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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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의 소주제를 지닌 연작 혹은 장편 소설이다. 삶의 열기를 잃어버리거나, 희망을 저버리고 낙심하는 사람들, 목표를 이루지 못해 고뇌하는, 사랑의 진정함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열정, 꿈, 희망의 메신저가 되어주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들의 찢겨진 마음들을 봉합하고 복원해주는 작품이다. 이렇게 소설의 메시지를 정리하고 보니 왠지 딱딱하고 거창해 보이지만 내용은 한 없이 부드럽고 친근한 범인(凡人)들의 일상 이야기여서 말하는 빛바랜 분홍색의‘돼지인형’이라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존재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인식에 별 저항감 없이 수용된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려한다면 일종의 환영(幻影)문학이라 해야 할까? 그렇다고 현실세계를 이탈한 이질적 세계를 이야기하는 결코 아니며, 단지 삶의 현실을 아름답고 가치 있게 복원하는 수단으로서 꿈과 희망의 환상성을 도입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소설의 기초는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으며, 간절한 무엇을 간구할 때에만 현실과 비현실적 세계의 경계가 해체되어 현실적으로 가능치 않을 것 같은 존재와 조우하고, 도달할 그 무엇을 발견하게 하는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의 병간호, 가업인 꽃가게를 꾸리는 남동생의 부족한 일손을 위해 각본가로서의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의 잃어버린 자신감을 일깨워주고 마침내 아마추어 연극제의 연출보조자로서 다시금 충만한 삶의 열정을 되찾게 하거나, 사랑을 이용하는 여자의 진실을 드러내게 하여 진정한 자아와 사랑에 대해 생각게 하고, 해체된 가족, 상처받은 자존감을 어루만져 주고, 진정 원하는 것의 실체를 발견하게 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방향을 잃고, 때론 좌절하거나 상처받고 앓아눕기도 할 때면 해안가의 고상한 고급 리조트호텔인, 그랜드 호텔의 버틀러(집사), 핑크빛 봉제인형 돼지돼지 씨는 그네들의 눈에 보이는데, 움직이고 말하는 인형의 발견이라는 그 당혹스러움이 공포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작고 둥글둥글하며 천으로 만들어진 소박함과 귀여운 얼굴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독립적인 주체성을 지닌 봉제인형을 받아들이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다. 해서, 작가는 중간 중간 모호함, 신비함, 부존재성의 암시를 남긴다. 대화 속에서 돼지돼지 씨가 “예컨대 저를 보실 수 있는 분이라든지요.”라든가, 앓아누워 몽롱함과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 인형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없으며, 특정인물에게는 보였으나 제3의 인물은 감지하지 못하는 장면들에서 그 것은 환각, 환상 속의 환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존재하지 않을 것이지만 존재하는 것이기도 한 이 인형의 존재는 우리 사람들의 심리적 욕망이 투영된  일종의 구조로서의 은유물로 이해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이러한 논리적 이해 수단을 마련하고서야 온전히 이 봉제인형이란 존재를 수용할 수 있었으니 이러한 유치한 단서를 마련하려 한 것은 타당한 것일 게다.

나는 다섯 편의 에피소드 중 특히 넷째 편인 <겨울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 아마 여기저기서 읽었거나 보았던 기억들의 어떤 유사함이라는 친근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거명하고 있는‘코언형제’의 영화 <바톤 핑크>나, ‘스티븐 킹’의 소설 <샤이닝>에 공히 등장하는 호텔과 호텔에 묶인 작가라는 소재처럼 역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집필을 위해 호텔에 머무는 호러소설가이다. 즉 이들의 오마주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이 소설, 물질에 인간성을 부여한 의외적 존재가 등장함에도 기괴함이나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 점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 흥미로움을 일으키고, 더구나 환상성이란 장치가 기대하는, 현실이 결여하고 있거나 인간 세상의 위선이나 그릇되어 있음에 대한 비판성의 원론을 노골적으로 들먹이는 대사라 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연장되어 환각, 상상의 세계에서조차 타자를 믿지 못하는 것인데, 자신을 진심으로 간호하려는 돼지돼지 씨에 대하여 “방심시켜놓고 덮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중얼거림과 같다. 또한 “환각은 좋은 소재야”라든가, “꿈과 현실이 분간이 안 되는”것처럼 독자를 향해 환상문학에 대한 직접적 학습을 주문하는 모습에서 작가적 열의와 집착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한 몫 했다 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소외를 심화시키고 진정한 소통은 오히려 사라져가는 오늘에, 또한 격심한 경쟁에 지친 우리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작고 따뜻한 정말의 위로의 말 한마디, 행동이 간절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인데, 작품 속 돼지돼지 씨 같은 이가 꿈이건 우리의 상상의 공간에서건 모습을 보인다면 아마 삶의 커다란 활력이 되고 행운이 무럭무럭 자랄 것만 같다. 중년 남성을 위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 했던가? 어른들을 위한,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행운의 부적, 행운의 소설이라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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