가리개이기도 하다. 범인에 대한 심증이 굳어지는가하면, 이윽고 형사 판결조차도, 수사지휘자, 용의자의 심리분석자까지도 반전을 회피하지 못할 정도이니 작가의 교묘한 구성에 그만 혀를 내두르게 된다.
작품 초반부에 범인의 프로파일링에서 추정하는 내용들, 즉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도식적인 일상적 표현들이 얼마나 정교한 단서들이었는지를 책을 마치고 나서야 깨닫게 되니 싱겁고 겸연쩍은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오랫동안 공상하던 놈의 짓 같거든. 이렇게 극단적인 시나리오에 대한 환상을 키우려면 세월이 필요한 법이다.”라는 문장의 구체성을 어떻게 흩어진 내용들에서 독자가 꿰어 맞추느냐의 능력이라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사실 주제의식에 대한 이해보다 이 소설은 심리상담 장면, 목격자의 진술, 피해자 동료 학생들의 진술과 같은 단서와 작품의 호흡을 끊을 수 없도록 마력을 가하는 작가의 교활할 정도의 심리 지배력이 훨씬 매력적이겠지만, 구태여 주제성을 부각한다면, 평생을 가족과 기성사회로부터 고문 받고 학대받고 경멸 받은 사람이 성장하여 사회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 갈 수 있겠는가하는 연민이기도 하며, 혹은 그 증오와 분노의 실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행위나 본성을 심판하는 일에 있어서 인간사회와 그 제도가 보이는 한계를 찾을 수도 있고, 해리성 정체성 장애의 과학적 판단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나 반사회성이 지니는 정신분석학적 연민에 대한 반대 가설의 입증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짓밟는 법을 잘 아는 사람들, 누군가의 행복에 독을 한 방울 떨어트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 지나치게 타인의 상처와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사람들이 피살자들의 성향이다. 타인에게 적절히 섞여들어“숙주의 몸을 의태(擬態)”할 줄 아는 인간들은 이러한 인간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특히 순종을 가장하고 수동적이며 헌신적인 연인이 그럴듯하게 의태하고 나타날 줄 어떻게 알겠는가? 궁극적 목적이 난도질 그자체인 연쇄 살인자가 대반전을 알리는 달콤한 목소리,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절묘하게 잘 쓴 소설이다! 아마 재미의 지존, 반전의 종결자! 라 하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