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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지대
쑤퉁 지음, 송하진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소시민의 여과되지 않은 감정, 날것의 삶 그대로임으로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해학, 아마 이것이 쑤퉁(蘇童)소설의 특징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너저분하게 포장하고 수식하지 않은 질박(質樸)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왠지 짙은 처연(悽然)함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세 개의 큰 굴뚝은 성북지대(城北地帶)의 상징이다.”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 이미 암울한 도시 서민의 애환, 피폐한 환경 등 소외되고 버림받은 그 무엇들, 애달픈 사연들을 떠올리게 한다. 문화혁명이라는 과도한 중공업정책, 사회주의 계급투쟁이 강조되던 1970년대의 소도시 끝자락, 툭하면‘무산계급 전제정치’를 노동자들의 무슨 권위라도 되는듯이 떠벌리는, 그러나 이념과, 권력투쟁과는 무관한, 또한 희생자일 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투영되고 있다.
화학공장이 뿜어내는 분진과 쏟아내는 오염물질로 회색빛깔을 한 마을과 썩은 강물이 흘러 악취가 나는 도시, 참죽나무 없는 참죽나무길과 길에 피어나는 꽃들은 기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저 피고 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중첩되어 다가온다. 운치와 정감있는 마을길들의 이름과는 달리 그 역설의 해학을 피해갈 수 없게 하는데, 참죽나무길에 대해 실로 경악할 만한 내용을 발견하였다고 하면서 明⋅淸시대 죄수를 수감하던 북대옥(北大獄)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성, 쉬더, 쩔룩이, 홍치 라는 네 명의 불량소년과 그들이 팽개친, 아니 그들을 포용할 수 없었던 “줄곧 살인, 방화의 상징으로 유명”한 동펑중학교가 더해지면서 세상과 화해할 수 없는 괴리되고 반항하는 삶들을 목격하게 된다.
몇 푼의 돈에 딸을 팔아넘긴 뱀 장수, 이유도 모르고 낯선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했던 여인‘텅펑’, 이들의 아들‘다성’, 여기서 분명 비애감을 느껴야 할 것 같은데,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전거를 멈추지 못해 트럭에 돌진해 비명횡사하는 다성의 아버지‘리슈예’의 하루는 오히려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죽음을 미소짓게 하는, 그러나 그 미소 뒤에 소시민의 애환이 몽땅 담겨있음에 바로 심각한 얼굴의 모드로 돌아오게 하는 절묘한 재주가 있다.
한편 과부, 홀아비, 오쟁이 진 무능한 남자, 고작해야 공장노동자들과 이들의 무력함에 저항하는 방치된 아이들,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도 어떤 소명의식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회, 절망만이 팽팽하게 흐르는 황폐한 시간만이 썩은 물이 흐르는 해자와 같이 휘감아 돈다.
절제와 공존, 배려와 사랑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하나씩 사회에서 사라져간다. 순간의 욕망으로 이웃집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인민재판에서 해충처럼 처단되는 열여덟 살‘홍치’, 강간의 수치와 주위의 폭력적 시선과 언어에 마침내 강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어린 소녀‘메이치’, 폭력의 패자가 되겠다는‘다성’의 어이없는 죽음, 아비와 아들이 함께 탐하는 유부녀인 탕녀‘진란’, 건달패들의 추행에 저항하다 살해당한 쩔룩이의 누나, 온통 채 피어나지 못하고 죽거나 축축한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이 여느 막장 드라마 이상으로 음울하게 그려지고 있다.
인민의 삶과는 이격된 권력자들의 이념투쟁과 정책들은 등장하는 호적 담당 경찰관이나 유리병 세척공장 당 간부의“무산계급 전제정치가 그깟 화냥년 하나 다스리지 못하겠어요?”하며 호기를 부리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서 문화혁명기의 좌절된 사람들의 허탈과 분노를 읽게 된다.
이 작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저녁에 피어 아침에 지는‘야반화(夜飯花: 일명 분꽃)’라는 꽃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키우는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아는 것이 꽃”이며, “만일 꽃을 키우는 사람이 그 화초들 옆에서 귀를 기울여 들었다면 가지와 잎이 자라는 소리와 꽃봉오리가 마음껏 웃는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에 이르러서야 어느 샌가 참죽나무길에 빠른 속도로 퍼져 피어나는‘태양화’를 이해하게 된다. 어두운 밤에서 밝은 낮의 꽃이 피어나는 곳이 되는 것을. 절망과 무기력에 절고 상처받은 부모들,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갈등과 혼란의 사회가 귀 기울여주고 보듬어주지 못했던 중국의 1970년대는 50살 중년이 된 오늘의 그들에게 안타깝고 눈물겨운 기억으로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성북지대’, 무지막지함만이 그득해서 어딘가로 벗어나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곳,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곳에서 아이들의 삶의 뿌리 내리기가 처연한 아름다움의 문장으로 그려진 성장소설의 걸작 중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