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의 지성사회를 휘저었던 여성이다 보니‘조르주 상드(1804~1876)’를 따라다니는 지적이고 정신적인 여성이라는 후대의 평가를 위선적으로 보이게 하는 원색적인 수식어와 호칭이 만만치 않다. 사회제도와 규범의 위에 군림한 여자, 위선을 거부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했던 혁명가로서의 여성을 향한 독설은 돈주앙에 비견되는 그녀의 남성편력 탓이긴 하지만 모욕적이기 조차 하다. ‘보들레르’는‘상드’를 향해 공중변소, 오물을 세척하는 배수구라고까지 모독하였다니 가히 전설적인 스캔들의 여왕소리도 점잖은 측에 속한다.

이러한 비난에도 무려 90여권의 소설을 출간하고 산문 및 서간집 등 250여 편에 이르는 저술활동을 하였다는 것은 매혹적이고 지적인 그녀의 환심을 얻지 못한 비뚤어진 남성들의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빅토르 위고’는 “사람들이 상드에 대해서 욕 할 때 상드를 더욱더 명예롭게 한다고 느꼈다.”고 했다니 사실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이라 하여도 될 것이다.
상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초기 소설중 하나인『렐리아』란 자전적 작품을 접하면서 부터라 고 할 수 있는데, 작품 속 인물 중 하나인‘스테니아’라는 젊은 시인의 사랑과 좌절을 보면서 당대 낭만주의 시인‘뮈세’를 떠 올리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루 헤아리고 거명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상드의 연인은 수두룩하지만, 비록 1년 남짓의 짧은 시간일  망정 뮈세는 상드가 가장 사랑한 남자였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도취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며, 행복입니다. 천국입니다. 아! 나는 맹세코 예술가의 생애를 살고 싶습니다. 나의 좌우명은 자유입니다.”라고 외칠 정도의 상드에게 6살 연하의 여위고 아름다운 금발의 물결치는 머리칼을 지닌 어린 시인은 그녀의 자유분방하고 열광적이며 야성적인 성격을 충족시키는 데 적절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뮈세는 실연 이후 여러 아름다운 밤의 시편과 상드와의 사랑의 고백서를 남겼는데, <세기아의 고백>이나  <추억>, <슬픔> 등은 이러한 배경을 가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대체 상드의 어떠한 측면이 당대 예술과 지성계를 지배하던 남성들을 이토록 헤어나지 못하게 한 것인지 진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미덕과 고귀함은 없어도 사랑은 한다. 강하게, 전적으로 확고부동하게 사랑을 한다.”라는 그녀의 사랑에 대한 신조처럼 허위를 걷어내고 육체의 본능에 충실하며, 사회주의적이고 인도적인 그 분방한 나눔(?)의 정신 탓이었을까?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간사를 거의 초월한 신적인 인간을 발견하게 되는데, 아마도 그녀가 발산하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광휘, 경외를 느끼게 하는 이상의 숭고함에 매료되었다는 것이 더 옳은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편 그녀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남성이 있는데,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우수에 차고 때론 아름다운 전원의 햇살을 그리게 하는‘쇼팽’의 음악들이 상드의 사랑과 지원 속에서 창작되었다는 것은 예술에 대한 상드의 이해와 열정을 느끼게 한다. <빗방물 전주곡>이란 것이 있는데, 연인인 상드가 외출했다가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낡은 마차로 건너다보니 늦게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를 모르는 쇼팽은 상드가 자신을 버렸다는 상실감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반미치광이 상태가 되어 연주한 창작이라 하니, 사랑이란 이 착란적 두뇌조작이 없었다면 인간사란 정말 아무 즐거움도 없는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전원 교향곡>, <야상곡>등 주옥같은 쇼팽의 연주곡들이 모두 상드의 치마폭에서 나왔으니, 과연 보들레르의 독설은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못난 남자의 갈망이란 역설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 남자를 좋아하던 상드가 쇼팽의 예술을 위해 금욕적 생활까지 했다니 평범한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여성임에는 분명했던 것 같다.
‘나는 사랑한다.’그리고 나의 좌우명은‘자유’라는 신조를 정말 생의 말년까지 지켜나간 그녀의 남성 편력이 사실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말이다.

그녀의 작품은 대개 4부분의 시대로 분류되는 듯하다. 1832년~1838년까지 주로 사회적 편견이나 인습에 항의하고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를 주장한 초기작품으로『발랑틴』,『앵디아나』,『렐리아』, 『앙드레』가 있으며, 1838년~1846년에 이르는 사회주의 소설로서『프랑스여행의 동료』,『오라스』,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 『앙투완씨의 죄』,『칠현금』등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1844년~1853년의 시기에는 『잔』,『마의 늪』, 『사랑의 요정』, 『피리부는 사람들』과 같은 전원 소설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1853년 이후의 말년에는 자서전과 서간집, 『마지막 사랑』, 『타마리스』등 연애모험소설들을 쓰면서 초기의 작품세계로 회귀한 양상을 보인다. 아마 다음의 구절은 그녀를 대변하는 문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인은 사랑의 찬가를 요구하기 전에 숭고한 영감이 고무시켜야 되는 민감한 리라와 같은 것이다.”(『렐리아』초판본에서 삭제된 문장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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