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 꿈이 끝나는 거리 모중석 스릴러 클럽 26
트리베니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범죄와 죄악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가장 중대한 죄악은 무엇인가? 범죄라고 할 수 있는 살인이 있는 것인가? 죄악의 무게는 무엇으로 잴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사랑을 거역하는 죄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는 말에 수긍케 하는 다분히 사색적인 작품이다. 거칠고 폭력적인 행위, 인생의 막장에 이른 매춘부, 좀도둑, 포주...패배자들의 도시, 절망이란 죄악의 씨앗이 생성되는 도시,‘메인’의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까지 분명 느와르적인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이 정교한 소설의 소재와 배경, 플롯을 능가하는 세상을 향해 날리는 날카로운 작가의 시선과 고독한 한 남자의 꿈이 어린 연민은 여느 삶의 의미를 재발견케 하고 사회적 본성을 통찰하는 작품들의 철학적 깊이를 훌쩍 넘어선다.

또한 작품에 매료되게 하는 요인인‘클로드 라프왕트’경위라는 인물의 됨됨이로, 그가 발산하는 영혼의 자유로움과 절대 고독이 몸에 짙게 배어버린 인간적 매력, 부랑자, 소외된 도시 서민, 삶의 피로에 후줄근하게 지쳐버린 사람들의 회색 그림자를 분별할 줄 아는 인간애가 동료애, 동질감을 자극한다.“주민들과 평범한 얘기를 나누는 아버지와 같은 감시인”, 자신의 순찰구역‘메인’에 대한 애착으로 도시의 범죄자들에게 조차 존경받는 우호적인 독재자 이웃 이자 운명 같은 존재인 사람.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20대의 이태리계 남자가 바닥에 머리를 숙이고 구부린 야릇한 형상의 사체로 발견된다. 수사의 강박적 속도와 말초적 스릴보다는 살인사건을 통해 등장하는 용의자들의 배경과 그들이 안고 있는 고통의 본질을 비추는데 더 많은 할애를 하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결과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실제와 형식, 현상과 본질이라는 도덕적 본성을 사유케 하는 시간을 제공하려는 차원 높은 작가의 의도로 이해된다.

사실 라프왕트 수사의 초점은 살해된 자 보다는 살인 용의자들, 즉 이주자들의 도시인 메인의 주민들인 끝장나기 직전의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은 자는 왜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하는 물음은 다소 정의가 전도된 듯한 의문을 갖게 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사람을 짐승으로 멸시하는 행위, 그 중에서도 사랑을 빼앗는 행위가 가장 큰 죄악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면 충분히 납득 할 수 있는 질문이 된다.

살해된 자의 신분이 들어나면서 이 자에 대한 증언은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여자를 말이에요!”라고,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인간, 그래서 사람을 짐승과 같은 모멸의 나락으로 밀어낸 인간으로 확정한다. 더구나 이를 위해 법률을 회피하고 기만하는 비겁하고 교활한 인간일 경우 그 죄악은 우리 인식에서 분노로 변한다. 소설은 이렇듯 범죄와 죄악을 구분한다. 범죄이지만 죄악이 아닌 것, 범죄는 아니지만 죄악인 것. 이 구분은 자신들이 지닌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고안된 소위 시스템과 규칙이라는 사회의 본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


누군가가 그 규칙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사회는 그 사람에게 단 두 가지의 가능성을 인정하네. 그 일탈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었느냐 하는 것이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 거라면 그는 범죄자라네.  만일 자신의 이익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규칙을 어기면 그는 미친 사람이야.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무서워하고 가두고 봉인하네, 세상 사람들이 미친 사람을 가두는 것인지, 세상 바깥으로 따돌리는 것인지, 그건 시각 차이의 문제네.      - P 422 中에서


고위층 사람이나, 서류상 수속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형사, 비열한 범죄자에게는 거친 경관이지만 범죄자들조차 그의 성실하고 정직한 인물됨에 기묘한 긍지를 갖게 하는 사람, 행복보다는 평온을, 음악보다는 정적을 좋아하는 남자, 서민의 영웅 라프왕트 경위를 통해 차디찬 이익을 위해 정의를 버린 오늘의 사회와 외로운 싸움을 대리 수행케 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아득한 통증을 불러오고, 공감의 슬픔을 가져온다. 자신의 입신, 쾌락, 재화를 위해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인간들과 사회가 규정하는 그 왜곡되고 이기적인 규칙들은 오늘날 죄악을 처벌하지 못하는 기형적 모습을 하고 있다. 단지 범죄라는 자의적이고 회피할 수 있는 규칙만 있을 뿐.

사람들에게 절망을 양산하게 하는 사회, 그 절망이 죄의 근원이 되어 범죄를 만들어 내게 하는 사회, 우린 그래서 여기에 대항하는 고독한 경관인 소설 속의 인물,‘라프왕트’에게 열광하게 되는 줄도 모르겠다. 발표된 지 35년여가 지난 이 작품이 왜 오늘에도 독자들을 환호케하는지, 미스터리의 고전적 지위를 얻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섬세한 인물의 내면묘사와 눈앞에서 전개되는 듯한 액션의 스케치, 게다가 진중한 사회적 통찰과 철학적 성찰의 무게까지 어느 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장르문학의 전범(典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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